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유학 28. 엄마가 가져왔나. 신기한 관찰!!
이번 주는 경진이 엄마가 설피마을에 찾아왔습니다. 생태유학은 정말 참 좋은데 딱 하나 아이가 엄마와 떨어져 있어야 한다는 어려움이 있네요. 처음엔 한 주는 우리가 본가로 가고 한 주는 엄마가 설피마을로 오는 계획이었는데, 2주에 한 번씩 왔다 갔다 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어요. 그래서 아이는 보고 싶은 엄마를 마음껏 볼 수 없는 아쉬움이 있었죠. 드디어 엄마가 왔습니다.
서울 반포 고속버스터미널에서 출발한 경진 엄마는 19시 50분 편을 선택했습니다. 막히지 않는 시간을 고른 건데요. 덕분에 경진이와 저는 밤바다 모래톱을 관찰하러 나가게 됐죠. 양양터미널로 도착하는 엄마를 마중하기 위해 양양남대천이 동해바다로 흘러들어 가는 '남동만곳'으로 미리 가서 관찰을 하면서 엄마를 기다리기로 했죠. 물론 그전에 숙제를 다 해놓고 가기로 했고요. 거뜬히 숙제를 마치고 출발을 했습니다.
산을 내려가는데 날이 어둑해지더라고요. 다행히 헤드 랜턴과 두툼한 옷을 준비해 갔기 때문에 큰 어려움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헤드랜턴을 사용해도 발밑이 한낮보다는 어두울 수밖에 없죠. 게다가 지난주 같은 곳에 왔을 때 물떼새들이 모래밭에 알을 낳아 놓은 것을 관찰한 터라 발걸음은 더욱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습니다. 발을 잘 못 디뎌 새알을 밟아 깨뜨리면 어쩌냐는 게 경진이의 걱정이었습니다.
어둠을 헤치고 걸음을 옮기니 먼저 왜가리 울음소리가 들립니다. 새들은 저마다 울음소리가 다르기 때문에 소리로도 종을 구분할 수 있습니다. 멀리서 사람의 접근을 경계하는 '가르르륵'하는 소리를 냅니다. 다음은 물떼새 소리가 들립니다. 쯔빗쯔빗, 찝찝찝찝 하는 날카로운 높은음인데요. 아무래도 근처에 알 자리가 있는 게 틀림없는 것 같습니다. 물떼새 류는 모래밭의 움푹 파인 곳에 알을 낳습니다. 우리는 보지 못했지만 분명히 근처에 알자리가 있는 게 틀림없습니다. 알 또는 새끼가 다칠까 봐 침입자를 경계하는 소리입니다. 말을 하는 것만큼이나 확실한 의미를 담고 있는 게 느껴집니다. '더 가까이 다가가면 내가 너를 가만두지 않겠다~' 이런 뉘앙스입니다.
경진이는 새알이 너무나 보고 싶었습니다. 지난주에 봤던 그 알이 부화했는지도 너무너무 궁금했고요. 그런데 밤이라서 어디가 어딘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찾기 대장' 아빠에게 찾아달라고 부탁을 했죠. 경진 아빠는 물떼새의 경계음이 커지는 정도를 살피며 발밑에 알자리가 있는지 찾기 시작했습니다. 바로 그때 '엇'하는 소리와 함께 경진아빠가 뭔가를 발견했습니다. 몽클몽클하고 보송보송하고 보드랍고 따뜻하게 생긴 두 덩어리가 모래밭에 웅크리고 있었습니다. 아기새였죠. 일단 사진을 찍었습니다.
좀 더 좋은 사진을 얻기 위해 경진이가 이리저리 사진을 찍고 있는데, 어미새가 굉장히 화가 난 듯 큰 소리를 내면서 주위를 맴도는 것이었습니다. 사진을 찍은 우리는 얼른 자리를 비켜줬습니다. 너무나 만져보고 싶었지만 아기새가 다칠 수도 있으니 만지는 것은 포기했습니다. 알자리를 벗어나고 있는데 어미새는 한동안 계속 쫓아오며 주위를 날았습니다. 경진이는 "미안해, 잘못했어, 다시는 안 그럴게~"라고 싹싹 빌면서 발걸음을 재촉했습니다. 한참을 벗어나자 더 이상 어미새는 따라오지 않았습니다. 세상에 아기새를 한밤 모래밭에서 만나게 될 줄 누가 알았을까요.
한참 야간 관찰을 하다가 엄마를 마중하러 갔습니다. 오랜만에 만난 모녀는 기쁨의 포옹을 나눕니다. 경진이는 엄마에게 아기새 사진을 보여주며 신기한 경험을 나눕니다. 다음날 곰배령 등산 예약을 해놨으니 빨리 들어가서 자야죠.
다음날 눈을 떴는데 비가 옵니다. 곰배령 등산은 취소했습니다. 느지막하게 아침을 먹고 진동호(양양양수발전소 상부댐) 산책을 한 뒤 양양으로 넘어갑니다. 반창고를 사러 약국에 가야 했거든요. 경진이는 굉장히 자주 넘어져서 여기저기 많이 까집니다. 반창고가 많이 필요하죠. 약국에 들렀다 장칼국수도 먹고 양양시장 제비도 관찰합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양양남대천에 들러 가마우지를 관찰하기로 했습니다. 바다로 흘러들어 가는 곳 말고 인제 쪽으로 3~4킬로미터 정도 올라가면 가마우지가 많은 곳이 있습니다. 둔치에 차를 세우고 천변으로 접근하는데 개개비 소리가 어마어마합니다. 여기에도 물떼새가 살고 있기도 하고요.
경진이가 무언가를 발견했습니다. 천변 모래밭에 발자국이 많다고 하네요. 살펴보니 고라니 발자국과 또 다른 수상한 발자국이 눈에 띕니다. 고양이 발자국 같기도 하고, 살쾡이 발자국 같기도 합니다. 고라니 발자국은 V자 모양이라서 알아보기 쉬운데, 다른 발자국은 잘 모르겠습니다. 한상훈 박사님 찬스를 사용했죠. 박사님은 사진을 보시더니 "발가락이 5개 확실히 찍혀있는 걸 보니 수달이 맞네요."라고 확인해 주십니다. 대단한 꼬맹이가 수달 발자국을 발견했네요.
기쁜 마음으로 발걸음을 돌려 집으로 향합니다. 한참 차를 타고 오는데 경진아빠가 길가에서 뭔가를 발견했습니다. 뱀을 본 것 같다고 하네요. 차를 돌려서 현장으로 가보기로 합니다. 한상훈 박사님이 뱀을 발견하면 사체를 보존해 달라고 이야기했던 게 생각났거든요. 차를 세우고 조심스럽게 다가가봤는데요. 딱 봐도 <유혈목이>입니다. 꽃뱀이라고 부르죠. 왜 죽었는지는 모르겠는데 외관은 멀쩡합니다. 일단 뱀 포획용으로 준비해 놓은 자루에 담았습니다. 물론 죽은 것은 확인했죠. 아침에 죽었는지 사체가 아직 덜 굳어있습니다.
한상훈 박사님께 필요하시냐고 물었더니 알코올에 담가서 보존해 달라고 하십니다. 약국에서 에탄올 80%(메탄올은 절대 안 됨)를 구해다가 500mL 페트병에 담가서 보존해야 하는데 알코올이 잘 스며들도록 배를 갈라달라고 하시네요. 아~ 도저히 끔찍해서 못하겠습니다. 냉동 보존하면 어떻겠냐고 역제안을 드렸죠. 그랬더니 그래도 된다고 하십니다. 집에 와서 플라스틱통에 뱀 사체를 옮겨 담고 냉동실에 보관했습니다. 다음번 생태학교 때 전해 드려야겠습니다.
뭔가 흥미진진한 일들이 계속 생기고 있습니다. 아침에는 휘파람새가 와서 노래를 부르더군요. 경진이의 생물 관찰 리스트에는 계속 새로운 생물종이 추가되고 있습니다. 생태 감수성도 조금씩 더 쌓여갔으면 좋겠습니다.
선경진: 수달 발자국을 봤을 때 정말 신기했어요. 유혈목이 사체를 봤을 때는 불쌍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