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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캘리그래피 석산 Jul 27. 2023

제9편_ 훈민정음해례본 108자를 새기다

태종 이방원의 아들에서 나라를 다스리는 군주로 변신한 세종(조선 제4대 왕, 1418~1450)황희 같은 문제아, 공신 조말생, 천출 장영실의 주군으로 백성을 사랑한 나머지 훈민정음의 대역사를 완성시킨 인물이 바로 대왕 세종이다.


훈민정음해례본(訓民正音 解例本)은 한글, 즉 훈민정음이라는 문자 체계의 사용 방법을 알리기 위해 만들어진 책으로써 국보 제70호며, 유네스코에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다. 훈민정음은 그 자체로 글자의 이름이며 책의 이름이기도 하다. 다만 발견된 책에서 훈민정음이라는 글자를 해례하고 있어 책을 훈민정음 또는 훈민정음해례본이라고 명칭 한다.(출처: 나무위키)


"나랏말싸미 듕귁에 달아 문자와로 서르 사맛디 아니할쎄
이런 젼차로 어린 백셩이 니르고져 홀 배 이셔도
마참내 제 뜨들 시러펴디 몯 할 노미 하니라
내 이랄 위하야 어엿비 너겨
새로 스믈 여듧 짜랄 맹가노니
사람마다 해여 수비 니겨 날로 쑤메 뼌한킈 하고져 할따라미니라 "

(훈민정음해례본 108자 한글 해석본)


훈민정음해례본 108자를 서각으로 새기기까지의 과정을 먼저 살펴보자. 때는 2022년 7월 20일 진도군 조도면 신전마을에서 200년이 훌쩍 넘은 거목 팽나무가 고사(枯死)됐다는 마을 이장의 급한 전화를 받았다. 작품으로 활용하려면 거목을 가져가라는 전언이었다. 본인이 관리하는 석산자연농원 입구로 거목을 옮겼고 그날부터 10월 8일까지 80여 일간의 작업에 착수하게 됐다.

거목 팽나무를 석산자연농원 입구로 옮기고 있다.

말 그대로 대공역이었다. 사람의 손으로는 움직이지도 않은 수십 톤의 거목 팽나무는 뿌리 부분과 잔가지를 제거한 몸통 부분으로 총길이 2m 84cm 둘레 1m 남짓한 크기다.  

먼저 훈민정음 한글ㆍ한자 혼용판 108자를 총길이에 글자 크기를 계산한 후 전체 글자가 들어가는 나무틈에 종이테이프를 붙인 다음 그 위에 108자를 정돈시켰다. 울퉁불퉁한 팽나무는 평평한 나무보다 2~3배는 힘든 고난도의 작업이었다.


작업 이틀 째 비가 오전까지 내렸다. 뿌리 부분 쪽에 운지버섯이 자라고 있었다. 모든 글자를 파내는 동안 손대지 않기로 했다. 글자를 따라 하나 둘 망치질 작업이 거의 한 달 넘게 소요됐다.

허리가 끊어질 듯한 통증이 시작됐다. 쉴 틈 없이 망치질을 한 왼쪽 어깨도 아파오기는 말할 것도 없었다.

무엇을 위해 이런 힘든 일을 자초한 것일까?

누구를 위해 사서 고생을 하는 걸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모든 것은 자기만족에서 비롯되었다는 결론을 내린 후부터는 하루도 빼먹지 않고 7~8월 폭염도 아랑곳하지 않고 작업은 계속되었다.


작업 공정률 50%가 갓 넘어섰을 때 목포 MBC 뉴스데스크팀에서 연락이 왔다. 한글날 저녁 8시 뉴스데스크 단독 보도로 다루고 싶다는 담당기자의 전화였다.


그렇게 2022년 7월부터 시작된 팽나무 거목 서각 작업은 10월 6일쯤 거의 마무리가 되어 나무 바닥 쪽 흙 닿는 부분에 썩음 방지를 위해 돌을 3단 높이로 쌓고 다시 중장비를 이용해 거목의 자리를 정확한 위치에 확보거치시켰다. 이틀간 방부칠을 2회 실시하고 비로소 한글날 아침 광택제를 바름으로써 80여 일의 거목 작업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애초 코로나19로 지친 국민들의 마음을 위안케 하기 위해 훈민정음해례본 서각 작업을 시작했었다. 물론 나만의 만족을 위해 작업했던 점 또한 부인 못한다. 그렇게 200년이 넘은 거목 팽나무는 새 생명을 부여받게 되었고, 더불어 섬을 찾은 관광객들에게 볼거리를 제공해 주고 있다.

80여일간 대장정 끝에 다시 태어난 훈민정음 해례본  

*서각 비하인드>>

1. 3개월 동안 108자 훈민정음해례본을 새 기기 위해 지금까지 2년 넘게 서각 작업을 했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팽나무 크고 작은 가지들을 정리하며 108자가 들어가기 위해 줄자로 나무의 사이즈를 잰 다음 글자 크기를 유추해 프린트 작업에 들어갔다. 처음 시작하는 단락과 끝나는 단락의 사이 여백도 같이 계산해서 프린트된 글자를 파내는 작업만 1주일 넘게 걸린 듯했다. 1주일 동안 이틀 정도 비가 내렸다. 고목에 핀 운지버섯은 비를 맞고 쑥쑥 자라고 있었다. 굴곡진 능선을 따라 고개를 숙이기도 하고 누워서 글자를 파내기도 했다. 한마디로 고행의 시간을 겪으며 종이테이프에 글자들이 선명하게 들어왔다.

(여기서, 전체 나무에 종이테이프를 붙인 다음에 그위로 프린트된 글자를 정렬시켜 파내는 작업이다.)  


2. 종이테이프에 입력된 글자를 비로소 망치질을 하고 칼을 대면서 깊이를 10mm 정도로 깊게 파 들어갔다. 한 달 보름이 넘게 글자 파내는 작업만 계속됐다.


3. 기본적인 글자 파내는 작업이 끝나고 다시 파 들어간 곳의 디테일 작업을 진행했다. 사포를 이용해 글자 속의 이물질과 자ㆍ모ㆍ획의 깊이는 10mm에 가까운지 108자 한 자 한 자를 세밀하게 정리했다.


4. 기본적인 글자 새김 작업이 끝나고 이틀에 걸쳐 썩음 방지용 오일스텐을 발랐다.


5. 10월 9일 한글날을 1주일 남겨두고 색 입히기에 들어갔다. 해례본 서각 작품이 섬에 거치된 점을 감안해 '파도'를 상징하는 푸른색과 흰색을 글자의 절반씩 할애해 색 입히기에 들어갔다.


6. 작품 완성 3일 전  색 입히기가 끝나고 10월 7일과 8일에 다시 투명 방부액을 바르고 9일 한글날 아침에 광택제 투명 락카로 작품을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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