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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구리를 구했더니 박쥐가 왔다!

생태유학 22. 찾아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 어린이날 선물!!

by 선정수

지난 금요일에는 생태유학 어린이들이 몸담고 있는 진동분교에서 공개수업을 했습니다. 진동분교는 전교생 9명, 3학년과 5학년이 없기 때문에 1학년+6학년이 한 교실을 쓰고, 2학년+4학년이 다른 한 교실을 사용합니다. 몇몇 과목에는 보조교사 선생님이 오셔서 학년별로 수업을 해주십니다. 우리집 딸아이를 포함해 4학년은 2명입니다. 공개수업은 2학년과 4학년이 함께 '장점 이야기 하기' 수업을 했습니다. 5명의 아이들이 서로의 장점을 이야기해 주는 시간이었는데요. 아이들이 보는 눈이 굉장히 정확해서 4명의 아이들이 대부분 비슷한 장점을 꼽았습니다.

KakaoTalk_20240505_215450472_05.jpg 진동분교 공개수업입니다. 서로의 장점을 말하는 데 너무너무 진지하고 사랑스럽습니다.

4학년 엘이는 고양이 그림을 참 잘 그리고 배려심이 뛰어납니다. 우리집 딸내미는 새를 좋아하고 새에 대해서 많이 알고 있습니다. 2학년 수현이는 자동차 박사이고, 달리기를 잘합니다. 같은 학년 윤서는 배려를 잘하고 지우는 책을 많이 읽습니다. 수업이 진행되는 동안 생태유학 아이들은 자신과 친구들의 장점을 생각하고 발표하고 들어주느라 굉장히 진지합니다. 그러고 보니 저는 남의 단점과 잘못한 점, 사실과 다른 것만 밝혀내려고 애를 썼을 뿐, 누군가의 장점을 드러내는 일은 한 적이 별로 없는 것 같아 부끄러웠습니다. 생태유학 참 잘 왔다는 생각이 듭니다. 작은 학교에서 나이가 다른 아이들이 언니 오빠 누나 형 동생 부르면서 우정을 쌓아가는 게 참 대견스럽습니다.


주말에는 포항 외갓집에 다녀왔습니다. 오랜만에 할아버지 할머니와 만나서 재롱도 떨고 탐조도 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포항 중명자연생태공원에 다녀왔는데요. 산속으로 산책길을 내서 탐조하기엔 딱 좋은 장소였습니다. 사실 작년에도 한 차례 다녀왔는데 그때는 다람쥐에만 정신이 팔려서 새가 이렇게 많은지 몰랐답니다. 딱새와 지빠귀, 아직 이름을 모르는 많은 새들이 엄청나게 노래를 부르고 있었네요. 무당개구리들은 짝짓기를 하고요. 이번에도 귀여운 다람쥐들은 많이 만났습니다. 찾는 만큼 보이는 게 야생동물인 것 같습니다. 관심이 없으면 전혀 모르게 되고, 조금만 관심을 기울이면 우리가 그들의 땅에 살고 있다는 걸 알게 되는 참으로 신기한 이치가 작동하고 있었습니다.


일요일 아침에는 할아버지 텃밭에 가서 상추와 쑥갓을 수확했습니다. 많이 가져가라는 할머니의 당부에 많이 먹을 사람이 없다고 손사래를 쳤지만, 함께 살고 있는 생태유학 가족들이 떠올랐습니다. 그래서 여섯 집 먹을거리를 수확했죠. 딸아이도 칼 한 자루 쥐고 상추와 쑥갓을 수확했습니다. 농약을 주지 않고 길러낸 채소라 달팽이를 관찰하는 재미는 덤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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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곡에서 올챙이 기간을 무사히 마친 개구리들이 산으로 올라갑니다. 차 한대 겨우 지나가는 좁은 도로를 건너는 것도 이들에겐 생사가 엇갈리는 힘겨운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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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피마을에서 포항에 가려면 일단 양양으로 나간 뒤 양양-삼척을 잇는 동해 고속도로를 타다가 7번 국도를 타고 하염없이 직진하면 됩니다. 돌아오는 길은 그 반대고요. 딸아이는 한참 푹 자고 망양 휴게소에서 내려 비바람 몰아치는 바다를 구경했습니다. 양양 읍내에 들러서 김밥과 물만두로 저녁을 먹었죠. 그러고는 산길을 올라가는데 날이 저물었습니다. 진동 삼거리에서 본격적으로 산길을 달리는데 무언가가 도로 위를 툭툭 튀어 다니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자세히 보니 올챙이 꼬리가 들어간 어린 개구리들이 산으로 올라가기 위해 도로를 건너는 것이었습니다.


요리조리 피하면서 개구리를 밟지 않으려 노력했지만 100% 다 피하지는 못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옆에서 이 광경을 지켜보던 딸아이는 "조심~", "멈춰~"라고 소리를 지릅니다. 집에 돌아와 짐을 부린 뒤에 비옷을 입고 헤드랜턴을 쓰고 다시 나갔습니다. 아직도 길 위에 앉아있을 개구리를 구조하려고 말이죠. 세월을 낚는 낚싯대(긴 나뭇가지)를 들고나가 도로 위에 웅크리고 있는 녀석들을 산 쪽으로 몰아줍니다. 도로 계곡 쪽으로 내려가는 녀석들도 더러 있었지만 15분 안팎 정도 되는 시간 동안 30마리 정도 어린 개구리를 산으로 보내준 것 같습니다. 차에 밟혀 죽은 녀석들은 흙으로 돌려보내줬죠.


어린 개구리를 다 구할 수 없다는 걸 딸아이도 잘 알고 있습니다. 이미 죽은 개구리가 다시 살아날 수 없다는 것도 물론 잘 알고 있죠. 그러나 살아있는 개구리가 제 수명만큼 살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은 마음은 진심입니다. 산 쪽으로 올라가다가 밭에 고라니가 들어오지 못하도록 쳐놓은 그물에 걸리는 녀석도 있습니다. 그물을 살포시 들어 올려서 땅을 밟을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산으로 올라간 어린 개구리들은 최고의 어린이날 선물을 받은 셈입니다. 우리 딸아이는 생명을 사랑하는 마음과 개구리를 살려준 추억을 어린이날 선물로 받았을 겁니다.


씻고 어린이날 특집으로 전국에 방영된 KBS 다큐멘터리 '누구나 새 한 마리쯤 마음에 품고 있지 않나요?'를 다시 보기로 시청합니다. 지난번 강원도에만 방송될 때는 딸아이가 나오지 않았는데, 이번에 전국 방송하면서 다시 편집을 한 모양입니다. 에필로그 부분에 한 컷 나와서 너무너무 좋아합니다. 이것도 큰 어린이날 선물일 겁니다. 갑자기 옆집 어머님이 전화를 하시네요. 방충망에 박쥐가 온 것 같은데 와서 관찰하라고요. 황급히 나가서 사진도 찍고 이쪽저쪽에서 살펴봅니다. 조그마한 박쥐가 방충망에 붙어있습니다. 사진을 찍어 대한민국 최고 야생동물 전문가 한상훈 박사님께 여쭤보니 실시간으로 답을 해주십니다. '검은집박쥐'라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온순한 박쥐라고 하네요. 진동리 설피마을에는 5~6종의 박쥐가 살고 있다고 합니다. 다른 박쥐도 가까이에서 만났으면 좋겠습니다. 갑자기 박쥐를 만나게 된 딸아이는 춤을 추면서 좋아합니다. 개구리를 구해줬더니 박쥐를 만나게 되네요. 정말 즉각적이고도 확실한 보상입니다. 어린이날 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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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피마을 도농교류센터 방충망에 달라붙은 검은집박쥐입니다. 사냥하다가 잠시 쉬고 있는 거라고 합니다. 생태유학 오기를 참 잘했네요. 집에서 박쥐를 보다니요.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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