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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캘리그래피 석산 Jul 31. 2023

제14편_ 늘 소중하게 채워가는 삶

삶의 대한 정의는 오직 '자신'만이 알 수 있다.


살아가는 방식과 방법이 다른 각자의 삶에 정의를 내린다는 것은 위험한 독설가의 행패에 불과하다. 소위 배웠다는 학자나 수양의 도에 통달한 수도승의 깨어있는 말 한마디가 진정한 삶의 정의가 될 수 있을까? 분명한 것은 이 또한 그들이 내세우는 독설에 불과할 뿐! 세상 사람들의 전부를 이해시키기에는 달콤한 함정에 불과하다.


분명한 것은 자신이 살아온 현재까지의 삶이 얼마나 행복했고, 불행했는지에 대한 담대한 평가의 잣대를 재보는 것이야말로 자신에게 주어진 객관적 삶의 대한 정의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남아 있는 삶에 대한 철저한 계획과 실천이야말로 행복한 삶으로 가는 원천이요, 후회하지 않는 삶의 길이라고 생각된다.


부족한 부분을 채우고 불필요한 것들을 과감히 버리는 결단력, 누가 뭐래도 내 방식의 만족감이 있다면 그게 바로 행복한 삶이 아닐까? 단지 고명(高明)한 현자의 가르침, 법력이 어난 고승이 내뱉는 말 한마디, 예수의 말이 곧 진리인양 설파하는 종교지도자의 설교보다는 '세상의 중심은 나로부터'라는 기준을 잡는다면 삶의 대한 정의가 복잡하게 꼬이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늘 소중하게 채워가는 삶'이라는 말을 좋아한다. 자신의 삶 자체가 '부족하고 공허하다'는 생각으로 만족스럽지 못한 삶을 살고 있다는 반증이기에 하루하루를 소중히 여기며 더 나은 내일에 대한 희망을 기대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누군가에게는 현재 시간이 행복할 수도, 고통스러울 수도 있다. 내가 어떻게 하느냐? 에 따라 삶의 척도가 추락하고 올라갈 수 있다.


모든 것은 나 자신에게 물어보라.


*서각 비하인드>>

1. 양각을 시도할 때 나무 표면을 매끄럽게 정리할 필요는 없다. 서각은 글자가 '갑'이고 나무 표면은 '을'이 된다. 글자를 감싸 안은 포면은 때로는 일부러 거칠게 해서 글자와 나무 결과의 조화를 이루게 하는 경우도 있다.


2. 나무 표면 결도 부드럽고, 글자도 부드러우면 뭔가 아쉬우면서 밋밋한 느낌이 든다.

사람도 마찬가지지만 모든 사물도 서로 유기적인 조화 속에서 더욱 돋보이는 작품을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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