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날, 여성 인권을 돌아본다.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매년 여성의 날을 맞아 유리천장지수를 발표하고 있습니다. 일하는 여성의 환경을 평가하는 지표인데요. 올해도 어김없이 순위를 발표했죠. 우리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을 대상으로 2013년 시작된 평가에서 올해까지 12년 연속으로 최하위를 기록했습니다. 아직 기성언론들은 다루지 않은 내용입니다. 29개국 가운데 29위죠. 여성의 고위직 비율, 기업 이사회의 여성 비율 등에서 최악의 수준을 기록했습니다.
낮은 남성의 육아휴직 참여, 높은 보육비용도 여성의 직장생활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이코노미스트는 "더 많은 여성의 노동 시장 진출을 장려하기 위해 일본과 한국은 OECD에서 가장 관대한 육아 휴가 정책 (전액 급여로 조정하면 각각 31주와 22주)을 제정했지만 아버지가 된 남성이 집에 머무르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라고 평가했습니다.
여성의 의회 진출도 일본에 이어 최하위 수준이었는데요. 정치 리더십에 여성이 많을수록 여성의 권리와 가족 정책에 더 많은 관심이 집중되는 것으로 나타났다는 연구가 있습니다. 여성 국회의원이 많을수록 여성의 지위에 관한 관심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는 뜻이죠. 그런디 이 유리천장지수의 상위 4개 국가인 아이슬란드, 스웨덴, 노르웨이, 핀란드에서는 여성이 의회 의석의 최소 45%를 차지합니다. 반면 한국과 일본에서는 점유율이 20% 미만으로 나타났습니다.
뭐 이런 결과가 나올 거라고 다들 예상했던 겁니다. 정부는 여성가족부 폐지에 속도를 내고 있고, 여성의 고용과 인권에 관한 지표는 크게 나아지는 게 없습니다. 세계 여성의 날은 1908년 2월 28일, 미국에서 1만 5천여 명의 여성 섬유 노동자들이 근로 여건 개선과 10시간 노동제, 참정권 등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인 것을 기념하기 위해 제정한 날입니다. 당시 미국에서 여성 노동자들은 앉아 쉴 공간도 없는 열악한 작업 환경에서 하루 12~14시간씩 일해야 했지만, 남성의 절반밖에 되지 않는 임금을 받았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의 남녀 임금격차를 살펴보죠. 여성가족부에 따르면 2022년 상장법인 전체 남성 1인당 평균임금은 8678만 원이었고, 여성 1인당 평균은 6015만 원으로 여성이 남성에 비해 30.7% 임금이 적은 걸로 나타납니다. 공공기관 전체의 남성 1인당 평균임금은 7887만 원, 여성 1인당 평균임금은 5896만 원으로 공공기관 근로자 1인당 평균임금의 성별격차는 25.2%로 나타났습니다. 성별 임금에 차이가 나는 주요한 원인은 여성의 근속 연수가 남성보다 짧기 때문인데요. 짐작하시는 것처럼 여성들이 결혼과 육아로 인해 경력단절을 겪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만큼 우리 사회가 돌봄을 여성들에게 맡기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죠.
여성가족부가 발표한 2023 통계로 보는 남녀의 삶 자료를 살펴보면요. 거의 모든 지표에서 여성이 남성보다 열악한 상황을 나타냅니다. 물론 격차가 줄어들고 있다고는 하지만요. 2022년 기준 여성의 경제활동참가율은 54.6%로 남성 73.5%에 비해 18.9%p 낮습니다. 여성 실업률은 3.1%로 남성 2.7%보다 높고요. 비정규직 근로자 비율은 여성이 46%, 남성은 30.6%입니다. 여성 저임금근로자(중위임금 3분의 2 미만인 사람) 비율은 22.8%, 남성은 11.8%입니다. 여성 임금근로자 시간당 임금은 1만 8113원, 남성은 2만 5886원으로 남성의 70% 수준에 그칩니다.
가사 또는 돌봄 부문에선 여성의 짐이 훨씬 큰 상황입니다. 2022년 육아휴직자는 남성이 3만 7884명, 여성은 9만 3245명이었습니다. 남성 육아휴직이 많이 늘었다고 해도 여성 육아휴직이 압도적으로 많죠.
경제상황도 여성이 열악합니다. 2022년 여성 가구주 가구소득은 3652만 원으로 전년보다 9%나 늘어났는데요. 그래도 남성 가구주 가구소득 7344만 원에 비해 절반 정도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2022년 여성 가구주 가구의 순자산은 2억 5천만 원이었고, 남성 가구주 가구는 5억 2천만 원으로 나타났습니다.
2022년 1천 명 이상 규모 민간기업의 여성 임원 비율은 12.4%입니다. 2022년 4급 이상 국가공무원 중 여성 비율은 23.2%였고요. 1급 공무원 가운데 여성은 6.3%로 나타납니다.
2020년 국회의원 당선자 중 여성은 19%에 그칩니다. 2023년 중앙행정기관 장관급 19명 가운데 여성은 3명에 불과합니다.
공공기관, 지방공사·공단 및 500인 이상 민간기업의 관리자 중 여성 비율은 21.7%에 그칩니다. 해가 갈수록 여성 비율이 늘어나고 있는 추세이기는 한데요. 아직 갈길이 멀어 보입니다.
2021년 성폭력 발생건수는 3만 2080건으로 전년보다 2613건 늘었습니다. 검거율은 90.4%를 나타냈는데요. 전년보다 5% p 낮아졌습니다. 데이트폭력이라고 불리는 교제폭력 범죄자는 2021년 기준 1만 975명에 이르렀고요, 스토킹 검거 건수는 542건으로 전년대비 12% 증가했습니다. 2021년 폭력 상담 건수는 86만 건에 이르렀습니다. 폭력 상담 유형 중 가정폭력이 59.8%로 가장 많고, 다음으로 성폭력(28.9%), 성매매(8.7%) 순으로 많았습니다. 한국여성의전화가 2022년 한 해 언론보도를 통해 알려진 사건을 분석한 결과, 남편이나 애인 등 친밀한 관계에 있던 남성에게 살해된 여성이 최소 86명인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살인미수 등으로 살아남은 여성 역시 최소 225명에 달했고요. 즉, 하루에 한 번 꼴로 여성들이 살해당하거나 살해 위협을 받는 일이 여전히 일어나고 있는 것이죠.
국민의힘과 민주당은 모두 1호 공약으로 저출생 대책을 내걸었습니다. 국민의힘은 시민이 안전한 대한민국이라는 공약을 내놨습니다. 밤길 안전하게 걸을 수 있도록 하겠다는 내용이 주를 이룹니다. 민주당은 당 여성위원회가 20대 성평등 의제를 정책위에 전달했다고 하는데 당 차원의 여성 공약은 아직 나오지 않았습니다.
결국 저출생 문제는 젊은이들이 마음 놓고 아이를 낳고 키울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줄 수 있느냐 하는 문제에 달려있을 것 같습니다. 청년들에게 사회를 유지하기 위해 너희들이 희생하라고 강요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이 시대의 어른을 자처하는 정치인과 기득권층에 속하는 사람들이 젊은이들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해 신경 쓰지 않는다면 우리나라는 정말 어려운 상황에 빠지게 될 겁니다. 쥐어짜서라도 희망을 찾아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