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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골유학 어린이의 시원한 여름 나기

생태유학 36. 여름방학특집

by 선정수

곰배령 입구 설피마을에서 살고 있는 산골유학 어린이들은 여름방학을 맞았습니다. 지난겨울 숙소가 리모델링을 하는 바람에 산골에서의 방학을 제대로 즐기지 못한 아이들은 이번 여름을 벼르고 있었습니다. 방학을 처음 맞는 경진이도 산골에서의 여름방학을 매우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이곳 곰배령 입구는 기상청 지역구분에 따르면 인제 산지와 양양산지 경계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한랭 습윤 기후에 속하죠. 여름이 시원하다는 뜻입니다. 지내보니 알겠네요. 정말 여름이 시원합니다. 습하고요. 그래서 진동분교의 여름방학은 짧습니다. 7월 19일에 시작한 방학은 8월 19일에 끝납니다. 딱 잘라 한 달. 아이들 입장에선 조금 부족한 감도 있네요. 쩝쩝... 그러나 학부모 된 자로서는 학교 급식의 엄청난 위력을 절감할 수 있는 기간이기도 합니다. 집밥을 좋아하는 경진이는 하루 세끼, 한 달 구십 끼를 집에서 먹을 기세네요. ㅎㅎ


방학이 시작되고 과천으로 돌아가지 않은 경진이는 처음 며칠 동안은 정말 아무것도 안 하고 땡땡 놀았답니다. 심지어는 방학 생활계획표도 짜지 않았지요. 작년까지는 커다란 원을 나눠서 생활계획표를 짰는데요. 올해는 하기 싫었나 봐요. 며칠을 탱자탱자 놀고 생태유학 프로그램으로 진행한 1학기 마무리 설악워터피아 물놀이를 다녀왔습니다. 언제 가도 즐겁고 다시 가도 새로운 설악워터피아입니다. 좀 무섭긴 했지만 거대한 워터슬라이드를 두 번이나 탔다고 말하면서 뭔가 성장한 느낌을 주네요.


방학을 했으니 외갓집도 다녀와야죠. 동해고속도로와 7번 국도를 타고 포항 외갓집에 다니러 갔습니다. 칠포해수욕장에서 냉수대를 만나서 정신력으로 파도타기를 했습니다. 사촌동생 인서와 만나서 구룡포 인근 간이해수욕장인 삼정해수욕장에 갔는데요. 관리가 제대로 안 돼 있어서 충격을 받고 울음을 터뜨립니다. 그러나 인생사 새옹지마. 황급히 자리를 옮긴 카라반 캠핑장에서 풀장을 발견하고 룰루랄라 하루 종일 물놀이를 하고 새로운 친구도 사귀었답니다. 캠핑하면 새 친구를 만난다더니 정말 그 말이 맞네요. 덕분에 밤낮을 바꿔 지내던 사촌동생 인서도 물놀이의 재미를 깨닫고 체력을 방전시킨 뒤 밤에 꿀잠을 잤다고 하네요.


이후 과천 본가에서 엄마와 함께 며칠을 보냈습니다. 산골유학하면서 가장 큰 아쉬움은 가족이 떨어져 지내야 한다는 건데요. 오랜만에 엄마와 함께하는 시간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처음 산골유학을 떠나올 때 경진엄마가 눈물을 뚝뚝 떨어뜨리던 모습이 생각나네요. 이제는 엄마도 아이도 모두 씩씩해져서 조금 있다가 만나자~ 하면서 잘 보내줍니다.

KakaoTalk_20240812_071432981.jpg 강원도 양양군 서면 서림리 해담마을 체험장에서 윤이네와 함께

다시 곰배령으로 돌아와 친구를 맞이합니다. 지난 5월 찾아왔던 윤이네 가족인데요. 이번엔 중학생 오빠는 못 오고 윤이와 윤이 엄빠 이렇게 셋이 왔습니다. 설피마을에서 양양 쪽으로 산을 내려가면 해담마을이 나오는데요. 여기가 숨겨진 체험 맛집입니다. 수륙양용차를 타고, 뗏목도 타고, 물놀이를 하면서 해가 저물도록 놀았습니다. 다음날엔 곰배령 등산을 했는데요. 윤이는 크록스를 신고 왔고, 윤이엄마는 거의 슬리퍼라고 할 수 있는 샌들을 신었음에도 기어이 곰배령 정상에 오르고 말았습니다. 참 대단합니다. 마을 앞을 흐르는 방태천 계곡에 가서 족대를 들고 어류 탐사도 했습니다. 윤이 아빠는 시골청년의 기억을 살려서 족대 신공을 펼쳤죠. 너무너무 재밌게 논 윤이네는 가을에도 또 올까 말까 했는데. 약속을 한 건 아니라서 또 올진 확실지 않습니다.

KakaoTalk_20240812_071830290.jpg 오대산 월정사 전나무숲길에서 만난 다람쥐. 개냥이 마냥 사람을 피하지 않아서 개람쥐라고 부릅니다.

경진이와 경진아빠는 오대산 월정사로 넘어갔습니다. 곰배령에 올라가면 오대산이 보이는데요. 경진이가 작년에 오대산 월정사에서 다람쥐를 손바닥에 올렸던 기억을 떠올렸습니다. 그래서 출발했죠. 차로 두 시간 가까이 걸리는데 멀긴 멀었지만 보람이 있었습니다. 오대산 월정사 전나무숲길에서 수많은 다람쥐를 만나 윤이네가 남기고 간 땅콩을 대신 전해줬고요. 땅콩을 먹는 다람쥐 주변을 얼쩡거리던 곤줄박이가 경진이 손바닥으로 내려앉아 땅콩을 가져가는 놀라운 일도 일어났습니다. 경진이가 땅콩을 올린 채 손을 펼치고 있으면 곤줄박이가 포르르 손바닥으로 내려와 땅콩을 가져갔습니다. 그것도 여러 번이요. 경진이는 이를 두고 '조그만 무게감'이 느껴진다고 말하더군요. 어린 시인입니다.

KakaoTalk_20240812_072031318.jpg 다람쥐를 따라다니면서 땅콩을 줍던 곤줄박이가 경진이 손 위로 날아왔습니다.

야생동물학교도 방학특강을 열었습니다. 대한민국 최고 야생동물전문가 한상훈 박사님과 함께 인제의 자랑인 비밀의정원을 탐방했는데요. 방학 중이라서 산골유학 가족들이 대거 불참하는 바람에 경진네를 포함해 두 팀이 호젓하게 수강을 했습니다. 덕분에 비밀의정원 구석구석 숨겨진 곳들을 누빌 수 있었는데요. 답둔리 3층석탑, 5층석탑, 동학 동경대전 간행소터 등 역사 유적들을 둘러보면서 야생동물의 흔적을 찾았습니다. 진흙에 찍힌 고라니와 노루 발자국을 보고, 오소리와 멧돼지가 먹이를 찾기 위해 파헤친 흔적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두더지가 지나간 흔적도 볼 수 있었고요. 대륙유혈목이, 산개구리, 무당개구리를 만났고, 박사님이 설치해 놓은 포획틀에 들어간 등줄쥐와 한국들쥐를 관찰하는 기회도 가졌습니다.

한상훈 박사님이 포획한 한국들쥐입니다.

어제는 마침 페르세우스 유성우가 펼쳐진 밤이라 큰맘 먹고 밤나들이를 나갔습니다. 이상하게 저는 유성을 많이 목격했는데, 꼬맹이는 그때마다 목을 풀거나 다른 데를 보고 있어서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속이 상한 꼬맹이는 하늘은 아빠 편만 들어준다고 울먹이네요. 그러다가 제가 보지 못한 별똥별을 하나 관찰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하늘에 뿌연 구름처럼 펼쳐진 은하수를 보고요. 돌아오는 길에 숙소 앞 비탈길을 오르는 사슴벌레 몇 마리를 관찰할 수도 있었습니다. 가로등에 몰려드는 벌레를 잡으려고 날아다니는 박쥐를 만나고, 밝은 빛을 내는 반딧불이가 한 마리 날아가는 것도 볼 수 있었습니다.


아름다운 설피마을, 아름다운 여름방학입니다. 이제 한 주 남았는데요. 이번 주는 충북 진천에서 열리는 수달대회에 참석합니다. 나중에 소식 전해드릴게요. 방학 숙제를 해치워야 할 텐데, 징징대지 않고 잘 해결할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립니다. 또 만나요 여러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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