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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정수 Apr 17. 2024

[생태유학]⑯산골에서 공덕 쌓기

살생하지 않기, 생명을 도와주기

강원도 인제군 기린면 진동리 설피마을에도 드디어 봄이 왔습니다. 5월까지 눈이 온다고도 합니다만, 일단 산비탈에 눈이 다 녹았습니다. 명이나물 밭에는 명이가 파릇파릇 올라왔습니다. 무엇보다 개구리가 나와서 짝을 찾으며 울고 있습니다. 원숭이 소리 같기도 하고 새소리 같기도 합니다. 처음에는 이게 도대체 무슨 생물인가 열심히 찾아보기도 했지만 배수로 안에서 개구리가 우는 모습을 확인한 뒤에 의문이 풀렸습니다. 큰산개구리(산개구리)였습니다. 유튜브에서 큰산개구리 울음소리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기괴한(?) 개구리 울음소리를 들으며 원고를 쓰다가 도무지 진도가 나가지 않아서 개구리 사진을 찍기로 했습니다. 우리 숙소인 도농교류센터(마을펜션) 뒤쪽에 산에서 계곡물이 내려오는 배수로가 있는데요. 거기에서 기괴한 개구리 소리가 끊이지 않고 울렸습니다. 스마트폰을 가지고 나가 촬영을 시도합니다. 일전에 딸내미와 다른 배수로를 확인한 적이 있는데 이 개구리 녀석들이 예민해서 발소리를 크게 내면 물속으로 들어갑니다. 그럼 찾기가 어렵죠. 발소리도 내지 않고 살살 접근해 촬영에 성공했습니다. 한참 짝짓기 중인데 방해하는 것 같아서 조금 미안하기도 했습니다. 만물이 소생하는 봄이 오긴 왔습니다. 

큰산개구리 작은 수컷(왼쪽)이 큰 암컷을 부둥켜안고 짝짓기 하고 있습니다.

딸아이가 학교를 마치기를 기다렸다가 함께 유리창을 닦았습니다. 창밖으로 산자락에서 내려온 수풀이 아주 가깝게 보이는데요. 여기에 딱새, 때까치, 양진이, 박새 등등이 날아와 앉거든요. 산새들을 더 잘 보기 위해 유리창을 닦았습니다. 딸아이는 유리창 닦는 것 자체도 너무너무 재미있는 모양입니다. 우리가 유리창을 닦는 사이 2학년 지우가 큰산개구리 소리를 듣고 추적에 성공했습니다. 그리고는 흥분에 들뜬 목소리로 개구리 발견을 알립니다. 다른 2학년 수현이가 그 목소리를 듣고 와선 더 큰 목소리로 흥분합니다. 


아이들은 마을 체육관에서 풋살을 하다가 개구리를 보다가 왔다갔다 합니다. 그러다가 한 아이가 돌을 주워와서 배수구 철망 사이로 던져 넣네요. 악동 기질이 뻗친 모양입니다. 다른 아이들이 기겁을 합니다. "왜 개구리한테 돌을 던져~", "개구리알 터지면 어떡해", "생명을 그렇게 함부로 죽이면 안 되는 거야" 역시 생태유학 하러 온 아이들이라 그런지 생명 존중이 대단합니다. 돌을 던진 아이는 머쓱했죠.


사실 저도 생태유학 보호자로 이곳 설피마을에 와서 굉장히 느끼는 게 많습니다. 우리 주변에 이렇게 인간 아닌 생물이 많았었나 하는 생각이 가장 많고요. 세상의 주인이 인간이 아닌 게 확실하다는 생각도 왕왕 듭니다. 여기서 가장 많이 보는 생명체는 노린재와 집게벌레입니다. 아마도 겨울 되기 전에 추위를 피해 집안 틈새로 들어와 있다가 날이 따뜻해지니까 나오는 것 같습니다. 하루에도 열 번 넘도록 노린재와 집게벌레를 다치지 않게 잡아 밖에 놔주는 일이 되풀이됩니다. 도시에선 쿨하게 퐉 잡았겠지만 생태유학하러 와서 살생하는 건 좀 도의에 어긋나는 것 같기도 하고 여튼 그렇습니다.


유리창을 깨끗이 닦고 배불리 저녁밥을 먹은 다음 딸아이와 함께 저녁 산책을 나섭니다. 숙소 입구에 지난겨울부터 계속 뒹굴고 있는 노루 털가죽이 눈에 밟힙니다. 그래서 딸아이에게 제안을 했죠. 묻어주자고요. 그랬더니 흔쾌히 승낙합니다. 먼저 고 노루의 명복을 비는 묵념을 한 뒤, 삽자루를 가져다가 땅을 파고 노루 털가죽을 파묻었습니다.  요즘 뭐든지 스스로 해보고 싶은 딸아이는 삽질도 잘할 수 있다며 자기가 해보겠다고 하네요. 

고 노루의 명복을 빌며 노루를 매장해 주었습니다. 그러자 딸아이가 바라던 대로 길냥이가 다가와 애교를 부렸습니다. 역시 덕을 쌓으며 살아야 하는 건가 봅니다. 

 

노루 털가죽을 묻어주고 산책을 나섭니다. 계곡으로 내려가보자고 해서 함께 내려갔죠. 계곡 아래에서 개구리를 찾을까 했는데 그때 뭔가 희끄무레한 것들이 길 위로 뛰어다니는 게 보입니다. 길냥이들입니다. 딸아이는 설피마을에 살고 있는 길냥이에게 굉장히 관심이 많습니다. 길냥이와 교감하는 게 딸아이가 정말 해보고 싶어 하는 것 중 하나입니다. 그런데 추격전을 벌이던 길냥이 중에 한 마리가 우리를 보더니 갑자기 길 위에서 배를 드러내고 뒹굴기 시작하는 겁니다. 


아픈가 싶기도 하고요. 요즘에 고양이 괴질이 떠돌아서 고양이들이 갑작스레 움직이지 못하게 되는 사례가 많이 발생한다고 하는데 이 고양이도 아픈 게 아닌가 싶었습니다. 걱정스러운 마음이 앞선 딸아이가 고양이한테 다가가자 고양이는 뒹굴뒹굴하면서 애교를 부립니다. 저만치에서 누군가 기척을 내자 고양이가 그리로 향합니다. 계곡 근처에 식당을 겸하는 펜션인데요. 그 안주인 사장님이 고양이에게 밥을 주시나 봐요. 고양이 뒤를 따라 그 집으로 향했습니다. 마당에서 고양이는 펜션 사장님께 애교를 부립니다. 뜻밖의 꼬마손님이 반가워 사장님이 이것저것 물어보십니다. 


사장님 딸은 초5부터 중2까지 이곳에서 학교를 다녔는데 당시에는 전교생이 4명이었다고 하네요. 지금은 9명입니다만... 학교에서 아이를 잘 가르쳐주고 방과후 교실도 훌륭한 프로그램이 많아서 재미있게 학교를 다녔다고 합니다. (지금도 진동분교 방과후 프로그램은 훌륭합니다. 게다가 생태유학 프로그램까지 더해져 더욱 풍부하죠.) 자기주도 학습을 일찍 깨달아서 고등학교와 대학교를 장학금을 받으면서 다녔다고 자랑하십니다. 이 딸아이도 스스로 공부하는 재미를 깨우칠 날이 오겠지요.


고 노루 털가죽씨를 장사해주고 나니 복을 받은 모양입니다. 도망가기만 하던 고양이가 다가와 부비부비를 시전해주고, 마을 어른과도 안면을 텄으니 말입니다. 흐뭇한 마음을 안고 돌아오는 길엔 이미 해가 져서 껌껌했는데요. 딸아이가 길에서 뭔가를 발견했습니다. 갈색 덩어리라서 똥인 줄 알았는데. 개구리였습니다. 핸드폰 플래시를 비춰도 꿈쩍을 하지 않아서 그냥 갈까 했는데 그냥 두면 차에 치일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나뭇가지 하나 주워다가 꽁무니를 간지럽혔더니 풀쩍풀쩍 뛰어서 계곡으로 들어갑니다. 몇 걸음 옮기니 또 한 마리를 발견해 같은 방식으로 길에서 비켜나게 했습니다.


두 생명을 구했네요. 물론 또 길가로 나와 어떻게 될지는 모를 일이지만 일단 위기에 빠진 두 생명을 구해낸 것은 확실한 것 같습니다. 딸아이는 생명을 함부로 다루면 안 된다는 내용으로 글짓기 한편 하고는 굉장히 뿌듯한 표정으로 보여줍니다. 덕을 쌓고 생명을 구했습니다. 아이의 마음은 또 한 뼘 자랐습니다.  개구리가 준 선물입니다. 


한밤중에 길가에 나와 꼼짝도 하지 않고 있는 큰산개구리를 구조했습니다. 개구리가 준 선물 = 덕을 쌓을 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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