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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란 말고, 메추리알 말고 새알 본 적 있니?

생태유학 27. 친구가 오니 신기한 것들이 보인다

by 선정수

곰배령 설피마을 경진이집에 손님들이 찾아왔습니다. 4학년 동갑내기 남자 어린이와 중학생 오빠 가족, 6살 유치원 동생 가족입니다. 경진 아빠의 선후배 가족들이 찾아온 건데요. 산골마을에 대해 굉장한 궁금증을 안고 찾아왔습니다. 뭘 하고 사는지, 어떻게 지내는지, 불편한 점은 없는지, 어떻게 생태유학을 결심하게 됐는지 등등 많은 질문과 답을 주고받았습니다. 하늘에 쏟아지는 별도 봤고요.


서울 손님들은 대체로 서울-양양 고속도로를 타고 옵니다. 설피마을은 서양양 IC에서 내려서 조침령 고개를 넘어오면 가장 가깝기 때문이죠. 토요일에 찾아온 손님들을 맞으러 양양으로 나갔습니다. 일부러 양양읍내에서 만나자고 했죠. 양양시장 구경도 하고 점심도 먹을 겸요. 설피마을에는 만만한 음식점이 많지 않으니까요. 게다가 경진이가 좋아하는 '남동만곳'을 서울 손님들에게 소개해 주려고 했죠. 경진이는 '나만의 비밀 장소'가 공개되는 걸 굉장히 망설였지만, 큰맘 먹고 손님들에게 공개하기로 했죠. (사실은 블로그와 구글 지도만 켜도 수많은 콘텐츠가 나오는 잘 알려진 곳입니다. ㅎㅎ)

KakaoTalk_20240526_080751147_07.jpg 경진이가 나만의 비밀장소인 '남동만곳'을 윤이에게 공개했어요. 큰맘 먹었네요.

서울 손님들은 생기 넘치는 엄마+4학년 윤이 팀과 심드렁한(아니면 체력 방전?) 아빠+중학생 율이 팀으로 구별됐습니다. 심드렁 한 사람들은 어쩔 수 없죠. 신나는 사람들끼리 남대천이 바다로 흘러들어 가는 곳을 향해 씩씩하게 걸어갔습니다. 정말 여기는 갈 때마다 이 세상 아닌 것 같고, 대한민국 아니고 외국 같은 풍경이라서 참 깜짝 놀랍니다. 경진이와 윤이는 발을 걷어붙이고 만만해 보이는 얕은 곳으로 걸어 들어갔습니다. 강이 바다로 흘러들어 가는 곳을 가로지른 것이죠. 아직은 물이 차가워서 본격적인 물놀이는 하지 못했지만 엄청 신나게 놀았습니다.

KakaoTalk_20240526_130501673_04.jpg 심드렁 팀입니다. ㅎㅎ

이 세상 아닌 것처럼 바람이 세차게 부는데, 모래가 바람에 날려서 뺨을 때렸습니다. 아이들은 강풍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주운 막대기와 고무공을 이용해 야구 놀이를 하고, 물수제비를 하고, 모래바람을 막을 성채를 쌓으면서 신나게 놀았습니다. 결국 심드렁 팀도 모래사장에 즉석으로 만든 PAR3 골프에는 끝내 저항하지 못하고 함께 놀게 되더군요. 돌아오는 길에 심드렁 팀 대장님인 윤이 아빠가 손가락을 펼쳐 모래밭을 가리킵니다. 바람이 너무 세차게 불어서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지만 뭔가 있다는 뜻인 것 같습니다. 아이들은 열심히 뛰어갔죠.

KakaoTalk_20240526_080751147_05.jpg 무언가 재미를 발견한 모양입니다.

그곳엔 새알 두 개가 움푹 파인 모래밭에 놓여있었습니다. 나중에 한상훈 박사님이 말씀하시기로는 흰목물떼새 종류가 알을 낳은 것인데 사람이 다가오니까 어미새가 잠깐 피신한 거라고 하더라고요. 윤이는 알을 집어 들어 요리조리 살핍니다. 경진이는 질겁을 하면서 내려놓으라고 소리치네요. ㅎㅎ 한동안 새알을 관찰하고 다시 걸음을 옮기는데 몇 걸음 못 가서 이번엔 새알 3개를 발견했습니다. 참 많네요. 여태껏 새알을 발견하고 싶어서 모래밭을 유심히 살피고 다녔었는데. 그때는 번식기가 아니었나 봐요. 경진이는 새알을 발견한 기쁨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팔짝팔짝 뛰면서 좋아하네요.

KakaoTalk_20240526_080751147_04.jpg 야생의 새알은 본 적이 있으신가요? 우린 봤습니다.

양양시장에 들러서 장을 보는데 이번엔 제비가 눈길을 끕니다. 양양시장엔 제비가 참 많은데요. 제비집마다 새끼 제비들이 네댓 마리씩 들어있습니다. 작은 녀석 큰 녀석, 곧 둥지를 떠날 녀석들이 어미를 불러젖힙니다. 물론 밥 달라고죠. 어미새가 날아오면 일제히 입을 벌리면서 고개를 내미는데요. 정말 귀엽습니다. 덥석덥석 먹이를 받아먹는 게 참 복스럽습니다.


KakaoTalk_20240526_080751147_09.jpg 양양시장 한 상점 cctv카메라 위에 제비집을 지었는데요. 새끼제비들이 너무너무 귀엽습니다.

제비집을 더 찾아보려고 여기저기 기웃거렸는데요. 일부 상점에선 제비집을 털어버린 듯한 흔적이 보여서 좀 안타까웠습니다. 똥 싸고 날아다니고 지지배배 거려서 귀찮을 수도 있을 것 같긴 한데요. 함께 사는 아량을 좀 베풀어 주는 것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양양군에서 제비집 밑에 똥 떨어지지 말도록 받치는 받침대를 지원해 주면 어떨까 싶습니다. (혹시 아나요. 경진이처럼 제비를 보려고 양양을 찾는 사람들이 많아질지도요. 지역 명물이 될지도 모르잖아요. 복을 물어오는 제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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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끼 참새가 비행훈련을 받는 모습도 목격됐습니다. 이번엔 정말 신기한 걸 많이 보게 되네요. 양양시장에서 장을 봐서 설피마을로 올라왔습니다. 유치원생 건희네도 도착했습니다. 설피마을 체육관인 설피관에서 피클볼 한판 신나게 치고 손님들이 묵는 펜션으로 가서 바비큐 파티를 했죠. 비닐하우스로 만든 바비큐장이 있어서 참 좋았는데요. 펜션 사장님이 손수 재배한 명이나물과 곰취를 주셔서 정말 맛있고 행복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누군가가 비닐을 막 두드리는 거예요. 누굴까 했더니 거대 나방이 비닐하우스 바깥에서 불빛을 보고 들어오려고 퍼덕거리고 있었습니다. 아이들은 거대 나방을 보며 또 한 번 신기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나중에 찾아보니 긴꼬리산누에나방이더군요.

KakaoTalk_20240526_214641676.jpg 비닐하우스를 두들기던 긴꼬리산누에나방

배불리 먹은 아이들은 윤이 엄마와 함께 별을 보러 나갔습니다. 윤이는 서울에선 별이 잘 안 보이는데 여긴 정말 많이 보인다고 감탄하네요. 재잘재잘 조잘조잘 잘 놀았고요. 밤이 늦었으니 잠을 청합니다. 돌아오는 길에 은하수를 볼 수 있으려나 했는데 보름달이 떠서 은하수는 다음 기회로...


아침에 일어나서 양양양수발전소 상부댐을 구경했습니다. 해발 900미터가 넘는 첩첩산중에 댐을 만들어서 발전에 쓴다네요. 폼포코 너구리들의 대사를 빌자면 참 인간은 부처님 같은 능력을 갖고 있나 봅니다. 어마어마한 인공호수 둘레로 둘레길도 만들어 놨는데요. 경진네, 윤이네, 건희네 세 식구는 둘레길 산책에 나섰습니다. 심드렁 팀은 또 심드렁하네요. ㅎㅎ 몇 걸음 가다가 벤치가 보이면 참새 방앗간처럼 주저앉습니다. 그래도 맑은 공기 마시면서 몸을 움직이는 건 싫지 않은 모양이네요.

KakaoTalk_20240526_111240449_04.jpg 양양양수발전소 상부댐에서 세 가족이 한 컷

양양양수발전소 상부댐 둘레길 산책을 마친 우리들은 다시 양양시장으로 갔습니다. 어린이들이 자장면을 먹고 싶다고 하네요. 어제는 어린이들이 양보해서 어른들이 감자옹심이와 오징어순대를 먹었으니 이번엔 어린이들에게 어른이 양보해야 하지 않겠냐고 합니다. 똑똑한 어린이들입니다. 양양시장에 가서 자장면을 맛나게 먹었습니다. 나오는 길에 전날 봤던 제비집을 다시 돌아봤는데요. 어제는 분명히 새끼제비가 가득 들어있었던 제비집이 텅 비어 있었습니다. 대신 그 앞 전깃줄에 제비 대여섯 마리가 줄지어 앉았더라고요. 카메라로 확대해 보니 날갯죽지에 솜털이 부숭부숭한 것이 어제 그 녀석들이 비행훈련하러 나온 모양이네요.


윤이네는 먼저 서울로 출발하고, 건희네와 경진네는 낙산해변으로 향했습니다. 유치원생 건희는 밤새도록 모래를 팔 기세네요. 경진이는 또 바지를 걷고 파도를 만났습니다. 덕분에 속옷까지 흠뻑 젖었습니다. 비가 온다는 예보가 있어서 건희네가 서울 가는 길을 재촉하려는데. 역시 유치원생은 안 간다고 버티네요. 결국 '놔두고 가기' 쇼를 벌인 끝에 건희네는 서울로 출발할 수 있었습니다.

KakaoTalk_20240526_184333883_02.jpg 외국 같쥬?

멀리서 친구가 찾아오니 어찌 기쁘지 아니할까요. 게다가 신기한 경험도 많이 가져다줬으니 기쁨은 두 배가 됐습니다. 친구들은 다시 만나기로 한 여름을 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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