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여행이 사실상 막혀버린 요즘 아이와 함께 떠나기를 고민하는 가족이 있다면 방콕도 한 번 고려해 보는 것은 어떨까 싶습니다. 아이가 아직 많이 크지 않아 장시간 비행에 취약하다면 더욱더 매력이 크지요. 물가는 서울의 절반~3분의 2 수준인데 상류층을 중심으로 한 태국의 소비 수준은 서울에 버금간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아이와 함께 오지를 고생하지 않아도 훌륭한 가성비로 다양한 즐길거리를 찾을 수 있습니다. 게다가 요즘(11월~2월)이 태국의 겨울이라 뜨거울 걱정 없이 살랑살랑 나다니기에도 좋답니다.
오늘은 방콕의 겨울에 대해 알아보려 합니다. 태국 기상청은 지난달 17일 겨울(ฤดูหนาว)이 시작됐다고 알렸습니다. 2월 중순까지 계속될 이번 태국의 겨울은 지난해보다 더 춥고 기간도 길 것이라고 내다봤습니다. 태국 사람들은 겨울과 눈에 대한 로망이 있습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태국은 전국 어디를 뒤져봐도 눈이 내리는 곳은 없습니다. 가장 기온이 낮은 1월에 북부 산간 지역은 영상 10도 안팎으로 기온이 떨어질 때가 있습니다. 이런 때엔 저체온증으로 인한 사망 소식이 가끔씩 전해지기도 합니다. 난방 기구가 설치돼 있는 집이 거의 없기 때문이지요.
태국 매체 카오솟 온라인 홈페이지 캡처. (https://www.khaosod.co.th) 10월 17일부터 겨울이 시작됐다는 내용입니다.
새벽에도 28도 아래로 떨어지지 않던 기온이 겨울에 접어들면 25도 아래로 떨어집니다. 우리나라 여름철 열대야의 기준이 밤 최저기온(오후 6시 1분 ~ 다음날 오전 9시)이 25도 이상인 날이라고 하니 열대 나라에서 열대야가 아닌 밤을 맞을 수 있다는 뜻이지요. 에어컨을 켜지 않아도 자고 일어날 때 땀범벅이 되지 않을 정도라 정말 쾌적합니다. 아침에 샤워기에서 말 그대로 차가운 물이 나와서 기분 좋은 계절이기도 합니다. (3~10월에는 샤워기에 찬물을 틀어도 30도 안팎의 미지근한 물이 나옵니다.) 방콕 생활 첫 해엔 샤워기에서 찬물이 나오지 않아 오른쪽 왼쪽으로 수도꼭지를 돌렸던 기억이 나네요. 실외 기온이 너무 높다 보니 땅 속 배관에 있는 물도 미지근해진 것이지요.
겨울이 돼서 아침 기온이 30도 밑으로 내려가면 긴 옷을 입고 출근하는 현지인들이 제법 눈에 띕니다. 아침 기온이 25도 정도까지 떨어지면 관광객을 제외한 거의 모든 방콕 사람들이 긴 옷을 입습니다. 어떤 이들은 목도리를 두르고 패딩 점퍼를 꺼내 입기도 합니다. 현지인들에겐 견디기 어려운 추위인 셈이지요. 그러나 겨울이 짧기 때문에 주머니 얇은 태국의 서민들은 추운 나라에서 '톤떼기'로 수입되는 헌 옷을 사 입습니다. 주로 한국과 일본에서 오는 옷을 입는데 현지인들의 평가는 '값싸고 품질이 좋아 한 철만 입기는 아깝다'는 것입니다. 때문에 한국의 경찰복, 군복 등 제복부터 나이트클럽 삐끼 겨울용 패딩 등 가지각색의 한국 겨울옷을 구경할 수 있습니다.
일본 미국 한국 호주에서 직수입한 중고 의류라네요. 현지 중고의류 판매상(http://www.update-station.com/)홈페이지 캡처
아이와 함께 다니기에도 겨울이 가장 좋습니다. 여름(3~5월)은 24시간이 너무너무 뜨거워 괴롭습니다. 키가 작은 어린이들은 땅에서 올라오는 복사열 때문에 더욱 힘이 듭니다. 우기(6월~10월)에는 온도는 그럭저럭 견딜 만 하지만 습도가 높고 거의 매일같이 비가 와서 아이들이 바깥나들이하기에 그다지 좋지 않습니다. 하지만 겨울은 날씨도 덥지 않고 습도도 낮기 때문에 활동하기에 참 좋은 계절입니다. 아무리 겨울이라도 낮 기온은 30도 안팎으로 올라가기 때문에 한낮엔 아이들 물놀이하기에도 좋습니다.
태국인들에게 겨울은 로맨틱한 계절입니다. 12월엔 태국의 전통 축제인 운아이락클라이쾀나오(อุ่นไอรัก คลายความหนาว)가 열립니다. 이 축제의 이름은 사랑의 기운을 덥혀서 추위를 가시게 한다는 뜻입니다. 영어로는
Love and Warmth at Winter's End 라고 번역합니다. 태국인들은 꽃이 만발한 공원에서 태국의 전통 복식을 입고 사진을 찍는 것을 좋아합니다. 특히 방콕 외곽의 라마 9세 공원과 왕실 광장인 사남 루앙이 방콕인들의 최애 장소입니다. 크리스마스를 낀 긴 연휴와 연말연시를 떠들썩하게 보내고 2월의 밸런타인데이까지 태국인들은 지구 상의 모든 기념일을 다 챙기는 듯한 느낌입니다. 한 여름의 크리스마스를 보내는 느낌도 제법 색다릅니다.
날씨도 좋고 여러 가지 이벤트도 많아 좋긴 하지만 겨울에도 걱정거리는 하나 있습니다. 바로 겨울철 미세먼지입니다. 지난 1월 말 방콕에선 미세먼지가 높아져 각급 학교에 휴교령이 내려지기도 했습니다. 자동차 배기가스, 건설 현장, 밭두렁 태우기, 공장에서 배출되는 오염 물질이 원인으로 꼽힙니다. 이 시기 초미세먼지 농도는 170 안팎을 기록했습니다. 하늘이 부옇게 보이는 정도입니다. 태국 사람들은 N95 마스크를 착용하는 등 부산을 떨었습니다. 하지만 체감 오염도는 서울이 더 높은 것 같습니다. 아이가 호흡기가 약하거나 미세먼지로 인해 아토피가 심해진다면 여행 계획 짜실 때 고려하시는 게 좋을 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