#34 잘남은 때로는 '불행의 단초'가 된다

by 캘리그래피 석산

‘극락조’라는 새가 있다. 학명은 bird of paradise로 ‘천상의 새, 천국의 새’라고도 한다. 아무리 살펴봐도 이런 극찬의 이름을 가진 새는 주변을 둘러봐도 찾아볼 수가 없다. 극락조가 정글 사이를 날아다니는 모습은 무지갯빛 날개옷을 입은 선녀가 하늘에서 하강하는 모습처럼 보인다고 한다.


19세기 유럽 상류층 여성들의 모자 패션 중 최고품은 새의 깃털이 독점했다. 그만큼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새로 사랑받고 있는 극락조는 파푸아 뉴기니, 오스트레일리아(북부), 몰루카제도 등지에 분포하는데 외부에는 ‘날개와 다리가 없는 새’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실제로 원래 없는 것이 아니라 아름다운 꼬리털을 얻기 위해 원주민들이 잘랐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극락조는 새끼 때 생포해야 잡기가 쉽다. 그런 다음 날아가지 못하게 날개를 잘라서 키운다. 또 땅에 긴 꼬리털을 끌고 다니면 아름다운 깃털이 훼손되기 때문에 다리 또한 잘랐을 것이다. 이렇게 하여 둥지에서 키우면 꼬리 깃털은 계속 자라기 때문에 깃털을 여러 번 수확해서 팔 수가 있다. 결국 천상의 새 극락조의 극찬의 이름, 환상적 아름다운 이면에는 인간의 탐욕과 잔혹함에 대한 목메는 슬픔이 배어 있다.


잘남은 늘 비극의 씨앗이 되기도 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늘 자신의 잘남을 자랑하고 싶어 한다. 묘지에 부는 바람은 그러한 것들이 얼마나 부질없고 귀한 시간을 헛되게 보냈는지를 여실히 느끼게 한다.

외형적인 돈, 학벌, 사회적 지위에 구속되지 말고 내면의 삶에 대한 깊은 성찰을 해야 한다. 돈을 얼마나 벌었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아름답게 썼느냐, 좋은 학교를 나왔느냐 하는 것보다는 사회에 유익함을 얼마나 주었느냐를 먼저 따져 봐야 한다. 큰 권력을 가진 사람보다는 국익에 큰 도움을 준 사람들을 존경해야 한다. 겉모습보다는 내면의 성숙함을 꼼꼼히 따져보아야 한다.


세속적인 사람들은 남들과 비교하며 외형적 화려함을 자랑하고 부러워한다. 그러나 삶에는 ‘나를 나답게’하는 더 소중한 것들이 있다. 생명에는 다이아몬드보다 물이 더 귀하다. 우리의 삶을 지탱해 주는 것은 결코 비싸고 진귀한 것이 아니라 싸고 흔한 것일 수 있다. 특별한 것보다는 일상적인 것들의 가치를 되새겨 보아야 한다. 외적 잘남은 때로는 불행의 단초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내면의 아름다움은 늘 향기롭다. 얼굴을 가꾸듯 정원을 손질하듯 내면의 마음을 빛나게 다듬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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