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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정수 Aug 29. 2024

살'오'자 될 뻔했던 이야기

생태유학 40. 조침령 옛길을 가다

아아아악!!!! 나도 모르게 비명이 터져 나왔다. 차를 몰고 가는데 길 옆에서 희고 길쭉한 동물이 튀어나와 차로 달려드는 거다. 크게 핸들을 돌리며 속도를 줄였다. 사고가 나지 않는 한에서 최선의 회피기동이었다. 숙소에서 나와 외길을 지난 뒤, 막 교차로를 넘어 왕복 2차선 도로로 올라가던 중이었다. 


마을 선생님 역할을 맡아주시는 그린나래 펜션 사장님이 생태유학 아이들에게 조침령 옛길을 보여주겠노라고 하셔서 세 집 아이들 5명과 보호자 3명, 마을 선생님까지 모두 8명이 차량 3대에 나눠 타고 숙소를 빠져나오는 길이었다. 마을 선생님, 쌍둥이네 할머니, 딸아이를 태우고 선두로 출발한 나는 출발한 지 1분 만에 위기 상황에 빠진다.


급정거를 하고 옆거울을 통해 살피니 털뭉치 네발짐승이 쓰러져있다. 내가 차에서 내리자 호기심 많은 아이들이 잇따라 차에서 내렸다. 아이들이 털뭉치에게 다가가고 있었다. 털뭉치는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며칠 전 창문에 부딪혀 별나라로 떠난 큰유리새의 모습과 겹쳤다. 아이들에게 끔찍한 장면을 보여주고 싶지 않아 차로 돌아가라고 소리를 쳤다. 호기심 많은 아이들은 쭈뼛쭈뼛 각자의 차로 돌아갔다.

오소리는 이렇게 생겼습니다. 출처:국립생태원 블로그

그날따라 딸아이는 뱀집게를 들고 설쳤다. 출발하기 전 뱀이 나오면 그걸로 잡겠다고 하면서 뱀집게를 차에 실어놨다. 나는 뱀집게를 집어 들고 털뭉치에게 향했다. 가쁜 숨을 쉬고 있었다. 배가 볼록볼록 하는 걸로 봐서 아직 죽지는 않았다. 코에서 피가 나고 있었다. 힘겹게 숨을 쉴 때마다 콧물 거품처럼 코피 방울이 맺혔다 터졌다. 출혈이 아주 심하지는 않았지만 코피는 예후가 좋지 않다는 걸 알고 있다. 뇌의 부상과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일단 뱀집게로 꼬리를 잡아서 길가 풀 숲 위로 옮겼다.


운전석에서 언뜻 봤을 때는 길고 납작해서 담비 또는 족제비인줄 알았다. 그런데 내려와 보니 얼굴에 흰 줄무늬가 선명한 오소리였다. 숨 쉬고 있는 볼록볼록한 배에는 새끼를 물렸을 젖이 선명하게 보였다. 충격에서 회복해서 다시 산으로 올라가기를 바라면서 다시 차에 올랐다. 이미 차 안은 딸아이가 만들어 놓은 울음바다다. 놀랐을 탑승객들에게 간략히 상황을 설명하고 다시 출발했다.

출처: 산림청 백두대간 홈페이지

양양 서면과 인제 기린면을 잇는 조침령. 나는 새도 하룻밤 머물고 간다는 의미의 鳥寢嶺이다. 조침령 터널이 뚫리기 전에는 구불구불한 비포장길을 걸어서 넘었다고 한다. 4륜구동 차량도 통행했다고 하고. 진동삼거리에 차를 세워놓고 옛길을 따라 걸어 올라갔다. 비교적 새로 난 타이어 자국이 있다. 마을 선생님은 오프로드 동호회 등이 차를 몰고 들어오기도 한다고 말씀하셨다. 조침령은 백두대간에 위치한다. 설악산 끝자락인 점봉산-곰배령에서 구룡령을 넘어 오대산 자락으로 이어지는 중간 지점이다. 백두대간 9구간(구룡령~점봉산~한계령)으로 대표 동물은 산양, 대표 식물은 모데미풀.


숱하게 들었지만 실물을 보지 못했던 머루와 다래를 직접 따서 먹어보기도 하고, 보라금풍뎅이, 홍단딱정벌레를 만나기도 했다. 조침령 정상에서 훈련을 하고 있는 군인들도 만날 수 있었다. 정상 전망대에서 양양 해담마을을 내려다보면서 고개를 넘는 시원한 산바람을 느끼며 맛나게 간식도 나눠먹었다. 그렇지만 나와 딸아이의 신경은 온통 오소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아빠 오소리를 일어나서 갔겠지? 오소리가 죽지는 않았겠지? 죽었으면 어떡하지?" 아이의 눈이 또 그렁그렁해진다.


"죽었으면 땅 파서 묻어줘야지." 덤덤하게 말은 했지만 사실 나도 정말 정말 오소리가 죽지 않기를 바랐다. 2호차에 탑승했던 겸엘 어머님이 딸아이를 위로한다. "내가 바로 뒤에서 봤는데, 죽을 정도로 부딪치지 않았다. 살짝 부딪쳐서 기절한 거야. 그냥 코피만 조금 난 거고..." 나도 정말 그러기를 바랐다. 아이는 겸엘 어머님의 말에 위로가 됐는지 조침령 옛길 트래킹 동안 평온을 되찾았다. 고맙습니다 겸엘 어머님. 

생태유학 어린이들 조침령 옛길에서 포즈.


고개를 내려와 오소리를 놔뒀던 곳으로 직행했다.  딸아이와 나는 "제발 없어라. 제발 없어라"를 외치면서 길가를 살폈다. 야생동물을 관찰하면서 "제발 없어라"라고 말하기는 처음이었지만, 정말 간절한 마음으로 외치고 있었다. 그런데 웬걸... 


오소리가 정말로 없었다. 원래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는 습성이 있는 나로서는 당연히 죽었을 줄 알았던 오소리가 어디에도 없는 거였다. 아이는 만세를 불렀고, 나도 한숨을 쓸어내릴 수 있었다. 그 오소리가 사체로 발견됐다면 정말 마음이 무거웠을 거다. 삽을 가져다 땅을 파고 그 옆에서 아이가 엉엉 우는 모습은 정말 상상하기도 싫다.


여기서 정말 중요한 교훈 하나를 얻었다. 로드킬이 발생했을 때, 즉 내가 차를 운전하고 가다가 야생동물을 치였을 때 과연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아직 정립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그래서 정보를 찾아봤는데, 국립생태원에 유용한 정보가 있어 가져와 본다. 


로드킬 예방하기

1. 인적이 드문 국도나 산길을 운전할 때 과속하지 않고 방어운전 하기

2. 로드킬 빈발 구간에서는 저속주행하며 운전에 집중하기

3. 야생동물을 발견 시 속도를 줄인 후 전조등을 끄고 경음기를 살살 울리기

4. 부득이 피할 수 없는 경우 급브레이크 등 급조작하지 않기

5. 야행성 야생동물의 활동이 활발한 밤 11시부터 새벽 3시에는 더욱 주의하며 운전하기

6. 한적한 심야에 운전할 경우 상대방 운전에 피해가 가지 않는 한 상향등을 켜서 멀리까지 내다보며 방어운전 하기

7. 야간에는 도로 가에서 동물이 튀어나오는 경우가 많으므로 되도록 중앙선 가까이 운전하는 것이 상대적으로 안전한 주행방법

 

로드킬 발생 시 대처요령

기본 대처 방안

1. 대응하기 전 운전자의 안전을 최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2. 다른 차의 통행에 방해되지 않도록 길 가장자리나 공터 등의 안전지대에 정차시킨 후 엔진을 정지한다.
3. 비상등을 켜고, 갓길에 정차한 후 사고 발생지점 100m 후방에 안전삼각대나 경광봉, 불꽃신호탄 등을 세워 후속사고를 막아야 한다.


야생동물이 살아있을 시 대처요령

1. 고속도로의 경우 운전자가 임의로 차 밖으로 내려서는 안 되므로 한국도로공사(1588-2504)로 연락한다. 고속도로 내의 발생위치는 고속도로 갓길이나 중앙분리대 위의 기점거리 표지판을 확인하여 정확한 위치를 알릴 수 있다.
2. 국도와 지방도의 경우 해당 지자체 또는 야생동물구조관리센터에 신고한 후 도움을 받는다.
3. 소형동물의 경우에는 가급적 갓길이나 안전한 장소로 동물을 대피시키거나 상자 안에 넣어두는 것이 안전하다. 다친 야생동물과 접촉해야 할 경우에는 수건이나 담요 등으로 머리와 몸을 감싸 안정을 취하게 한 이후 다루는 것이 좋다.
4. 고라니나 노루, 멧돼지는 체중이 20㎏에 달해 위험할 수 있으므로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서 구조하는 것이 안전하다. 대형동물의 경우 한국도로공사(1588-2504)나 가까운 경찰관서/소방서에 연락하여 도움을 받는다.


야생동물 폐사 또는 폐사체 발견 시 대처요령

1. 고속도로 상에서는 폐사동물을 발견했을 때는 한국도로공사 1588-2504 콜센터로 연락한다. 이때 차량방향, 위치(기점거리 표지판을 이용) 등을 알려주면 보다 정확한 대응이 가능하다.
2. 일반국도나 지방도의 경우 운전자가 직접 대처할 수도 있습니다. 운전자의 안전을 완벽하게 도모한 이후 사체를 갓길이나 안전한 장소로 끌어내면 된다. 필요에 따라 각 국도관리사무소나 해당 지자체에 연락하여 도움을 받을 수 있다.
3. 일반적으로 폐사한 야생동물은 야생동물구조관리센터에서 신고받지 않는다.


곰배령 설피마을에서 로드킬이 발생했을 때는 

033-460-4468(인제군청 환경보호과 야생동물담당)

033-128(강원도 환경신문고)

033-250-7504(강원도야생동물구조관리센터=강원대 수의과대학)


차에다가 수건, 담요, 이동장 또는 상자 등을 준비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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