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중산층이 무너진다. 이런 이야기 정말 많이 들어본 것 같습니다. 보도도 많이 되고요. 그런데 최근에 중산층과 관련된 눈길을 끄는 뉴스가 있었어요. 월수입 700만 원 이상인 가구의 76%가 나는 중산층이라고 생각하고 12%는 자신을 하층이라고 생각하는 내용인데요. 자세한 내용부터 좀 알아보죠.
-주요 언론사들은 지난 7일 한국개발연구원(KDI)이 발간한 '한국의 중산층은 누구인가'라는 보고서 내용을 보도했습니다. 이 보고서는 한국 사회에서 끊이지 않고 ‘중산층 위기론’이 제기되지만, 실제로는 중산층이 줄어서가 아니라 스스로 중산층이라고 여기는 고소득층의 불만에서 비롯된 것일 수 있다고 분석합니다.
2. 중산층이 줄어든 게 아니고, 중산층이라고 여기는 고소득층의 불만 때문에 중산층 위기론이 제기된다. 그렇다면 먼저 중산층의 정의부터 좀 짚어봐야겠는데요.
-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을 보면 중산층을 <재산의 소유 정도가 유산 계급과 무산 계급의 중간에 놓인 계급. 중소 상공업자, 소지주, 봉급생활자 따위가 이에 속한다.>고 정의합니다.
OECD는 중산층을 중산층을 중위소득의 75~200%인 가구로 정의합니다. 우리나라 통계청은 균등화개인소득을 기준으로 “중위소득의 50% 이상~150% 미만”인 사람들을 "중위소득계층(middle income class)"라 부르고, 이들의 비중이 얼마나 되는지에 대한 통계를 작성하고 있습니다.
중산층이 붕괴하고 있다는 기사는 최근까지도 굉장히 많이 나오고 있는데요. 통계를 살펴보면 우리나라 중산층 규모는 시장소득 기준으로 2011년 49.8%였고 해마다 50%를 약간 넘는 선에서 왔다 갔다 하고 있습니다. 2022년엔 52.8%를 기록했고요. 처분가능소득을 기준으로 하면 증가세가 더 뚜렷하게 나타나고 최근 들어 증가폭이 늘어나는 걸 확인할 수 있습니다. 언론보도와는 달리 우리나라 중산층은 큰 변동 없고, 오히려 늘어나는 추세다. 이렇게 볼 수 있겠습니다.
3. 그렇다면 왜 언론들은 중산층이 붕괴한다고 보도를 했을까요?
- 주간한국 2023년 10월 20일 자 보도를 살펴보겠습니다. “1980년대에는 중산층이라 생각하는 한국인이 70%에 이르렀지만 최근에는 10명 중 4명꼴로 줄어든 것으로 조사됐다. 양극화와 상대적 박탈감, 그리고 고물가, 고금리 상황이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 특정 기준 이상의 고소득층은 오히려 하층으로 생각하는 비율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더 많이 벌수록 그만큼 경제적 열망도 높아지는 것으로 풀이된다." 이런데요. 언론들은 스스로를 중산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의 비율을 비중 있게 보도하고 있습니다.
4. 객관적인 지표가 아니라 스스로를 중산층으로 생각하는 사람의 비중은 얼마나 될까요?
- 통계청의 '사회조사'에 자신의 계층을 상⋅중⋅하로 나누어 어디에 속한다고 생각하는지를 묻는 항목이 있습니다. 여기에 중상과 중하라고 대답한 비율을 따졌는데요. 가구주를 대상으로 한 결과는 2013년 51.4%를 저점으로 2021년 55.9%까지 증가했고, 전체 인구 기준으로는 2009년 이래 57~58% 수준에서 큰 변화가 없는 걸로 파악됩니다.
5. 그렇다면 도대체 한 달에 얼마를 벌면 중산층에 속하는 건가요?
- 통계청 소득분배지표에 따르면 2021년 기준 가구중위소득은 3209만 원입니다. 월로 환산하면 267만 원 정도 되는데요. 중위소득은 우리나라 모든 가구를 소득 순으로 일렬로 줄 세웠을 때 한가운데에 위치하는 가구의 소득입니다. 우리나라 통계청은 중산층 기준을 중위소득의 50% 이상 150% 미만으로 잡고 있으니 월 소득 133만 원부터 401만 원까지가 중산층에 해당됩니다. OECD기준으로 보면 200만 원~534만 원까지가 중산층에 해당하고요. 이건 가구원수가 다른 가구 간의 후생 복지 수준을 비교할 수 있도록 가구소득을 가구원수의 제곱근으로 나눈 소득입니다.
실생활에 참고하시려면 기준 중위소득을 참고하시면 좋을 것 같은데요. 2024년 3인 가구 기준 중위소득은 471만 원입니다. 3인 가구라면 235만~706만 원까지가 중산층 정의에 부합하네요.
6. 월 235만 원 버는 가구와 월 706만 원 버는 가구가 중산층으로 함께 분류되는 것은 좀 이상합니다. 월 소득 235만 원인 가구가 중산층으로 분류되는 것도 일반 국민들이 눈높이와는 좀 다른 것 같기도 한데요.
- NH투자증권이 발간하는 중산층 보고서가 있습니다. 지난해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설문에 참여한 중산층의 절반에 가까운 45.6%가 자신을 '하위층'이라고 응답했습니다.
설문 참여자들은 4인 가구 기준 월소득이 686만 원은 돼야 중산층이라고 응답했습니다. 이 금액은 가구소득 상위 24%에 해당되고요. 4인 가구의 월평균소득(624만 원) 보다 많은 금액입니다.
응답자들은 중산층으로 볼 수 있는 소비 수준에 대해서는 월 427만 원이라고 답했습니다. 지난해 우리나라 가구 상위 9.4% 수준의 소비규모인데요. 설문에 참여한 중산층의 소비(월 242만 원)뿐만 아니라 4인 가구 기준의 소비액(월 341만 원) 보다 높습니다.
보고서는 "소비 수준은 곧 생활 수준은 의미한다"며 "우리나라 중산층은 상위 10% 정도의 삶의 질을 누릴 수 있어야 스스로를 중산층으로 인정한다고 볼 수 있다"라고 설명했습니다. 통계로 잡히는 중산층과 국민들이 인식하는 중산층의 모습이 확연히 다르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KDI 보고서도 비슷한 진단을 내리는데요. '우리 국민들 사이에서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중산층’ 개념은 중간적 생활수준을 누리는 계층이 아니라 극소수의 상층부를 제외하고 일정 수준 이상의 안정적인 삶을 영유하는 상위계층을 지칭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음을 시사한다"라고 결론 내렸습니다.
7. 월수입 700만 원 이상인 가구의 76%가 나는 중산층이라고 생각하고 12%는 자신을 하층이라고 생각한다는 이야기는 어떻게 나온 건가요?
- KDI가 3400명을 대상으로 계층인식조사를 실시했습니다. 이 조사에서 자신의 계층을 '상'이라고 응답한 사람은 3%에 그쳤고, '중'은 70.4%, '하'는 26.6%로 나타났습니다. 통상의 방식대로 사회의 상위층을 약 20% 정도로 가정한다면, 그중 단 3%만이 자신을 상위층으로 인식하고 있을 뿐, 대부분은 자신을 중층, 즉 중산층으로 분류하고 있다는 뜻인데요.
월 소득이 700만 원이 넘는 고소득 가구 중에서도 자신을 상층이라고 생각하는 비율은 11.3%에 불과했습니다. 76.4%는 자신을 중산층으로 여겼고, 12.2%는 하층으로 생각했습니다. 여러 조사를 살펴봐도 객관적 지위로는 상층에 속할 것으로 보이는 사람들의 상당수가 스스로를 중산층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게 나타납니다.
연구진은 "소득 상위 10% 이상 계층에서 객관적으로 경제적 지위 하락을 경험하고 있는데, 이들 가운데 스스로 상층이라고 인식하는 사람은 2~3%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자신을 중산층으로 인식하면서 중산층 위기를 말할 개연성이 크다"라고 분석했습니다.
8. 그렇다면 중산층 위기, 또는 중산층 붕괴론은 실제로 중산층이 무너지는 게 아니라 상류층이 재산이 줄어들고 있는 것이다?
- 지난 10년(2011~2021년) 간 소득 하위 80%에 해당하는 1~4 분위의 전체 소득 점유율이 증가했지만 소득 상위 20%인 5 분위의 점유율은 44.3%에서 40.0%로 줄었습니다. 상류층의 소득이 줄어들면서 불안감을 나타내는 것이 과잉 대변되고 있다는 분석이 있고요. 또 다른 분석은 중산층의 위기감은 현재의 지위에 대한 불만뿐만 아니라 지위의 상실 가능성에서 오는 불안감의 표현일 수 있다고 합니다. 소득 및 계층 이동성이 하락하면서 세대 간 계층 대물림이 지속되는 가운데 노력만으로 소득 및 계층 상승을 이룰 수 있으리라는 희망이 점점 더 옅어지고 있는 상황이라는 것이죠.
9. 자신의 경제적 지위, 그러니까 소득 수준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 왜 중요할까요?
- 정책적인 측면을 보면 이미 상층에 진입했지만 스스로 중산층이라고 생각하는 계층이 크게 고려돼야 할 부류인데요. 이들은 교육-직업-자산 축적으로 이어지는 연결 고리를 통해 이미 계층 상승을 이루었지만 추가적인 상승 욕구를 강하게 가지고 있습니다. 정부입장에선 이들은 상층에 해당해 정부의 지원이 크게 필요하지 않은 집단인데요. 하지만 이들이 스스로를 중산층이라고 생각하면서 자신들이 필요로 하는 것에 대한 정책적 지원을 요구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들은 강력한 사회적 발언권이나 문화 권력을 통해 중산층 정책의 방향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개인적으로도 이미 저 위에 있는데 너무 더 위만 보고 달려가는 건 스스로에게도 불행한 일이 될 겁니다. 소득 상위 계층이 자신의 위치를 바로 알고 이웃도 돌아보고 소외계층도 살펴주고 하는 게 개인과 사회를 위해 도움이 되는 일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위 내용은 KBS 오늘아침1라디오(2024.05.10)에 방송됐습니다. 유튜브 https://www.youtube.com/watch?v=eV0e_syM_84 를 통해 다시 시청하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