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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캘리그래피 석산 Jun 23. 2021

제22화 세상 끝나는 날까지...

2019년 0시 05분 목포 H병원 시한부 환자 격리 특실에서 어머니는 마지막까지 막내아들의 손을 놓지 않고 89세의 일기로 세상과 이별을 했다. 2017년 11월 뇌경색으로 쓰러진 후 1년 6개월 만의 일이었다.

임종의 카운트다운이 세는 동안에도 어머니는 '내 손을 놓지 않았다'

임종 직전까지 막내아들의 손을 놓지 않으셨던 어머니

누구에게나  이런 가슴 절절한 사연이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그렇게도 어머니는 막내아들을 끔찍이도 아끼고 7남매 중 가장 많은 사랑을 베풀어 주셨다. 어머니의 마음을 너무나 잘 알기에 아무 망설임 없이 섬으로 내려올 수 있었다.


본인의 글과 글씨중에는 어머니의 대한 이야기가 가장 많다. 그것도 그럴 것이 어머니와의 시간을 제일 많이 할애해서 그럴 수도 있다.


서울생활 20여 년 동안 어머니 살아 계실 때까지 무조건 여름휴가는 혼자 생활하셨던 섬집이었다. 1주일간의 짧은 휴가를 끝내고 서울로 올라갈 즈음.. 어머니는 닭똥 같은 눈물을 훔쳤다.


"어서 가라!  어서가"


"어머니, 내년 여름휴가 때 또 찾아뵐게요"


그러면서 자동차 눈미러로 멀어져 간 어머니의 모습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여객선에 오르는 시점까지 눈물을 훔쳐야만 했다. 휴가 온 첫날은 어머니와의 24시간을 보낸다는 생각으로 기분 좋게 보내지만, 휴가 마지막 밤부터 마음이 찹착해지면서 다음날 떠나가는 날까지 이별의 아쉬움을 10년 넘게 지속되다 보니.. 이러한 이별의 슬픔을 더 이상 되풀이하고 싶지 않은 마음으로, 그보다는 어머니의 얼마 남지 않은 생의 시간을 함께하고 싶은 마음에서 귀향 후, 첫 저녁식사자리에서 어머니는 "이제는 더 이상 막내아들과 헤어질 일이 없네"라며 즐거워하셨다.


어머니를 편히 모시고자 옛집을 허물고 그 위에 새집을 지어 어머니와 90여 일 동안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어머니 사후 섬을 떠나고 싶어 잠시 서울로 올라왔지만,  1달 만에 다시 섬으로 돌아왔다.


 올해로 섬 작가 생활 5년 차로 접어들었다. 왠지 모르게 섬 생활은 내게 숙명과도 같다는 생각이 든다.


비록, 어머니는 하늘로 올라가셨지만, 어머니의 혼이 서려있는 섬집을 지키며 남은 생을 어머니를 추억하며 사는 것도 나에겐 큰 의미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어머니를 생각하며 폐목으로 서각 작품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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