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 선비는 얼어 죽어도 겻불을 쬐지 않는다

by 캘리그래피 석산

조선 최고의 외교사절이었던 사명대사(1544~1610)가 임진왜란 때 선조의 명을 받고 울산왜성에 주둔하고 있던 가토 기요마사(加藤清正, 1562~1611)를 만나게 되었다. 가토 기요마사는 사명대사를 시험해 보려고 일본군들에게 창칼을 뽑아 험악하게 도열하도록 지시하고 사명대사를 걸어오게 했다. 그러나 사명대사는 전혀 겁먹지 않고 당당했다.


가토 기요마사가 내심 놀랐지만 근엄하게 물었다. “조선에는 보배가 많다고 들었습니다. 조선 제일의 보배는 무엇입니까?” 사명대사가 답하기를 “조선에는 보배가 많지 않습니다. 오히려 당신 나라에 큰 보배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우리나라에 보배가 있다니요?” 가토 기요마사가 의아한 듯 묻자 사명대사가 꼿꼿하게 말했다. “조선에서는 장군의 머리를 보배로 여기고 있습니다.” “네에? 제 머리를 보배로 여기고 있다고요?” “그렇습니다. 조선에서는 장군의 머리에 억만금의 현상금을 걸어 두었습니다. 그러니 그 보다 더 큰 보배가 어디 있겠습니까?” 이 말을 들은 가토 기요마사의 부하들은 화를 내며 칼을 뽑으려 했다. 순간 긴장이 흘렀다. 잠시 후 가토 기요마사가 큰 소리로 웃으며 말했다. “내 목이 그렇게 비싸다니 기분이 나쁘지는 않습니다.” 이 설보(說寶)의 이야기를 전해 들은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파안대소하며 “가토가 졌다. 기백 있는 설보 화상을 보고 싶다.”라고 했다.


사명대사는 그 기개와 당당함으로 일본에서 일약 영웅이 되었다. 조야(朝野) 인사들이 수시로 법회를 열어 초창했고 앞 다퉈 사명대사를 만나보고자 했다. 도꾸가와 이에야스의 장남은 사명대사를 스승으로 모시기도 했다.


곤경과 위기가 닥쳤을 때 움츠리고 의기소침해하는 것은 누구나 가지는 현상이지만 절대 그래서는 안 된다. 비굴하게 더 많이 가지고 더 높이 오르려 하기보다 당당하게 멈추고 비울 수 있어야 한다. 각자가 자기 위치에서 의로움과 당당함을 지켜나갈 때 국격이 높아지고 살기 좋은 나라가 된다.


불의와 부당함에 침묵하는 조직은 미래가 없다.


선비는 얼어 죽어도 겻불을 쬐지 않는다.


호랑이는 굶어 죽을지언정 풀을 뜯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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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굴하게 살지 말고 불의와 단호히 맞서며 당당하고 기개 있게 살아야 한다. 주는 모이를 먹으며 안주하는 맹수보다 야성의 광채가 살아있는 들짐승이 용맹하다. 승진에 길들여져 아첨하는 천재보다 우직하고 의리 있는 둔재가 조직을 지킨다. 돈의 노리개가 된 미인보다 지킬 것은 지켜가는 향기 나는 여자가 더 아름답다.


삶을 빛나고 자랑스럽게 만드는 것은 돈이나 지위가 아니라 거리낄 것 없는 용기와 두둑한 배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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