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욕만으로는 부족하다
예전에 모 라디오 방송 출연 때의 일이다.
“글씨는 누구든지 쓸 수 있는 것 아니냐? 본인(진행자)도 그냥 쓰겠던데... “ 라며 농담반 진담반으로 질문을 해 온 적이 있다. 당연히 누구든지 글씨를 쓸 수가 있다.., 그렇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의욕’만으로 쓸 순 없다는 것이다. ‘너도 쓰니까 나도 쓴다.’라는 생각들이 치명적인 오류를 남기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분명! 필체와 필력이 좋은 사람들에게는 기본적인 소양을 갖췄다고 말할 수 있겠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캘리그래피는 자기만이 가지고 있는 필체 하나로 쓰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글씨가 가지고 있는 숨은 뜻과 표현, 의도에 만족시키지 못한다면 아무리 글씨를 잘 쓰는 사람일지라도 함량 미달이다.
끊임없는 글씨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
글씨 특성에 따라 쓰는 붓, 담는 종이, 만들어 내는 원료까지 가장 글씨와 잘 맞는 다양한 재료들을 작가 자신만의 것으로 섭렵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만큼 쉬울 것 같은 글씨 쓰는 게 이렇게 손이 많이 가는 것인가?라는 의문을 던질 수도 있지만, 이것이 전부는 아니다. 가장 기본이 되는 붓은 글씨에 다양성에서 금방 한계를 나타내기 때문에 작가 자신만의 끊임없는 노력이 필요하다. 하나의 글씨를 쓰기 위해 그 글씨에 맞는 재료를 구하러 며칠 동안 출장을 가기도 하고, 원료를 구하기 위해 계절과 때에 맞는 시간과의 싸움도 벌려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자신에게 필요한 작가정신이고, 나름의 색깔을 정확하게 표현하려는 숨은 노력이 아닐까 싶다.
‘누구나 쓸 수는 있지만, 아무나 쓸 수는 없다’라는 말을 한 적이 있다.
무슨 말이냐고 묻는다면 모든 일에는 의욕만으로 되는 게 아니라는 것.
기본적인 필체와 필력.., 그리고 ‘끼’가 있어야 한다.
세계 최초로 히말라야 16좌 완등으로 세계 등반사를 다시 쓴 산악인 엄홍길 씨는 “의욕만으로 덤비면 산은 결코 용서하지 않는다”는 말을 했다.
거친 산을 오를 땐 독재자가 되어 책임지고 결정할 줄 알았고, 거듭되는 실패에도 굴하지 않는 투지를 가졌고, 일관되고 우직하게 한 길을 걸었다.
정상 정복이 아니라 산이 허락하면 정상을 잠시 빌린다고 표현하는 자연에 대한 겸허함이 있었고, 무엇보다 인간에 대한 변함없는 애정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타고난 힘을 바탕으로 꾸준한 노력으로 필요한 지식을 습득했고, 겸허하고 성실한 자세로 사람들의 신뢰를 얻었기에 세계적인 산악인으로 우뚝 설 수 있었다.
(출처: ‘엄홍길의 휴먼 리더십’ 중에서)
이 일을 하고 싶다는 의욕은 기본이다. 거기에 지치지 않는 뜨거운 열정이 없으면 단 하루도 버티기 힘든 일이 바로 글씨 쓰는 작업이다.
내가 쓰고 스스로 만족하는 글씨는 취미일 뿐이다. 취미가 아닌 프로페셔널 작가의 길을 걷는다면 상대방이 내 글씨를 보고, 읽고, 표현하고, 평가해야 하기 때문에 의욕 하나만으로 부족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의욕을 뛰어넘는 실제적인 요건은 무엇일까?
전혀 다른 일을 내 분야로 승화시키기 위한 것! 내가 제일 잘하는 일, 내가 이 일을 통해 더욱 좋아하게 만드는 것.. 이런 요건들을 갖추고 배양할 때 비로소 내가 하고 싶어 하는 일이 되는 것이다.
모든 일은 순서가 있고, 그 순서에 입각한 절차상의 문제들을 내 스타일대로 만들고 철저한 준비를 통해 성실하게 임한다면 글씨 쓰는 일이 한결 쉬워질 것이다.
그렇지만, 간과해서는 안 되는 것은 자만심이다. 처음에 시작할 때의 마음가짐 ‘초심’을 잃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변함없는 마음자세에서 작가의 생명이 오래가는 법이다.
물론.., 이 말은 꼭 글씨를 쓰는 작가들에게 국한된 사항은 아니다. 우리들이 일상에서 생활하는 모든 분야에서 필요한 요소이다.
부득이 이 말이 예술분야에서 더욱 절실하게 다가오는 것은 그림, 글, 글씨를 쓰는 작가들의 공통점은 예술혼을 불어넣는 작업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