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캘리그래피 석산 Jul 16. 2021

제30화 '배(船) 이름'을 새겨드려요

본인이 창작활동을 펼치고 있는 곳은 농어촌이 함께 공존하는 진도군 조도면에 위치한 섬마을이다. 농촌의 비중보다 바다의 비중을 더 중요시하는 전형적인 어촌마을에 더 가깝다. 바다에서 생산되는 톳, 미역, 다시마, 전복, 멸치 외 다양한 해산물들을 생산하는 곳으로 양식 톳의 경우 대한민국 톳 생산량의 50% 이상을 이곳 진도 조도해역에서 나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바다 경작의 비중이 많다 보니 조도(새섬) 섬마을에는 어장관리선(FRP 선외기) 수가 100여 척이 넘게 섬과 섬을 오간다.


그 옛날 노를 젓는 무동력선, 목선에 경운기 엔진을 장착한 경운기 엔진형, 그리고 지금의 가볍고 빠른 FRP 선외기 엔진을 장착한 선박형태는 어민들에게는 지나 온 날들의 초상(肖像)이다.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양식 톳 발을 하면서 생계를 이어 온 김향 빈(72, 진도군 조도면 신전 길) 씨가 지금은 톳 발 양식을 접고 삼치잡이를 전문으로 배를 운영하고 있다. 이곳 섬에서는 4월부터 7월 초까지 양식 톳을 하는데 방파제와 바다를 오고 가는 배들의 겹침 풍경은 살아있는 어촌마을의 활력소다. 그러나 지금까지도 김향빈 씨 선박 '독수리호'는 수개월째 바다를 밟지 못하고 육상에 거치된 채로 9월 삼치잡이 시즌을 기다리고 있었다.


지나가는 길에 김향빈 씨는 독수리호 선명이 오래돼 지워졌으니 배 이름을 써달라고 부탁을 했다. 그 대신 삼치잡이 낚시의 노하우를 전수시켜주겠다는 약속을 했다. 어찌 되었든 이곳 섬마을(진도군 조도면 신전마을)에서는 가장 삼치를 잘 낚는 '삼치 달인'으로 통한다. 흔쾌히 수락했고, 맑은 날 배 선체 외벽에 2곳, 갑판 조타실 앞에 1곳에 '독수리'호를 새겨주기로 약속하고 서체 디자인에 들어갔다.


최초 선박을 건조하는 조선소에서 쓰인 배 이름은 각자 다른 선명을 가지고 건조가 되는데도 불구하고 배 이름 서체는 견명조 형태를 띤 무미건조한 글씨다. 배 이름이 다르고 배의 쓰임도 다를 수 있는데도 조선소 측은 배 이름 글자 형태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그래서 김향빈 씨는 "서체가 모두 동일해 배 이름에 대한 개성미가 떨어진다."면서 본인의 선명 '독수리호'는 삼치잡이 배로 활용도가 높으니 새의 제왕 독수리처럼 먹잇감에 대해 빠르게 낚아챌 수 있는 느낌을 부여한 배 이름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내게 했다.

삼치잡이 제왕으로 늘 그 자리를 지키겠다는 의지 또한 담겨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서체의 방향은 본인이 2015년 대하드라마 임진왜란 피로 쓴 교훈 '징비록'체를 최대한 적용했다. 서체의 자, 모음에 대해서는 날카롭고 공격적인 형태를 취한 글씨 디자인이 독수리호에 적용했다.

석산 진성영 작가 자신의 고유서체 '석산체'로 배 이름을 새기고 있다.

오전 10시 작업을 착수해 오후 14시 30분경에 최종 마무리를 지었다. 작업하는 시간 동안 김향빈 씨는 수시로 다녀갔고, 붓으로 글씨만 쓰면 금방이라도 완성될 것 같은 본인의 생각에 머리를 긁적거렸다. 배 이름을 새기고 쓰는데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걸린다는 점과 꼼꼼한 디테일 작업 과정이 부가된다는 점을 새삼스럽게 알게 되었다면서 연신 고마운 미소를 내게 보냈다.


작업을 진행하면서 오고 가는 선주들의 표정은 한결같이 본인들의 배 이름도 써 주기를 대했다.

석산체로 완성된 배 이름 '독수리'호

그리고 두 번째 주자로 같은 마을 김진평 씨의 배 이름을 써주기로 약속했다.


그렇게 '배 이름 써주기' 재능기부 프로젝트는 돛을 올렸다.

매거진의 이전글 제29화 '섶밭기미'를 아시나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