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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캘리그래피 석산 Jun 09. 2024

제6편_ 새날, 새 희망

5개여 월간의 광주 생활을 접고 자유 유랑의 시간 속으로 떠날 준비를 하면서 잠시 잊고 지냈던 어머니의 고향! 진도 조도 새섬을 찾았다. 광주에서 미쳐 작업을 마치지 못한 서각 작품을 마무리하기 위해서다. 산천과 바다는 옛 모습 그대로 변한 것이 없었다. 단지, 변한 것이 있다면 나이를 가득 채운 섬의 터줏대감들이 섬을 떠나온 지 2년 사이에 돌아올 수 없는 길을 떠났고, 섬 떠나기 전 잘 관리되었던 내 소유의 농원이 무성한 잡초와 풀 무덤이 돼 있었다.      


옛집 위로 새로 지은 집은 나를 반겼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정작 나는 반갑다는 생각보다는 그동안 돌보지 못한 미안함과 수많은 풍파에 온전하게 잘 견뎌줬음에 고맙고 감사함이 먼저 다가왔다.

서각 작업에 몰두하고 있는 석산 진성영 작가

여장을 풀고 집 주변을 살피면서 2년의 공백기가 고스란히 여기저기에서 흔적을 남기고 있었다. 불과 이곳에 머무는 시간은 3일이다. 3일간 마무리 짓지 못한 서각 작품을 완성시킨 후 먼 유랑의 시간을 갖게 될 것이다.

펼쳐진 노천 작업대에 서각 작업이 이뤄지고 있다.

서각 작품명은 “새날, 새 희망”으로 정했다.

우리들의 오늘은 매일매일이 서로 다른 새날이고, 그 새날마다 새 희망을 꿈꾸지 않으면 도태되고 퇴보하는 삶을 살아가야 한다. 희망이 없는 날은 우리에게 없다. 단지 스스로 희망을 품지 않았을 뿐이다.   

   

깎여지는 나무 조각들이 떨어지고 작업대 주변과 발아래로 수북이 쌓여갈 때 작업은 어느 정도 마무리 단계에 접어든다. 파내고 파내는 작업이 끝나야 파낸 글자 속에 색 입히기가 진행된다. 매번 하는 서각은 이제 어느덧 자연스럽기까지 하다. 글씨를 쓰는 도구가 단지 한지에서 나무로 옮겨갔을 뿐이다. 연약한 얇은 종이에 비해 두툼하고 강한 육질의 나무는 내가 휘두른 칼끝에서 본연에 썼던 원본의 글자가 고스란히 피어난다.


전체적인 나무의 기교는 내게 필요 없다. 나는 서각 작가가 아니기 때문이다. 단지 내가 최초 썼던 글자가 그대에 나무에 투영되면 그뿐이다. 더 많은 욕심은 나에게 사치스러운 작업에 불과하다. 글자를 파내는 깊이 또한 중요하지 않다. 누가 글자의 깊이를 정해놓지 않았기 때문이다. 글자의 윤곽만 제대로 표현된다면 글자의 깊이는 그만큼 시간을 더디게 할 뿐이다.

종이에 썼던 글자의 전체적인 이미지는 솟아오르는 태양을 상징하는 발묵에 비친 ‘새날’의 글자색은 검은색이었으나, 나무에 글자를 새기면서 그리고 마지막에 색을 입히면서 검은색 ‘새날’을 흰색으로 바꿨다. 해를 상징하는 발묵 자체가 붉은색이기 때문에 검정 글자색은 붉은 해에 침식되어 글자가 무의미한 느낌을 받게 될 것 같아 글자 색을 흰색을 칠해 ‘새날’의 글자를 돋보이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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