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 말하지 않아도 더 빛나는 것이 있다

by 캘리그래피 석산

믿음직한 사람, 신뢰가 가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굳이 하나에서 열까지 구구절절 말하지 않아도 된다. 살아오면서 앞으로 살아가면서 다양한 사람을 만나는 동안 ‘믿음’으로 상대방을 느끼고 있는 사람이 내 주변에 과연 몇 명이나 되는지 한 번쯤 생각해 볼 때다.


온갖 미사여구로 사기 치는 사람, 그럴듯한 말로 현혹하여 단물만 쏙 빼고 버리는 기생충 같은 사람, 지키지 못할 약속을 하여 사람의 마음을 산란케 하는 사람, 대놓고 공짜를 바라는 사람, 미안하다는 핑계를 대며 연민의 야튼 수를 부리는 사람, 말과 행동이 다른 사람, 믿음이 안 가는데 자꾸 자기를 믿어달라고 하는 사람, 서푼 한 치도 안 되는 지위를 이용해 상대방을 깔아뭉개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모두가 신뢰할 수 없다는 점이다.

어느 신부(新婦)의 애닮은 믿음에 대한 이야기를 몇 자 적을까 한다. 신부는 초록 저고리에 다홍치마로 첫날밤을 맞아 앉아 있었는데 신랑이 그만 소변이 급해서 냉큼 밖으로 달려가다 옷자락이 돌쩌귀에 걸렸다. 신랑은 제 신부가 음탕해서 그 새를 못 참아 뒤에서 손으로 잡아당기는 것이라고 그렇게 그렇게만 믿고 못쓸 신부라며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아나 버렸다고 한다. 그리고 50년의 세월이 지난 뒤 우연히 신부네 집 옆을 지나가다가 잠시 궁금해서 신부 방문을 열고 들여다보니 신부는 첫날밤 모습 그대로 다소곳하게 앉아 있었다. 안쓰러운 생각이 들어 신부의 어깨를 어루만지니 초록 재와 다홍 재가 비로소 매운 재가 되어 폭삭 내려앉았다.


신부가 달빛 되어 신랑에게 속삭였다. “너무 보고 싶고 그리웠습니다. 다시 오시리라 믿었습니다. 시리고 아파도 믿었기에 견딜 수 있었습니다. 믿음은 상처이고 시련입니다. 추위에 떨었고 더위에 지쳤습니다. 바람 속에 한숨을 보냈고 빗속에 눈물을 감추었습니다. 낮에는 설레며 기다렸고 밤에는 외롭고 두려워 한없이 울었습니다. 대가를 바라거나 약속되었던 것이 아닌 신산의 믿음이었지만 다시 볼 수 있었기에 50년의 기다림은 빛이 되었습니다. 와 주셔서 고맙습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믿음은 희생이고 기약 없는 기다림입니다. 그러나 어찌 한번 준 마음을 다시 거둘 수 있겠습니까? 물이 흘러도 물속의 달은 흐르지 않고 제자리를 지킵니다. 변함없는 믿음으로 나는 달빛 되어 당신은 별빛 되어 다시 만날 날을 기다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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