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유학 37. 열정 가득했던 세계 최초 수달대회를 다녀오다
강원도 인제군 기린면 곰배령 입구 설피마을에서 산골유학을 하는 경진네는 모처럼 산 아랫동네로 내려와 봤습니다. 2024년 8월 12~13일 충북 진천군청소년수련원에서 열린 '수달대회'에 참석하려고 말이죠. <수달대회>가 뭐냐고요? 글쎄요. 저희도 처음에는 무엇일지 궁금했습니다. 인제야생동물생태학교를 이끄시는 대한민국 최고 야생동물 전문가인 한상훈 박사님이 오라고 하셨으니 갔을 뿐이죠.
곰배령 자락에서 곤히 자고 있는 초4 꼬맹이를 깨워서 아침 일찍 출발했는데요. 진천에 도착하니 정오가 조금 지났더라고요. 중간에 휴게소에서 국밥 한 그릇 먹었을 뿐이고, 정말 부지런히 달렸는데도 그렇더라고요. 참 멀긴 했습니다. 참가자 등록을 하는데 정말 20년 만에 만나는 반가운 얼굴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서점 쥔장으로 지내신다는 조혜진 님이 참가자 등록을 받고 계시더라고요. 어어~~ 정말 반가웠습니다. 서점 '나무 곁에 서서'에 꼭 책 사러 갈게요. ^^
경진이는 며칠 전부터 '수달대회' 참석하러 가는 차 안에서까지 계속 '수달대회'가 뭐 하는 곳이냐고 물었습니다. 탐탁지 않았나 봐요. 경진맘도 "수달대회는 도대체 뭐 하는 곳이야?"라고 물었습니다. 일단 진행했던 일정표를 보여드릴게요.
경진이는 일정표를 보더니 수달 답사와 어류 탐사에 굉장한 흥미를 나타냈습니다. 야생동물 관찰하는 걸 좋아하는 어린이니까요. 개회식을 하고, 수달그림 그리기 대회 입상자들에게 상을 주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경진이는 지역대회에서 입선했지만 아쉽게도 전국대회에는 입상을 하지 못했어요. 우리는 함께 대회장 벽면에 가득 붙여 놓은 전국대회 수상작을 둘러보면서 "정말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이 많네~"라고 감탄했죠. 수상을 축하드리고, 패배를 깨끗이 인정합니다. *올림픽 정신
야생영장류 연구가로 유명하신 생명다양성재단 김산하 대표님이 깊은 영감을 주는 강연을 해주셨습니다. 강과 수달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다. 수달이 살지 못하는 강은 건강을 잃은 것이다. 수달이 살고 있다는 것은 수달과 얽혀있는 먹이 사슬, 유역의 환경이 건강하다는 증거다. 이렇게 요약을 해봤습니다. 설피마을에도 살고 있을 수달을 한번 만나보고 싶다는 생각이 더 깊어지네요.
이어서 서울, 경기, 진천, 대구, 음.. 또 어디였더라... 전국 각지에서 수달 보호 활동을 하시는 분들이 각자의 이야기를 나눠 주셨습니다. 세상에 이렇게 야생동물에 진심인 분들이 많다는 걸 새삼 깨닫게 됩니다. 야생동물을 사랑하시는 분들 파이팅 하시고요. 우리는 메이저는 아닐지라도, 혼자는 아니라는... 누군가 나처럼 야생동물을 사랑하는 사람이 어디선가 무언가를 하고 있다는 용기를 나눠가질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수달대회 밥도 얼마나 맛있었는지 모릅니다. 집밥 러버 경진이가 매 끼니마다 엄청난 식사량을 과시하면서 반찬 하나도 남김없이 매끼를 감사하게 먹었답니다. 그래도 미역국은 싫었나 봐요. ㅎㅎ 남겼어요. 식사를 준비해 주신 관계자분들께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저녁밥을 먹고는 해커톤이 진행됐는데요. 저는 정말 머리가 아프고 귀가 울리는 괴로운 시간이었는데요. 의외로 경진이는 정말 눈을 반짝거리면서 신나게 참여를 하더라고요. 많은 어른들과 친구들이 함께 토론하고 해법을 찾아가는 과정이 정말 재미있었나 봐요. 우리 조의 주제는 '수달 모니터링과 인연 맺기' 였는데요. 각자 지역에서 수달 보호 활동을 하시는 분들은 자신들의 지역 실정에 맞는 해법을 가져가고 싶으셨을 거예요. 그런데 발표를 하는 대회이다 보니 공감대 형성이 중요하기도 하고... 그래서 모두가 만족하지는 못하셨을 것 같아요. 제가 어쩌다 조장을 맡았는데 너무 불성실했던 것 같아서 반성합니다~~
이어지는 친교의 시간 승승장구 김승구 님의 사회로 정말 정말 재미있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눈이 튀어나올 것처럼 피곤하긴 했지만 그래도 너무너무 재미있었습니다. 배꼽이 몇 번이나 빠지려고 했는지 몰라요. 이제 하루 일과가 끝났으니 자야죠. 많은 분들은 페르세우스자리 유성우를 보러 나가셨는데요. 경진네는 그 전날 이미 설피마을에서 유성을 보고 왔기 때문에 미련 없이 잠을 선택했습니다. 그런데 웬걸... 1 가족 1실이 아니라 남자실 여자실 따로 배정이 돼 있더라고요. 그래도 4학년 경진이는 씩씩하게 처음 뵙는 이모들과 함께 자는 걸 선택해서 훌륭히 하룻밤을 푹 자고 아침을 맞았습니다. 저는 남자방에 탱크 3대가 들어오는 바람에 굉장히 못 잤다는...
아침 5시 50분에 수달 답사를 출발했습니다. 경진네는 농다리 지역을 탐사했는데요. '너구리박사'로 방송에 많이 나오시는 박병권 한국도시생태연구소 소장님의 안내를 받으면서 수달 발자국과 배설물 자국, 하천 바닥에 붙어 수달이 헤엄친 자국 등을 관찰할 수 있었습니다. 설피마을 살 때는 잘 몰랐습니다. 곰배령에서 내려오는 계곡물이 얼마나 깨끗했던 건지를요. 그래도 미호강에 수달이 잘 살고 있는 것 같아서 기뻤습니다. 경진네는 주로 양양 남대천 주변에서 수달흔적을 많이 발견했는데요. 진동리 설피마을 계곡도 주기적으로 내려가서 한번 살펴봐야겠습니다.
수련원으로 돌아와 맛있게 아침을 먹은 뒤 다시 집합입니다. 이번엔 어류탐사입니다. 숲 속 트래킹(탐조)을 선택한 팀도 있는데 경진네는 어류 탐사를 선택했습니다. 더울 게 뻔하니까 물속에서 더위를 피하자는 꼼수도 많이 포함된 선택이었죠. 그런데 웬걸 가슴장화를 나눠주십니다. 탐사 장소에 도착해 가슴장화를 신으니 후끈합니다. 족대로 한 바탕 어류채집을 합니다. 어류탐사 3개 조 가운데 우리 팀이 14종을 발견해 가장 다양한 어류를 채집했습니다. 참종개, 점줄종개, 잉어, 붕어, 블루길, 모래무지, 피라미, 가물치, 돌고기, 각시붕어, 버들치, 밀어(당겨 아닙니다), 긴몰개, 대륙송사리입니다. 함께 했던 7살 '민서 박사'님이 AI급의 어류 동정 실력을 보여줘 저는 정말 깜짝 놀랐습니다. '영재 발굴단'에 출연시켜야 하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경진이는 너무 더웠는지 아니면 실수였는지 몰라도 미끄러져서 가슴장화 속으로 위아래를 홀딱 다 적셨더라고요. 장화 벗는데 물이 콸콸 쏟아졌어요. 저는 빠지지 않았는데도 땀에 흠뻑 젖었고요. 무더운 날씨 속에서도 어류 탐사 진행해 주신 관계자분들과 참가자분들께 모두 감사드립니다. 성무성 물들이연구소 대표님이 항상 강조하시는 "어떤 물고기 관찰도 물고기에게 고통을 주는 행위다. 우리는 그들의 희생을 헛되이 하지 않기 위해 모든 관찰을 기록해야 한다"는 말씀에 동의합니다. 그래서 저는 새를 관찰하는 걸 좋아합니다.ㅎㅎ
비실비실하는 물고기를 놔주느라 손에서 물고기 냄새가 난다는 초4 경진이는 수련원에 돌아오자마자 공동샤워실로 가서 한바탕 샤워를 했습니다. 샤워는 정말이지 여름에 생기를 불어넣는 데는 최곱니다. 쌩쌩해진 어린이와 함께 해커톤 발표 시간을 향합니다. <우리 동네에 수달이 나타난다면>이라는 주제로 여러분들이 의견을 모아주셨습니다. 발표도 훌륭히 해냈고요. 진동리에 수달이 나타났다면... 아마 지금도 있을 테니까 진동리설피마을에서 수달을 목격했다면... 이게 더 맞겠네요. 뭘 어떡하나요. 수달아 안녕 인사하면 되겠죠. 진동리는 자연이니까요. 그리고 마을 이장님께 여기 수달이 살고 있으니 지켜주세요.라고 말해주는 게 좋을까요? 저는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그렇다고 이장님이 수달을 해칠 거라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ㅎㅎ
'민서 박사'님 조가 해커톤 우승을 했습니다. 축하드립니다. 다시 한번 패배를 승복하는 올림픽 정신 22 ㅎㅎ
이로써 10박 11일 같았던 1박 2일의 <수달 대회>는 막을 내렸습니다. 국내 최초의 수달대회로 기록됐다고 합니다. 그런데 아마 세계 최초는 아닐까 합니다. 다른 나라에도 있을까요? 누가 좀 아시는 분 계시면 알려주세요. 저는 검색을 해봐도 잘 안 나오네요.
이상 경진네 수달대회 참가기였습니다. 여기까지 읽었는데도 "<수달대회>가 뭐야?"라고 물으시는 분은 안 계실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스스로를 위해 한번 정의를 내려봅니다.
수달대회: 수달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나는 혼자가 아님을 확인하고 용기를 나눠가지는 모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