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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정수 Apr 03. 2024

[생태유학]⑭어린이 탐조단 출동

고양이 미라를 묻어주다

아침부터 좀 심상치 않았습니다. 밤에 늦게 잠자리에 들지 않았는데 딸아이가 아침에 매우 일어나기 힘들어하더라고요. 아침밥으로 차려준 구운 식빵과 과일, 삶은 계란은 먹는 둥 마는 둥 하고는 양치하고 학교에 나섰습니다. 계속 잠이 깨지 않는다고 하더군요. 사실 딸아이는 과천에 있을 때도 가끔씩 어지럽다고 하고 학교에서 조퇴를 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잘 다녀와! 인사하면서 속으로는 오늘도 조퇴를 할지 모르겠군 하고 생각했죠. 역시나 점심시간이 지나서 학교에서 전화가 오더라고요. 학교는 숙소인 도농교류센터(유학센터 또는 마을펜션이라고도 부름) 도보 5분 거리긴 하지만 아픈 딸이 귀가하니까 마중을 나갔죠.


세상 온갖 비실비실한 표정을 지어 보이면서 제대로 걷지도 못하더라고요. 머리가 아프고 어지럽고 미열이 있다고 합니다. 병원에 같이 가자고 하니까 그건 또 싫다고 하네요. 그래서 한숨 자고 일어나서 생각해 보자고 했죠. 간식으로 세상 좋아하는 딸기를 줬는데도 한 개 밖에 먹지 않는 걸 보면 아프긴 아픈 겁니다. 한 시간 자고 보자고 했는데요. 한 삼십분쯤 지나고 다른 아이들이 하교하는 왁자한 소리가 들리자 방문을 왈칵 열고 나오더라고요. 그리고는 밖으로 나갑니다. 많이 좋아졌다고 하네요.


나가서 아이들과 잠깐 뭔가 이야기를 나누더니 들어와서는 함께 탐조를 하러 갈 거라고 합니다. 쌍안경과 조류도감을 챙깁니다. 안 아프냐고 했더니 다 나았다고 합니다. 역시 친구와 자연은 아픔을 잊게 해주는 신비의 명약입니다. 혹시 모르니 따라나섰습니다. 아이들에게는 "난 경호원이야. 뒤에 따라다니기만 할 거야"라고 말해줬죠. 이날 탐조활동에 나선 어린이 탐조단은 모두 6명. 4학년 2명, 2학년 3명, 1학년 1명입니다. 공교롭게도 6학년들은 다른 일이 있었나 봐요.

진동분교 생태유학 어린이 탐조단 출동 기념

먼저 4학년들이 팀을 나누자고 합니다. 가위바위보를 해서 팀원을 뽑는 '즉석 드래프트' 행사가 열립니다. 다 뽑아놓고는 아쉬웠는지 서로 팀을 바꾸기도 합니다. 여차저차 출발합니다. 첫 번째 목적지는 마을회관입니다. 이 일대가 새를 보기에 좋다는 2학년 지우의 제안에 따른 겁니다. 아이들이 지난해 KBS 다큐멘터리를 촬영하면서 설치한 새집도 확인합니다. 나무에 매달아 놨는데 새집 안에 새가 들어와서 살고 있는지 너무나 궁금한 모양입니다. 까치발을 들어도 키가 닿지 않는 저학년들을 위해 4학년 이엘이가 대신 확인을 해줍니다. "아무것도 없어."


나무 꼭대기로 날아온 딱새와 노랑할미새, 멀리 날아가는 까마귀를 관찰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마을회관 국기게양대 금속봉에 매달려 놀던 아이들은 무당벌레를 발견했습니다. 여섯 아이가 조그만 무당벌레를 둘러싸고 호기심을 분출합니다. 한 아이가 영롱한 빛이 감도는 (죽은) 벌레 한 마리를 발견했습니다. 네이처링에 검색해 보니 '큰광대노린재'라고 합니다. 신비한 홀로그램 색이 아이들의 눈길을 잡아끌었습니다.


다시 '탐조'하러 가야죠. 계곡을 따라 곰배령 방향으로 올라갑니다. 계곡에서 헤엄치던 오리 두 마리가 푸드덕 날아오릅니다. 2주 전쯤 만났던 원앙이 아닌가 싶긴 한데, 배가 검은색이어서 도감에 나온 모습과는 좀 다르네요. 확실히는 모르겠습니다. 


이 길을 여러 번 산책한 딸아이가 아이들에게 "고양이 사체 보러 갈래"라고 묻습니다. 일전에 산책 나갔다가 계곡으로 내려가는 진입로 초입에 고양이 사체가 있던 게 떠올랐나 봅니다. 'Circle of Life'를 외쳤던 그 고양이 말이죠. 그런데 이번에는 좀 달랐습니다.


고양이 사체를 발견한 어린이 탐조단

강렬한 호기심으로 고양이 사체에 다가간 어린이들은 이 각도 저 각도에서 둘러본 뒤(물론 만지지는 않았습니다. 4학년들이 만지지 말라고 주의를 주더군요.) 고양이가 틀림없다는 걸 확인했습니다. 그러자 호기심은 슬픔 또는 동정심 또는 알 수 없는 감정으로 바뀌었습니다. 누군가가 "우리 고양이 묻어주자"라고 제안을 했습니다. 그러자면 땅을 파야하는데 주변에는 마땅한 도구가 없었습니다. 아이들은 돌무덤을 만들어주기로 하고 계곡에서 돌을 가져다가 고양이 주변에 쌓기 시작했습니다.


여기서 경호원이 개입했습니다. 돌무덤을 쌓으려면 굉장히 시간이 오래 걸릴 테고 돌무더기가 계곡 진입로를 가로막고 있으면 나중에 차량 통행에 방해가 될 수도 있으니까요. 그래서 주변에 도구가 없을지 찾아보다가 남의 집에서 쓰는 쇠스랑을 발견했습니다. 잠깐 빌려왔죠. 아이들에게 "우리 여기에다가 고양이를 묻어주자"라고 말하고 진입로에서 벗어난 한편에 땅을 팠습니다. 그리고는 쇠스랑으로 고양이 사체를 옮겼습니다. 이미 살점은 다 자연으로 돌아간 뒤라 종잇장처럼 가벼웠습니다.


고양이 사체를 흙으로 덮은 뒤 아이들은 그 위에다 돌무덤을 쌓았습니다. 다 쌓고는 무덤을 둘러싸고 고양이를 향한 묵념 시간도 가졌죠. 2학년 지우는 "고양이야 미안해"라고 말합니다. 그러자 4학년 경진이가 "왜 고양이한테 미안해 우리가 죽인 것도 아닌데. 굶어 죽었을 수도 있고..."라고 말합니다. 지우는 "그래도 다 인간 때문에..."라고 대답했지만 표정은 금방 가벼워졌습니다. 


고양이를 묻어주고 돌무덤을 쌓았습니다.

탐조를 더 진행하려고 했지만 아이들 중 몇 명의 '밀크티' 학습지 원격 연결 시간이 다가와 탐조는 끝이 납니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도 아이들은 아쉬움 가득한 마음으로 새를 찾습니다. 그러다가 아까 계곡에 내려갔을 때 물에 던져놓은 나무 막대기가 떠내려가는 게 보입니다. 아이들은 반가움 마음에 일제히 환호성을 지르네요. 2학년 수현이가 묻습니다. "삼촌 저 막대기 어디까지 떠내려가요?" 저는 "아마 서울 한강까지 갈지도 몰라"라고 대답했죠. 그랬더니 "진짜~~ 아?"라고 반응합니다. 바다로 간다고 이야기해 줄 걸 잘못했네요.


아팠던 딸아이는 저녁밥 잘 먹고 꾀부리면서 숙제하고 안 씻는다고 버티다가 씻고 곯아떨어졌습니다. 평화로운 산골마을의 하루가 저물었습니다. 산골유학 아이들의 마음이 또 한 뼘 자라난 하루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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