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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캘리그래피 석산 Jul 30. 2023

제13편_ 무심(無心)

2021년 그 해 7월은 폭염의 절정이었다. 가만히 있어도 비 오듯 땀이 이마와 등줄기를 파고들었다. 난 생 처음 막일 알바를 한 기억이 난다. 전남 진도군 조도면 새섬은 다도해 해상 국립공원으로 지정돼 국립공원 서부지사에서 산과 등산로를 관리하는데 섬 지역이다 보니 막노동 일꾼을 구하기가 쉽지 않은 상태에서 동네 형님이 정신 건강에도 좋은 막일을 권해서 한나절 일당제로 일한 후 폐자재를 작품으로 활용한 이야기다.


막일의 골자는 신금산(해발 230m, 전남 진도군 조도면에 위치한 조도 새섬에서 두 번째로 높은 산으로 정상에 오르면 조도군도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등산로 자재를 헬기의 긴 쇠 로프에 매달아 주는 일이었다. 사람의 힘으로 해발 230m의 험준한 비탈길로 자재 옮기기에는 무리가 있어 등산로를 조성하는 곳에 필요한 자재를 헬기가 실어 나르도록 도와주는 역할이었다.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막일은 결코 녹록지 않은 일이었으나 땀 흘리며 노동을 하는 사람들의 노고를 잠시 헤아릴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일이 끝나고 작업장에 등산로에서 발취한 폐자재 일부가 널브러지게 방치된 것을 현장소장에게 작품으로 활용하고자 하니 하나만 달라고 했더니 모두 가져가라는 것이었다.

국립공원에서 공수한 페자재를 차에 싣기전 모습

야외 서각 작업장으로 옮겨 온 페자 재는 부분적으로 상태가 좋지 않았다. 전기 대패를 이용해 거친 부분을 부드럽게 연마(硏磨)하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느낌이 좋았다. 대체적으로 생나무는 나무면이 한 가지 색으로 나오지만, 폐목은 세월의 무게만큼 다양한 빈티지 색으로 조화를 이룬다는 점이 큰 매력으로 다가온다.


평소 법정 스님의 법문집을 애독하는 과정에서 좋은 글귀가 있으면 메모해 글씨로 승화시키는 작업들을 종종 해왔다.


"물소리 바람소리 빈마음, 그것을 무심이라고 한다. 빈 마음이 곧 우리들의 본마음이다. 무엇인가 채워져 있으면 본마음이 아니다. 텅 비우고 있어야 거기 울림이 있다."(출처: 법정스님 법문집 중에서)


*서각 비하인드>>

1. 옛날이나 지금이나 철도레일에 깔아놓는 나무가 침목(沈木: 길고 큰 물건 밑을 괴어 놓을 때 쓰는 나무토막)이다. 다도해 해상 국립공원 등산로 역시 침목자재로 이용됐다. 서각 하기에는 침목토막처럼 좋은 게 없다. 일단 나무 재질이 단단하고 나무 결이 촘촘하다는 게 가장 큰 특징이다.


2. 다도해 해상 국립공원 1일 알바 후 습득해 온 침목으로 각(刻)을 냈다. 다른 일반나무에 비해 무겁다는 게 단점이었지만 작업하는 동안 기분은 상쾌했다. 섬은 태풍이 몰아치면 강한 바람이 동반하기 때문에 실외에 거치하기에는 그만이다.


3. 나무 조각 탈피현상도 일어나지 않는다. 그만큼 작업 속도는 거침없이 빠르게 진행되고 나무 전체에 손을 따로 볼 필요 없는 탁월한 재료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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