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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쥐 본 아홉 살은 몇 명 없을 걸?

생태유학 21. 야생동물생태학교 - 박쥐동굴 탐험

by 선정수

생태유학 아이들은 지난 주말 인제군 특정 지역(세부 정보는 박쥐 보호를 위해 밝히지 않습니다.)에 다녀왔습니다. 박쥐 동굴을 탐험하기 위해서였죠. 아이들은 너무너무 들떠있었습니다. 생태유학 어린이들이 살고 있는 강원도 인제군 기린면 진동리 설피마을은 워낙 두메산골이라 해 질 녘이 되면 먹이활동을 하는 박쥐가 날아다니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날아다니는 박쥐를 보는 것과 박쥐 동굴로 들어가는 것은 차원이 다른 일이죠. 게다가 장화도 신고 머리에 헤드랜턴까지 둘렀으니 진짜 탐험 100%였죠.


동굴탐험 하러 가는 길에 '비밀의 정원'을 지나가기로 했습니다. 아는 사람은 알고 모르는 사람은 모르는 그야말로 비밀의 정원입니다. 경치가 너무너무 아름답고 바깥세상에 잘 알려지지 않아 비밀의 정원입니다. 그런데 사진 하시는 분들은 대부분 알고 있습니다. 육군 과학화전투훈련단 훈련장 통과도로에서 풍경사진을 찍을 수 있도록 만들어 놓은 뷰 포인트죠. 그런데 정말 멋집니다. 원래는 산골 마을이 있던 곳인데 군 훈련장을 조성하기 위해서 민가를 모두 사들이고 마을 주민들은 타지로 옮겼다고 합니다.


비밀의 정원에서 내려 인생사진 몇 장을 찍었습니다. 딸아이는 너무너무 멋지다며 감탄을 합니다. 2학년 때까지는 전혀 먼 곳을 보지 못했었는데, 4학년에 되니 시야가 넓어진 것 같습니다. 제법 먼 풍경을 감상할 수 있는 심미안이 장착되고 있습니다. 뒤영벌이 날아와 붕붕 거리는데 소리가 굉장히 컸습니다. 아침 시간이라서 지나가는 차도 없고 사람도 없고, 비밀의 정원과 부녀 2명, 그리고 뒤영벌 밖에 세상에 없는 듯했죠. 그래서 뒤영벌 날갯짓 소리가 엄청 크게 들렸는지도 모릅니다. 사진을 찍고 차에 올랐는데 딸아이는 "귀엽게 생겨가지고는 엄청 큰 소리를 내네"라며 한숨 돌립니다.


조금 차를 몰고 가는데 브라보~ 고라니를 만났습니다. 사체가 아닌 살아있는 네발짐승을 만나는 것은 정말 오랜만이라 너무너무 기뻤습니다. 딸아이는 "아빠 빨리 찍어~~"라고 외칩니다. 지나가는 차가 없으니 일단 차를 세우고 핸드폰을 집어드는데, 고라니는 포즈를 취해 줄 만큼 한가하지 않습니다. 도로 옆 비탈로 풀썩 뛰어오릅니다. 초점 맞출 새도 없이 그냥 막 찍었는데요. 내려서 자세히 살펴보니 고라니가 컷 안에 들어와 있더라고요.

고라니_과훈단.png 박쥐동굴 가는 길에 고라니를 만났죠. 잘 찾아보세요~

생태유학 들어올 때 제가 세운 목표는 천연기념물 또는 희귀 동물 만나기, 네발짐승 만나기와 수리부엉이 관찰하기였습니다. 그런데 설피마을엔 천연기념물 원앙이 살고 있고, 천연기념물 산양도 방태산과 바람부리생태공원에서 관찰했고요.(비록 사체였지만요 ㅠ) 생태유학 들어오던 날 길에서 노루가 폴짝폴짝 뛰면서 우리를 반겨줬죠. 이번에 살아있는 네발짐승 두 번째인 고라니를 발견한 겁니다. (물론 개와 고양이는 제외합니다.)


기쁜 마음으로 박쥐동굴을 항했습니다. 인제야생동물생태학교 교장선생님이자, 운영자이자, 생태해설사이자, 담임선생님인 대한민국 최고 야생동물 전문가 한상훈 박사님이 반겨주십니다. 동굴 앞에 모여서 주의사항을 전해 듣습니다. 동굴 안에는 황금박쥐라고도 불리는 붉은박쥐와 관박쥐가 살고 있는데요. 황금박쥐는 아직도 동면 중이고, 관박쥐는 활동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너무 시끄럽게 소리를 지르고 조명을 오래 비추고 있으면 박쥐가 동면에서 깨어날 수도 있으니 조심하라는 내용입니다. 아이들은 고개를 끄덕입니다.

KakaoTalk_20240430_111734555_05 (1).jpg 박쥐동굴 탐험 시작!!

인원 확인을 한 뒤 동굴입구를 열고 들어갑니다. 폐광산이었는데요. 군사보호구역이라서 군의 허가 없이는 출입할 수 없다고 합니다. 이날도 군 관계자분이 나와서 출입을 관리해 주셨죠. 철문이 열리는 순간 아이들은 짧은 탄성을 내지릅니다. 그리고는 셀프 입틀막을 합니다. 야생동물을 사랑하는 어린이들이라 주의사항을 지키는 것에도 진심입니다.


동굴 안은 지하수가 흐르고 있어 물이 고여있습니다. 미리 준비한 장화와 헤드랜턴이 빛을 발합니다. 동굴 천장이 낮아 키 큰 어른들은 허리를 숙이고 다녔습니다. 아이들은 신이 났죠. 얼마 들어가지 않아 관박쥐 한 마리가 모습을 드러냅니다. 동굴 천장에 거꾸로 매달려 있습니다. 선두팀이 발견하고 뒤쪽 사람들을 기다리는 중에 날개를 퍼덕여 날아갑니다. 코앞으로 박쥐가 날아가는 순간 아이들은 '우와' 소리를 냅니다. 박쥐를 처음 본 아이들의 반응은 '귀여워~'였습니다. 코는 돼지코에 귀는 토끼귀, 날개가 달려 새 같긴 하지만 털이 복슬복슬한 것이 몸통은 영락없는 쥐처럼 생겼습니다.

KakaoTalk_20240430_120735649.jpg 관박쥐가 동굴 천장에 매달려 있습니다.

조금 더 동굴로 들어가니 붉은박쥐가 모습을 드러냅니다. 얼마나 오래 잠을 자는 건지 몸통에 하얗게 이슬이 맺혀 있습니다. 한상훈 박사님 말씀으론 6월까지도 잔다고 합니다. 한 해의 대부분을 잔다고 보면 맞죠. 박쥐는 초음파를 발사해서 되돌아오는 초음파를 분석해 정보를 얻습니다. 정형외과에서 볼 수 있는 초음파 촬영기를 달고 사는 거라고 보면 될까요? 이런 특성 때문에 박쥐가 내는 초음파를 인간이 들을 수 있는 가청 음파로 변환해 주는 기계를 사용하면 박쥐가 있는 곳을 알 수 있습니다. 관박쥐가 날아가면서 내는 초음파가 삐빗삐빗하는 소리로 바뀌어 들리는 게 굉장히 신기했습니다.

KakaoTalk_20240430_120926552.jpg 천연기념물 붉은박쥐(황금박쥐)가 동굴 천장에 매달려있습니다.

딸아이는 박쥐가 매달린 곳 아래 지하수가 고인 곳을 한참 쳐다봅니다. 그러더니 "박쥐 똥이 있네~"라고 말합니다. 어른들이 박쥐 관찰에만 정신이 쏠렸을 때 이 어린이는 발밑 박쥐 똥까지 관찰을 해냅니다. 되돌아 동굴을 빠져나왔습니다. 박쥐 똥과 퇴적물이 장화에 가득 달라붙었습니다. 고인 물에 장화를 씻으려는데 이 어린이가 또다시 "아빠 물에 새우 같은 게 있어~"라고 말합니다. 자세히 보니 옆새우가 있네요. 옆새우는 옆으로 누워 헤엄치는 새우 모습의 생물입니다.


KakaoTalk_20240430_120500761.jpg 투명해서 움직이지 않으면 보기 어렵습니다. 숨은 옆새우 찾기!

돌아오는 길에 딸아이에게 물어봤죠. 어땠냐고요. 그랬더니 여태껏 했던 모험 중에 제일 두근두근하고 재미있었다고 합니다. 대한민국 9세 어린이 중 박쥐가 살고 있는 동굴에 들어가 박쥐 똥을 밟으면서 박쥐를 본 친구들이 몇 명이나 될까요? 생태유학 어린이들은 참 복이 많습니다. 생명을 사랑하는 마음을 오래오래 간직하면서 살아갔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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