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 모든 선택에는 정답과 오답이 공존한다

by 캘리그래피 석산

아이젠하워(Dwight David "Ike" Eisenhower, 1890~1969, 제2차 세계 대전 동안 미국의 최고 계급 군인 장교이자 34대 대통령이었다. 전쟁이 일어난 동안 그는 장군의 계급과 함께 유럽에서 연합군의 최고 사령관을 지내고, 1949년 유럽 연합군 최고사령관이 되었다. 군인 장교였어도 아이젠하워는 또한 평화에 전념하였다. 대통령으로서 직위를 차지에 대비하여 아이젠하워는 1953년 한국 전쟁을 종결시키는 데 북한과 남한을 휴전 협정으로 가져오는 일을 하였다. 자신의 2개 기간 동안 아이젠하워는 공산주의 소련과 세계 대결에서 미국의 전통적 원자 무기에서 증가를 감시하였다. 냉전의 절정에서 아이젠하워는 공산주의가 북베트남을 차지하였어도 베트남에서 군사 개입 거부에 소련의 확장을 거부하는 데 추구하였다.


아이젠하워는 인종적 편견을 위하여 약간의 관용을 가졌고, 미국의 무력의 인종 차별 대우 폐지를 완료하는 명령을 내렸다. 1954년 미국 대법원은 미국 남부에서 학교들을 인종적으로 분리한 법률들을 위반하였고, 1957년 법원 판결을 지키는 데 아칸소주 리틀록으로 연방군을 명령하였다. 그의 별칭은 ‘아이크’였다.) [출처: 위키백과] 는 대통령이 되기 전 콜롬비아 대학 총장을 역임했다.


총장 재임 중 하루는 교무처장이 학생들을 무더기로 징계해야 한다고 했다. 이유를 묻자 많은 학생들이 출입이 금지된 잔디밭으로 다닌다고 했다. 아이젠하워는 문제가 된 잔디밭으로 갔다. 도서관으로 가는 잔디밭이었는데 실제로 대부분의 학생들이 잔디밭을 가로질러 도서관으로 가고 있었다. 학생들은 당당했다. 총장이 보고 있는데도 죄의식이나 미안한 마음조차 찾아보기 어려웠다. 왜 그런지 천천히 살펴보자,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잔디밭을 가로지르지 않으면 두 배가 넘는 거리를 돌아 도서관으로 가야하기 때문이었다.


아이젠하워는 교무처장에게 말했다. “학생들을 징계할 것이 아니라 잔디밭에 출입금지 푯말을 치워 주십시오. 불필요하게 시간 낭비하며 학생들을 고생시킬 것이 아니라 똑바로 갈 수 있도록 길을 내어 주시기 바랍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만의 선악에 대한 규제나 통제 기준이 있다. 자신의 기준에 맞지 않는 처신은 잘못이고 자신이 원하는 대로 따르면 좋다고 한다. 그러나 그 기준이 과연 합당한 것인가를 먼저 숙고해 보아야 한다.


부모들은 모두 자식이 판, 검사, 의사가 되기를 원한다. 그래서 자칫 정해진 길이 아니라 다른 길로 접어들면 나쁜 아이가 되고 불효자식이 된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초대총장을 지내셨던 이강숙 前 총장

한국예술종합학교 초대총장이셨던 이강숙 총장의 회고담이다. “나는 어렸을 때 학교에서 1등보다는 피아노 소리가 좋았습니다. 그리고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잘하고 싶었지요. 하지만 선생님이나 어머니는 국아, 영어, 수학을 열심히 공부해서 판검사가 되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나의 최선이 아니었어요. 내가 생각하는 ‘최선의 나’는 음악을 하는 나였습니다. 때문에 음악의 길을 고집할 수밖에 없었고, 그럴수록 나는 나쁜 아이, 부모님 말을 안 듣는 아이가 되어갔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어쩔 수 없는 나의 선택이었습니다.”


사회 통념이나 부모님이 정해 놓은 통제에 충실했다면 오늘날 한국예술종합학교는 없었을 것이다. 규제가 항상 정당하고 최선은 아니다. 남이 만든 기준이 아니라 자신이 기준을 정하여 참모습을 찾아가야 한다. 어른들이나 지도자는 항상 규제와 통제를 하며 바른 길로 이끌고자 한다. 그러나 그 기준도 자신들이 바라보는 편협된 기준일 뿐이다.

인생에 정답은 없다. 없는 답을 찾으러 애쓸 필요도 없다. 모든 선택에는 정답과 오답이 함께 공존한다. 다만 현명한 사람들은 선택을 하면 반드시 그것을 정답으로 만들어 내고 현명하지 못한 사람은 선택을 한 후 그것을 오답으로 만든다. 그래서 우리의 삶을 결정하는 중요한 상황이 닥쳤을 때 ‘현명한 선택’을 하여 후회 없는 삶의 길을 닦아내는 지혜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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