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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정수 Apr 10. 2024

[생태유학]⑮타고 남은 재가 다시 기름이...

사체 발견운이 어마어마했던 하루

22대 국회의원 선거 투표일이었던 오늘은 생태유학 어린이들이 학교에 가지 않는 날입니다. 다른 아이들은 양양으로 과자 만들기 체험 등등 일정을 하러 떠났습니다. 우리 집 딸내미는 탐조를 하겠다고 해서 따로 움직이기로 했죠. 요즘 강원도 인제군 기린면 진동 2리 설피마을에는 새벽마다 딱새가 노래를 부릅니다. 두 마리가 이 나무 저 나무에 앉아서 주거니 받거니 노래를 부르는데 그 소리가 너무너무 아름답습니다. 전날 저녁에 딸내미에게 새벽에 탐조를 떠나면 어떻겠냐고 했더니 그러자고 합니다. 그래서 새벽에 깨웠는데요. 못 일어납니다. 그래서 새벽 탐조는 포기하고 아침 먹고 출발하기로 합니다.


7시 조금 넘으니 딸내미가 일어납니다. 아침밥을 간단히 먹고 쌍안경과 간식거리를 챙겨 탐조를 떠납니다. 장소는 숙소에서 차로 10분 거리인 바람부리생태공원입니다. 진동 2리에서 현리로 나가는 길목인 진동삼거리를 지나 조금만 더 현리 쪽으로 가다 보면 좌측에 위치합니다. 현리로 장 보러 왔다 갔다 하면서 표지판은 많이 봤는데 정작 입구를 찾을 수가 없어서 사전 답사를 못했습니다. 이참에 바람부리생태공원을 찾기로 했습니다. 사전애 여러 블로그를 검색해 봤는데요. '진동리 35'라는 주소가 나오네요. 참고하시고요.


저는 KIA 자동차를 타는데요. KIA 내비게이션에는 '바람부리생태공원'을 바로 검색하면 나옵니다. 안 나오면 '쇠나들교' 또는 '진동 2리. 바람불이' 버스정류장을 찾으시면 입구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자갈길을 따라 쭉 들어오시면 진동 2리 이장님이 세워놓은 팻말을 보실 수 있습니다. 차를 세우시고 산책 시작하시면 됩니다.

저와 딸내미는 탐조가 목표였기 때문에 무슨 새가 와 있을지 기대가 굉장히 컸는데요. 새소리는 조금 들리긴 했지만 눈에 띌 정도로 많지가 않았습니다. 게다가 바람부리라는 이름에 걸맞게 바람이 엄청나게 불었죠. 설피마을에도 봄이 찾아와서 매우 춥지는 않았지만 바람이 많이 불어서 바깥 벤치에 앉아서 사이좋게 간식을 먹을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일단 저수지 한 바퀴를 돌아보기로 하고 걸음을 뗐습니다. 경치는 정말 좋습니다. 봄이 짙어지고 여름이 되면 정말 더 멋질 것 같습니다. 

바람부리생태공원에서 딸내미와 아빠가 사진을 찍었습니다.

딸내미가 갑자기 "이 저수지는 물이 고여있는 건가?"라고 묻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들어온 쪽으로 물이 들어오고 있었으니 어딘가 물이 나가는 데가 있을 거야"라고 답하면서 물이 빠지는 곳을 찾았죠. 얼마 안 가서 물이 나가는 곳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무언가 눈에 띄었습니다. 바위 위에 말라비틀어진 큰 물고기 시체 같은 게 있었죠. 일단 제가 먼저 가서 살펴보고 딸내미를 부르려고 했습니다. 징검돌을 건너가서 확인을 하는데... 굉장히 말라비틀어진 물고기라고 하기엔 그 무언가가 더 있었습니다. 물속에 말이죠. 


물 위로 말라비틀어진 머리통이 나와있었고 형체를 갖춘 몸통이 물속에 있었는데요. 다리가 네 개 있었고, 털이 곤두섰는데 물이끼가 파랗게 앉아있었습니다. 기괴한 형체였죠. 딸내미에게는 보여주기가 조금 우려될 정도로 끔찍했는데요. 이 딸내미는 이미 호기심에 압도돼서 너무너무 보고 싶어 하는 상태였죠. 앞서 노루 사체, 산양 사체를 만났기 때문에 이미 적응이 된 것인지도 모르겠는데, 크게 쇼크 받지 않고 잘 보더라고요. 천연기념물 217호인 산양은 강원도 인제군 기린면에서 자주 볼 수 있는 동물입니다. 그런데 살아있는 산양을 만나면 더 좋겠네요.

바람부리생태공원 저수지에서 발견한 산양 사체입니다. 너무 끔찍해서 가렸습니다. 

산양의 주검을 거둬서 묻어주고 싶은데 사실 엄두가 나지 않았습니다. 삽도 없고 혼자서 30킬로 되는 산양 사체를 끌어올리기도 어렵고요. 그래서 이장님께 연락을 드렸더니 군청 환경부서에 신고해서 처리해 주시기로 했습니다. 천연기념물이니까 보고도 해야 되고 여러 가지 조치가 필요하겠죠. 올해 이 지역에 눈이 많이 와서 탈진해 죽은 산양이 엄청나게 많았다고 하는데요. 이 녀석도 눈 많이 왔을 때 탈진해서 죽은 게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 고 산양의 명복을 빕니다.


바람부리생태공원을 뒤로하고 양양 남대천생태공원으로 향했습니다. 사실 인제군의 숲을 둘러보고 싶었는데요. 아직은 산불조심 입산통제 기간이라서 마땅한 숲이 없습니다. 다 통제라서요... 다음다음 주 4월 21일부터 곰배령이 개방되니까, 열리자마자 곰배령에 다녀와서 이야기를 전해드리겠습니다. 양양 남대천생태공원... 이라기보다는 남대천이 동해로 흘러들어 가는 합수부에 다녀왔습니다. 낙산 해변 방향과 송전 해변 방향에서 각각 모래톱이 자라나서 가운데 10미터 정도 물길이 바다 쪽으로 열려있습니다. 처음에는 모래톱을 따라 걸으면서 남대천은 막혀있는 건가 생각이 들 정도로 합수부 열린 폭이 좁습니다. 남대천에 풀어준 아기 연어들이 바다로 들어가지 못하면 어쩌지 하는 걱정을 하면서 발을 옮겼는데 다행히 뚫려있었죠.

강원도 양양 남대천이 동해바다로 흘러들어 가는 곳입니다. 생각보다 굉장히 좁습니다.  


여기에도 생명의 흔적이 굉장히 많았습니다. 갈매기와 가마우지가 남대천 하류 모래섬에 백여 마리 앉았다가 날기를 반복합니다. 갈매기 사체와 바닷물고기 사체가 여기저기서 관찰됩니다. 떠밀려온 고사목과 조개껍데기, 죽은 해파리도 관찰했습니다. 자맥질을 하는 '아비'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아비는 아버지가 아니라 새의 한 종류입니다. ('어미'라는 새 종류는 없습니다.) 


강과 바다가 만나는 곳에서 딸내미는 신이 났습니다. 기다란 막대기를 잡아서 '세월을 낚는 낚싯대'라고 하면서 세월을 낚기도 하고요. 모래 언덕을 눈 언덕 삼아서 데굴데굴 굴러 내려가기도 했습니다. 닳아빠진 반들반들한 유리조각을 모으면서 '유리 컬렉션'이라고 강조하고요, 조개껍데기도 모았습니다. 숯 조각을 주워서 각목에 '경진이네'라고 쓴 뒤 집으로 가져가자고 우깁니다. 집 앞에 명패 대신 말뚝을 박을 심산이었습니다. 그러든지 말든지 내버려 뒀더니 낑낑대고 가져가다가 너무 무거웠는지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다행.


설악산 기슭 이쪽에 떨어진 물은 한강으로 흘러가고 저쪽에 떨어진 물은 남대천으로 떨어집니다. 비가 계곡으로 흘러들고 계곡은 강물로, 강물은 바다로 흘러듭니다. 물은 여러 생명의 몸속에 깃들고 생명은 사그라들어 다시 생명을 낳는 자양분이 됩니다. 바다로 흘러든 물이 비가 되어 다시 설악산에 떨어지듯이 말이죠. 딸내미가 자연을 사랑하는 마음이 또 누군가에게 전해져 자연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계속될 겁니다. 오늘의 탐조는 결국 Circle of Life 시간이 되었네요. 날이 더 따뜻해지고 생기가 더 충만해지면 살아있는 생명을 더 많이 만날 수 있을 겁니다.  

오리배가 아니긴 하지만 그래도 재밌는 시간이었습니다. 딸내미는 배를 잘 조종하네요.

돌아오는 길에 남대천생태탐방로에 들러 전동보트를 탔습니다. 오리배인 줄 알았는데 전동 모터가 달려있어 발을 구르지 않아도 배가 달립니다. 다리 운동을 좀 하려고 했는데 안타깝네요. 그래도 딸내미가 배 조종을 하면서 자부심을 느낄 수 있어 좋았습니다. 그런데 요금이 좀 비쌉니다.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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