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사언론의 범람과 확인되지 않은 건강정보
1.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건강에 대해선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지실 겁니다. 그런데 이 건강과 관련된 확인되지 않은 정보가 많이 눈에 띄기도 하는데요. 오늘은 잘못 알려진 건강정보에 대해 팩트체크 해보겠습니다. 먼저 알아볼 주제는 뭔가요?
-<"절대 당근과 먹지 마세요." 당근과 상극인 음식> 인데요. 이게 사실은 기사 제목입니다. 어떤 느낌이 드시나요? 당근과 함께 먹으면 도대체 어떻게 되길래 절대 함께 먹지 말라고 하는 걸까요? 상극이란 또 무엇일까요?
먼저 상극의 정의부터 알아보면요.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은 상극에 대해 <두 사물이 서로 맞서거나 해를 끼쳐 어울리지 아니함. 또는 그런 사물.>이라고 정의합니다. 그렇다면 당근과 상극인 음식은 <당근과 맞서거나 해를 끼쳐 어울리지 않는 음식>이라고 볼 수 있겠네요. 이 기사에선 고지방 음식, 디저트, 고염분 식품을 꼽고 있습니다.
2. 어릴 적 분식집에서 먹던 야채 튀김이 생각나는데요. 감자 양파 당근을 채 썰어서 자글자글 기름에 튀겨낸 그 고소한 냄새와 맛. 정말 군침이 도는데요. 그럼 당근을 기름에 튀긴 야채 튀김은 고지방 음식이니 당근과 상극이겠네요.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답니까?
- 기름지고 맛있고 배부르죠 뭐. 많이 먹으면 살찌고요. ㅎㅎ 기사 내용을 그대로 한번 옮겨보겠습니다. <당근은 비타민 A의 좋은 원천으로, 고지방 식품과 함께 섭취할 경우 비타민 A의 흡수율을 높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고지방 식품의 과다 섭취는 체중 증가 및 심장 건강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당근을 고지방 식품과 함께 섭취하는 것은 균형 잡힌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이렇게 돼 있습니다.
3. 고지방 식품을 과도하게 먹지 말아야 된다. 이건 당근과는 별다른 상관이 없는 이야기인 것 같은데요. 그리고 당근을 볶아야 영양소를 더 잘 흡수할 수 있다는 이야기도 많고요.
- 네 당근과는 상관없는 하나마나한 이야기입니다. 고지방 식품의 과도한 섭취는 체중을 늘리고 심장건강에 부정적 영향을 준다. 당근을 고지방 식품과 함께 섭취하는 건 균형 잡힌 방식으로 이뤄져야 한다. 그래서 당근과 고지방 식품은 상극이다? 굉장히 논리가 없습니다. 뭐든지 균형 잡힌 식사를 해야 좋은 것이죠.
삼성서울병원에서 안내하는 채소 조리법을 살펴보겠습니다. <당근, 피망, 주키니의 카로틴 성분은 기름에 볶아 드시면 흡수가 촉진됩니다. 특히 당근은 비타민C 산화효소를 갖고 있기 때문에 식초나 기름을 약간 넣고 50℃이상으로 가열하여 효소의 작용을 억제한 뒤 다른 식품과 조리하는 것이 좋습니다.>라고 하네요. 채소에 풍부한 영양소 중 하나인 지용성 비타민은 기름과 함께 조리하면 채소의 지용성 비타민이 용출되어 체내 흡수에 도움이 됩니다. 그러므로 채소를 조리할 때 지용성 비타민이 풍부한 식품을 기름과 함께 조리해서 드시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4. 일단 당근은 기름에 볶아 드시는 게 카로틴 등 지용성 비타민 섭취에 유리하다는 점 알아두시면 좋을 것 같고요. 당근과 상극인 음식으로 꼽힌 게 또 있다면서요?
- 디저트라고 하는데요. 기사 내용은 이렇습니다. <당근과 함께 설탕이 많은 음료나 디저트를 섭취하는 것은 권장되지 않습니다. 설탕의 과도한 섭취는 영양소의 흡수를 방해하고 비만, 당뇨병, 심장 질환 등의 위험을 증가시킬 수 있습니다. 당근의 건강한 영양을 최대한 활용하기 위해, 설탕이 적게 들어간 식품과 함께 섭취하는 것이 좋습니다.> 이것도 역시 당근뿐만 아니라 모든 식품이 마찬가지겠죠. 왜 당근을 가져다 댔는지 모르겠습니다. 이 밖에도 고염분 식품을 당근과 상극인 음식으로 꼽았습니다. <고염분 식품과 당근을 함께 섭취하는 것은 혈압 상승과 체내 염분 농도 증가의 원인이 될 수 있습니다. 당근과 같은 신선한 야채들은 자연스러운 맛을 강조하는 식단에 가장 잘 어울리며, 과도한 염분 섭취는 건강한 식습관에서 피해야 할 요소입니다.>라고 적었는데요. 이것도 딱히 당근뿐만 아니라 모든 음식에 해당하는 일반적인 이야깁니다.
5. 굉장히 하나마나 한 이야기를 무서운 제목을 달아서 보도를 했는데요. 이건 무슨 언론사 기사입니까?
- 포털사이트 다음의 모바일앱을 보면 뉴스페이지에 언론사 뉴스가 아닌 것들이 굉장히 많이 섞여 있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언론사가 아닌 매체들이 굉장히 다양한 정보를 쏟아내는데요. 이걸 다음은 뉴스 프런트 페이지에 함께 편집을 하고 있습니다. 다양한 정보가 알려질 수 있도록 하겠다는 취지인 것 같은데요. 이 당근 상극 기사도 이 섹션에 포함된 '스타픽'이라는 채널의 기사입니다. 스타일/패션, 건강, 연예 정보를 다루고 있는데요. 언론사가 아니더라도 다양한 정보를 널리 알리는 것은 좋은 의도인 것 같은데요. 사실 확인이 제대로 되지 않은 근거 없는 일방적인 주장을 담은 기사들은 걸러내야 할 것 같습니다.
6. 이런 유사 매체들이 쏟아내는 부정확한 정보가 굉장히 많은 것 같은데요. 다른 사례도 좀 소개해 주시죠.
- 네 이런 매체들의 특징은 조회수를 높이기 위해서 무리한 제목을 달고 있다는 건데요. 제목 장사 또는 낚시라고 하죠. 이게 굉장히 심합니다. 이 스타픽의 기사 중에 최근에 올라온 기사 제목은 <'이 음식' 하루에 한 컵 먹으면 대장암 예방됩니다> 인데요. 미국 연구팀의 연구 결과로 기사를 작성했습니다. 흰강낭콩(navy bean)을 대장암 치료 환자의 식단에 추가할 경우, 장 건강 개선과 유익균 증가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내용인데요. 작년 12월에 연합뉴스가 같은 내용을 보도한 것을 베낀 기사입니다. 연합뉴스 제목은 <"흰강낭콩 하루 한 컵, 대장암 환자 장 건강 개선·유익균 증가">이고요. 연구 결과는 "흰강낭콩을 섭취한 참가자들은 암 예방 및 치료 결과 개선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알려진 장내 미생물 군집에 긍정적인 변화가 일어난 것으로 나타났다"는 겁니다. 암 예방과 직결되지 않기 때문에 스타픽의 제목은 전형적인 낚시 제목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왜곡보도죠. 뭐 이런 것 말고도 사례는 차고 넘칩니다. <당신만 몰랐던 '탄산수'의 끔찍한 진실>이라는 기사는 탄산수가 산성을 띄고 있기 때문에 치아 건강에 유의해야 한다는 내용을 전달하고 있는데요. 기사 내용이 이렇습니다. <탄산수는 탄산산소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탄산산소는 음료수에 탄산화된 기체를 추가하여 탄산화시키는 과정에서 생성됩니다. 이산화탄소와 물이 반응하여 탄산산소가 생성됩니다.> 탄산산소라는 물질은 없습니다.
<"부추와 함께 먹지 마세요" 부추와 상극인 음식과 좋은 음식들>이라는 기사에선 부추와 소고기가 상극이라고 소개하는데요. "쇠고기와 부추를 함께 섭취하면 문제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부추와 쇠고기는 모두 체온을 높이는 음식이므로, 함께 섭취하면 체온이 더욱 높아져 설사, 변비, 피부 발진 등의 증상을 유발할 수 있습니다."라고 적었습니다. 그런데 소고기와 부추를 함께 넣어 만드는 음식은 굉장히 많습니다. 소고기 부추잡채, 소고기 부추 솥밥, 소고기 부추 말이 등등이요.
7. 왜 이렇게 정확하지 않은 정보가 유통되는 걸까요?
- 이런 매체들이 전문성이 없기 때문이고요. 전문성도 없으면서 사람들이 많이 볼 것 같은 내용을 아무 데서나 베껴와서 그럴듯하게 눈길을 끄는 제목을 달아서 내보내는 것이죠. 포털을 운영하는 카카오 측에서 허위정보를 무책임하게 방치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요. 당근과 상극인 음식이라는 허위정보를 유포합니다. 그럼 당근이 명예훼손으로 매체를 고소하지는 않을 테고요. 당근 생산자조합이 대응하면 혹시 모르겠는데요. 여태껏 그런 시도가 있었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고요. 식약처에서 이 음식 상극과 관련된 허위 정보들을 한번 쫙 정리하는 노력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다음앱에서는 건강과 관련된 뉴스 형식의 정보를 소비하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불량 제품이 많거든요. 반면 네이버에서는 그래도 언론사가 생산한 정보나 의료기관 또는 공공기관에서 작성한 정보가 유통되고 있으니까. 건강 관련 정보는 그쪽을 이용하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8. 유사매체, 그러니까 언론사가 아니면서 언론사처럼 기사를 내보내는 매체 이야기를 했는데요. 그럼 언론사들이 내보내는 건강정보들은 어떻습니까?
- 굉장히 부끄러운 이야기인데요. 우리나라에 건강 전문 매체들이 여럿 있는데요. 확인되지 않은 근거 없는 내용을 기사로 만들어 내는 경우가 많습니다. 큰 건강매체죠 헬스조선 기사 제목이 이렇습니다. <우유와 '찰떡궁합'인 줄 알았는데… 같이 먹으면 안 되는 음식 5> 이 기사에 소개되는 다섯 가지는 자색고구마, 견과류, 시금치, 시리얼, 매운 음식을 꼽습니다. 헬스조선의 다른 기사를 찾아봤습니다. <아침밥 대신 습관처럼 마시는 ‘이 음료’… 위 건강엔 독이다?> 이런 제목인데요. "아침에 우유를 마시고 싶다면, 섬유질이 풍부한 견과류나 시리얼 등에 곁들이면 된다"라고 기사에 적었습니다. 같은 매체의 보도인데 이쪽 기사에선 우유와 같이 먹으면 안 된다고 하고, 다른 기사에선 우유와 곁들여 먹으라고 하고. 이래서 되겠습니까? 정부와 의학계에선 건강 관련 정보에 대해 인증 제도를 만들어서 운용하는 시도를 해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포털과 언론사, 유사매체 등 주체들이 어디에서도 자정 노력을 하지 않으면 바깥에서 회초리를 들어야 되는 게 맞습니다. 건강정보는 누구나 관심 있고 중요하게 받아들이지만 정작 생산하고 유통하는 관계자들은 굉장히 무책임하게 받아들이는 것 같아서 안타깝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