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이번 코로나19 사태에서 비교적 운이 좋은 편이다. 실직 대란의 한가운데에서 새 직장을 잡았고, 각급 학교 신입생들이 학교에 갈 수 없어 쩔쩔 매고 있을 때 우리 집 '작은 사람'은 '긴급보육'의 시행으로 하루도 빠지지 않고 어린이집에 나가고 있다. 무엇보다 감사할 일은 가족 친지 지인들 가운데 확진자가 발생했다는 소식이 들리지 않았다는 점이다.
코로나19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올해 들어서 미세먼지 이슈가 부각되지 않아 다행이다. 딸아이는 미세먼지가 크게 일어나면 알러지성 비염이 심해지는데 올해는 아직까지 비염 때문에 고생한 적이 없다. 딸아이를 포함한 모든 아이들이 열심히 손을 씻어서인지 감기도 한 번 안 걸렸다. 코로나19 이후 실내 다중이용시설을 극도로 꺼리게 됐지만 오히려 탁 트인 야외 공간을 다니는 것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큰 불만을 가질 이유는 없다.
새 회사는 직원 수가 적고 전체 회식이 드물다. 회사의 특성 때문인지, 코로나19 이후 모임을 자제하는 사회 분위기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음주 빈도도 확실히 줄었다. 아이의 하원을 담당하고 있는 나로서는 누군가에게 먼저 저녁에 술 먹자고 말을 꺼낼 수 없는 처지이기는 하지만 확실히 술 마실 일이 줄었다. 운동도 새로 시작했다. 이사한 집이 낡은 아파트라 단지 안에 테니스 장이 있어서 주 1회 테니스 레슨을 받기 시작했다.
코로나19 이후로 실내 다중이용시설에서 머무는 일이 급격히 줄었다. 아이와 함께 놀러 갈 곳이 크게 줄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아이와 함께 그림책을 보러 다니던 도서관이 문을 닫아 안타깝다. 서울대공원 동물원도 실내 전시시설은 모두 문을 닫았다. 국립과학관, 현대미술관, 아쿠아리움 등 계절과 날씨에 구애받지 않고 놀러 갈 수 있는 전천후 시설이 선택지에서 사라진 것은 약간 아쉽다. 대형마트에서도 필요한 물건을 사고 나면 곧바로 빠져나오고 예전처럼 죽치고 있지는 않는다.
코로나19 이후 가장 크게 달라진 점이 있다면 부모님과의 왕래가 줄었다는 점일 게다. 이전에는 확대 가족 구성원의 생일 또는 각종 기념일에 모임이 많았는데 코로나19 이후엔 딱 줄었다. 나의 어머니이자 아이의 할머니가 코로나19를 굉장히 우려하기 때문이다. 4월 어머니 생신, 7월 아버지 생신 모임을 건너뛰었다. 1월 이후 아들 삼 형제가 모두 이사를 했는데 어머니의 만류로 아직 모두 모이는 집들이를 하지 않았다.
여름이 되기 전까지는 마스크를 쓰고 다니는 것이 전혀 불편하지 않았다. 나는 실외에선 마스크를 잘 쓰지 않는다. 적절한 거리두기가 유지되는 탁 트인 실외 공간에선 마스크 착용이 불필요하다는 정은경 선생님의 가르침을 믿기 때문이다. 내 머리로 생각해봐도 타인과 밀접한 접촉을 유지하지 않는 실외에서 코로나19에 감염될 가능성은 굉장히 낮을 거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러나 봄이 오고 여름이 되고 장마철에까지 이르면서 마스크 착용이 고통스럽게 느껴질 때가 있다. 마스크를 쓰고 있으면 덥고 습한 기운이 좀처럼 몸 바깥으로 시원하게 빠져나가지 못하니까 더위와 습기에 유달리 취약한 나에겐 장마철 마스크 착용은 고역이다. 하지만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나 실내 시설에 들어갈 때는 꼭 마스크를 착용한다. 그게 나와 다른 사람을 보호하는 일이고, 내 아이를 보호하는 일이라고 믿으니까 말이다.
대중교통에서 내리고 나면 손소독제를 사용한다. 여러 차례 '올바른 손 씻기 지침'을 유심히 살펴봤기 때문에 내 손 씻기 점수는 90점 정도 된다. 때로는 귀찮기도 하지만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에 손 위생에 많이 신경 쓴다. 덕분인지 몰라도 코로나19 이후에 병원 신세를 진 적이 없다. 귀찮기는 하지만 대의에 동의하기 때문에 손 위생은 큰 문제가 아니다.
누가 와서 나에게 코로나19 이전과 이후 삶이 어떻게 달라졌냐고 묻는다면 내 대답은 이럴 것 같다. 마스크와 늘 함께 다녀야 하고, 왁자함이 줄어들었고, 긴장감은 높아졌다고. 하지만 숨이 막히고 답답해서 못 살 지경은 아니었다고.
코로나19라는 긴 터널을 지나며 자주 드는 생각이 있다. 지구가 나보고 덜어내는 삶을 살라고 말해주는 것 같다는 느낌이랄까. 코로나19가 지나간 뒤 일상은 분명 달라져 있을게다. 그게 우리 모두에게 좋은 일이 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