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세기 넘게 동고동락했던 목선(전마선, 傳馬船: 노를 저어 다니며 가까운 연안에서 미역이나 해초, 조개를 채취하는 근해어업용 어선을 말한다.)은 더 이상 선박으로서의 가치를 잃은 채 여기저기 파손되어 폐선으로 꽤 오랜 시간 동안 방치되고 있었다.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60년 전.. 1961년 2월 명지마을(진도군 조도면 명지길) 박진우 씨 아버지께서 김 양식을 하기 위해 최초 사용했다는 노 젓는 목선 전마선인 셈이다.
황포돛배(일명, 풍선 배) 이후에 출현한 전마선은 선수, 선미를 합한 총길이가 5m 내외고, 배의 명칭은 앞쪽을 '인물', 중간을 '쇠스랑', 뒤쪽을 '골', 배 위쪽, 즉 평면으로 보았을 때, 배 앞쪽은 '고다', 중간을 '배몽애', 후미에서 노 젓는 곳을 '노젓'이라 하고, 그 오른쪽 앞을 '노앞', 왼쪽을 '노뒤'라고 했다.
박진우 씨는 선외기 엔진을 장착한 FRP 선박을 타고 다니면서 60년 전 아버지가 타고 다녔던 목선을 보며 옛 추억을 떠올렸다고 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나무 재질로 만들어진 목선은 여기저기 풍파에 침식되어 흉물스럽게 변해갔다."면서 "지난 12호 태풍 오마이스의 직접적인 영향으로 완전히 파손되면서 선저(배의 바닥) 부분에서 떨어져 나간 배 조각이 있는데 작품으로 활용하려면 가져가라는 언질을 받고 수거해 왔다.
폐목선 선 저의 길이는 대략 3m 남짓했다.
그 옛날 목선의 기억은 힘들고 암울했던 유년시절 추억이 앞선다. 한 겨울 눈보라가 치던 날! 아버지 따라 힘껏 노를 저으며 맨손으로 김 양식장에 김을 매러 갔던 일.. 지금의 김 양식장은 장비의 현대화로 예전의 김 양식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요즘에는 땔감으로도 쓰지 않을 소나무 폐선의 잔해 중 일부를 오래도록 보면서 옛 향수를 느낄 수 있는 작업을 시작했다. 기존의 사용했던 폐목의 길이보다 2~3배가량 더 크다 보니 작업 속도도 더디기만 했다.
누군가! 굳이 힘들고 어려운 길을 가느냐고 물을 때...? "산다는 것이 다 그런 것이 아니겠느냐"며 반문한 적이 있다.
'산다는 것은 모여서 이웃으로 사는 것, 서로를 위하여 사랑하는 것, 늘 배려하는 마음가짐을 갖는 것이야말로 "세상을 아름답게 볼 수 있는 현명함"이라고 생각이 든다.
아무리 쓸모없는 물건일지라도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접근한다면 방법의 차이에서 많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