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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정수 Apr 19. 2024

생태유학 어린이, 지구를 살려줘!

[생태유학]⑰KBS 다큐, '도착한 미래'에 반응하다 

강원도 인제군 기린면 진동2리 곰배령 설피마을은 두메산골입니다. 대한민국 그 어느 곳보다 자연이 풍부하다는 특장점이 있습니다. 그러나 번쩍번쩍한 도시의 삶과는 가장 거리가 먼 곳이기도 하죠. 이 두메산골에서 생태유학을 하고 있는 아이들은 낮에는 그야말로 자연을 벗 삼아 신나게 놉니다. 물론 공부도 하죠. 해가 지고 컴컴한 어둠이 찾아오면 설피마을은 정말 깜깜합니다. 바깥에서 뭘 할 엄두를 내기가 어렵습니다. 별을 보거나 야행성 동물을 찾아 나서는 특별한 일 빼고는 거의 바깥 활동은 어렵습니다. 아직은 좀 춥기도 하고요. 


그래서 딸아이는 주로 숙제를 합니다. 저녁을 먹고 진동분교 선생님이 내주시는 숙제를 합니다. 수학 문제지를 하루에 두 바닥씩 푸는 겁니다. 그리고 일주일에 두 편 일기를 씁니다. 원격으로 진행되는 학습지를 하나 하고 있기도 합니다. 아, 그리고 생태유학 사무국에서 제공해 주시는 원어민 화상 영어도 일주일에 두 차례씩 하고 있습니다. 한 번 연결할 때마다 20분씩 외국인 선생님과 대화를 합니다. 영어울렁증이 있던 딸아이는 이 프로그램을 하면서 영어에 대한 두려움을 많이 극복하고 있습니다.


어제는 모든 숙제를 마친 딸아이가 일찍 샤워를 마치기까지 했습니다. 보통은 최후순간까지 뺀질 대다가 자기 직전에 씻곤 하거든요. 저녁 산책을 나갔다가 주워 온 풍뎅이 사체를 요리보고 저리 보고 하다가 결국 '네이처링' 전문가님의 도움을 받기로 합니다. 네이처링은 야생동식물 발견 기록을 공유하는 앱입니다. 이름을 몰라도 많은 전문가님들이 도움을 주십니다. 딸아이는 요즘 생물을 발견하면 그게 뭔지 알아보는 것(전문용어로는 생물분류라고 합니다.)에 푹 빠졌습니다. 동식물, 새와 벌레를 가리지 않고 뭔가 흥미를 느끼면 그게 뭔지 알아보는 일에 골몰하고 있습니다. 결국 보라금풍뎅이라는 걸 알아냈죠. 

저녁 산책에서 주워 온 보라금풍뎅이 사체입니다.


그리고는 9시 뉴스를 같이 보고 이어지는 다큐멘터리를 시청했습니다. '도착한 미래'라는 제목입니다. 기후위기를 말하려나보다 했죠. 딸아이도 흥미 있어하는 주제라 함께 보기로 했습니다. 이미 기후위기는 진행되고 있고, 명백히 인간의 책임이며, 지금 행동하지 않으면 되돌릴 수 없다는 내용입니다. 기후위기로 고통받고 목숨을 잃는 사람과 동식물의 모습이 묘사됐습니다. 국토의 3분의 1이 홍수로 잠긴 파키스탄, 한반도 면적만큼 타버린 호주 산불과 산불에 갇혀 화상을 입고 구출되는 코알라, 텍사스 한파와 한파로 기절한 채 구조된 바다거북, 인간에 의해 6차 대멸종이 가시화되고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딸아이는 예전부터 기후위기에 대해 관심을 나타내 왔습니다. 학교에서 환경교육도 많이 하고, 기후위기에 관한 내용이 온갖 미디어를 통해 전파되고 있으니 이 시대를 살아가는 구성원으로 마땅한 관심을 보여주는 것이라 반갑게 생각합니다. 끔찍한 모습이 다큐를 통해 전해질 때마다 딸아이는 '어떡해, 어떡해'라고 외칩니다. 아픔에 공감하고 위기의식을 느끼는 것은 무언가를 바꾸기 위한 첫걸음일 것입니다. 그러나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지만 너무 안타까워'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 '어떡해, 어떡해'에 대해서는 동의할 수 없습니다. 


딸내미가 '어떡해~'라고 감탄사를 외칠 때는 저도 그 안타까움에 동의하고 감정을 공유한다는 의사를 표시합니다. 그러나 분통이 터져서 "어떻게 해야 해?"라고 묻는 것이라면 해결책을 알려줍니다. 다큐멘터리를 보는 내내 딸아이는 '그럼 어떻게 해야 돼?"라고 물었습니다. 저는 "끝까지 보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려줄 거야."라고 답을 했죠 '도착한 미래' 다큐멘터리는 우리의 실천에 대해 세부적인 내용을 알려주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기후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선 당장 행동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해주는 선에서 끝을 맺었죠. 산업화 이후 인간이 파괴하 산림, 사용하고 버리는 물, 화석연료 사용량, 온실가스 배출량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는 그래프를 보여줍니다. 


딸아이는 다큐멘터리가 끝나갈 무렵에 벌떡 일어나더니 집안에 모든 전등을 꺼버립니다. 깨달음을 얻고 실천한 것이죠. 불에 덴 코알라를 보면서 눈가가 촉촉해져 있습니다. 화난 표정으로 "인간이 나빠"라고 몇 번을 외쳤는지 모릅니다. 그레타 툰베리의 유명한 연설 장면도 뭉클하더군요.  다큐멘터리가 끝나고 나서 잠깐 대화를 시도했습니다. 딸아이는 "아빠 내가 대학생 되기 전까지 다 멸종하는 거야?"라고 묻습니다. 그래서 수백 년은 걸릴 거라고 이야기를 해줬죠. 그리고 지구를 살리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결론은  "지구를 살리기 위해 네가 당장 할 수 있는 일을 하면 돼"였습니다. 그 첫 번째 실천은 '음식 남기지 않기' 였고요. 


아침 준비를 해놓고 아이를 깨우러 방에 들어갔는데 딱새가 와 있길래 "딱새 왔다"라고 하니, 흔들어 깨우지 않아도 벌떡 일어납니다. 참 신기할 만큼 야생동물을 좋아합니다. 그리고는 아침을 먹었죠. 크림치즈를 바른 구운 베이글 한쪽과 오이, 파프리카 샐러드에 멸균우유 한팩, 삶은 달걀 두 개입니다.  아침 식사를 하면서 어제 했던 약속을 다시 상기시켜 줍니다. 지구를 살리기 위한 첫 번째 약속은 음식물 남기지 않기라는 것을요. 그랬더니 촵촵 꿀꺽 다 먹어치웁니다. 계란 노른자는 빼고요. 이건 영 힘든가 봅니다. 


기특해서 저도 상응하는 공약을 하나 하기로 했죠. 멸균팩 곱게 씻어 말린 다음에 따로 분리배출하기로요. 약속이 하나둘 쌓여가고 즉각 실행에 옮겨질 때 지구를 위한 더 큰 실천을 할 준비가 될 겁니다. 산 아래 동네에는 큰 화력발전소 하나가 새로 생긴다고 하는데, 이건 아니다 싶습니다. 우리가 위기를 극복할 방법은 간명합니다. 온실가스를 배출하지 않는 청정에너지로 변환하는 것, 그게 아니면 에너지 사용을 극적으로 줄이는 것이죠. 그런데 당장 에너지 소비를 절반 이하로 줄일 수 있는 가정, 기업, 정부는 세상 어디에서도 찾기 어려울 겁니다. 그렇다면 청정에너지로의 변환만 남습니다. 온실가스를 배출하지 않는 원자력이요? 사용 후 핵연료라는 핵쓰레기는 어떻게 치울 건데요. 우리는 여기에 대한 답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재생에너지 밖에 선택지가 없습니다.  기후와 생존의 문제를 정치로 환원하지 말았으면 합니다. 

저도 멸균팩을 잘 씻어서 따로 분리배출하기로 공약했습니다. 작은 실천이 쌓여서 큰 변화를 가져왔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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