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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정수 Aug 24. 2024

새가 '쾅' 날아온 아침

생태유학 39. 생명의 소중함을 배우는 하루

토요일 아침. 언제나 그렇듯 아이는 자고 나는 새벽에 깼다. 일찍 일어난 김에 텃밭에 물을 줬다. 어제 심은 배추 모종이 아직 활착 하지는 못한 듯했다. 씨앗을 뿌려놓은 나팔꽃은 어느새 매어놓은 빨간 끈을 타고 오른다. 몇몇은 보라색 꽃을 피웠다. 글을 쓸까 싶어 노트북을 펼치려는 순간 쿵 하는 소리가 들린다. 무언가 거실 유리창에 부딪히는 소리다. 그 순간 직감했다. 새 한 마리가 새의 별로 날아간 순간이다. 즉시 밖으로 나가봤더니 아니나 다를까 작은 새 한 마리가 창문 밑 자갈 바닥에 떨어졌다. 유리창에 부딪친 충격으로 목이 부러진 것 같았다. 마지막 숨을 내뱉으며 온몸을 푸르르 떨었다. 

새가 거실 창문에 쿵 부딪혀 떨어졌다. 새들의 별나라로 떠났다.

어떻게 구해줘야 할까 별별 생각이 짧은 시간 동안 스쳐간다. 일전에 산양을 만나러 다녀왔던 인제군 북면 국립공원야생생물원으로 데려다줘야 하나. 심폐소생술을 해줘야 하나. 내가 수의사였다면 어떻게 했을까... 이런 생각들이 꼬리를 무는 동안 새는 별나라로 떠났다. 창문에는 충돌 흔적이 남았다. 죽음에 민감한 딸아이가 보면 엉엉 울 게 틀림없다. 일단 창문에 흔적부터 지웠다. 그리고는 다락에서 거실창문을 덮는 대형 방충망을 꺼내왔다. '이걸 붙여놨으면 그 새는 죽지 않았을 텐데...' 하는 후회가 밀려왔다.


생태유학 보호자로 산골에 깃든 뒤 가장 좋았던 점은 거실 창 너머로 파란 하늘과 초록 숲, 하얀 구름이 산을 넘는 그림 같은 장면을 볼 수 있는 거였다. 그런데 생태유학 숙소 리모델링을 하면서 창문 바깥을 거대한 방충망으로 막는 공사가 시행됐다. 기존에 있는 창문 형태의 방충망에 새로운 방충망까지 이중으로 앞을 막으면 시야가 굉장히 흐렸다. 산골유학 초기 딸아이와 나는 탐조에 열을 올리는 시기였다. 유리창도 말끔히 닦아 놓고 버드피더(새 모이대)를 설치해 새가 날아오기 만을 기다리는 시절이었다. 때문에 새로 설치한 창틀을 완전히 덮는 거대 방충망은 임의로 제거했다. 새를 볼 때는 방충망 창문을 한쪽으로 밀어놓고 유리문만 닫아 놓은 채로 새를 기다렸다. 이게 일을 벌인 거다.


생태유학 숙소의 거실창은 가장 안쪽이 불투명 시트지가 덧댄 상태다. 그리고 바깥쪽 유리창이 있는 이중창 구조다. 아침에 일어나 환기를 한다고 유리창은 왼쪽으로 다 몰아놓고 오른쪽은 방충망만 닫혀있도록 열어놨다. 따라서 왼쪽에는 시트지가 붙은 불투명 유리창 2겹과 약간 푸른색 선팅이 들어가 있는 유리창 2겹, 모두 4겹의 유리창이 몰려있는 상태였다. 그런데 새가 그 유리창으로 돌진한 거다. 새가 떨어져 있는 곳은 충돌흔적이 남아있는 곳에서 왼쪽으로 2미터 정도 거리가 있었다.

유리창과 부딪히면서 새가 남긴 마지막 흔적

추정컨대 무엇을 쫓거나 무언가에 쫓긴 새가 창문 정면이 아닌 비스듬한 방향에서 날아오다가 유리창을 인지하지 못하고 부딪히면서 바로 아래로 떨어지지 않고 진행방향으로 튕겨 나간 게 아닌가 싶다. 새를 원망할 생각은 전혀 없다. 유학센터가 거기에 먼저 있었던 것만큼, 새가 유리창에 부딪히는 것도 수긍할 수 있는 일이니까 말이다. 죽은 새에게 미안한 마음이 굉장히 들었다. 이 희생을 헛되게 하지 않기 위한 방법은 무얼까... 내린 결론은 방충망으로 창 전체를 덮어버리는 것이다. 클리어 뷰를 포기하는 대가로 새의 충돌을 방지할 수 있다면 그걸로 됐다. 방충망을 씌워 놓으니 앞쪽은 물론 비스듬한 각도에서 날아와도 막혀있는 곳이라는 확실할 것처럼 보였다.   


아뿔싸 방충망을 친다고 들썩거리고 쿵쿵댔더니 딸내미가 깼다. 졸린 눈을 비비며 뭐 하냐고 묻는다. 이런이런... 사실대로 말하는 수밖에... 아직 처리하지 않은 새의 사체를 발견했다. 벌써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하다. 어르고 달래서 새를 묻어주기로 했다. 호미와 꽃삽으로 땅을 파서 새를 묻어주는데 아이는 오열하기 시작했다. "미안해. 미안해~~" 사실 딸아이가 새에게 미안할 건 별로 없어 보인다. 아이가 생태유학을 와서 산골에서 살기 때문에 내가 따라왔고, 내가 방충망을 설치하지 않은 창문에 새가 날아와 부딪힌 것이다. 아이의 탓은 별로 없어 보인다. 그렇지만 아이는 두 시간 삼십 분 정도 침울했다.


인간이 자연의 영역을 침범해 집을 짓고 유리창을 달아놓아서 새가 부딪히게 했다. 새 입장에선 그렇게 볼 수 있다. 그렇다면 미안하다. 백배 사죄한다. 너의 죽음 헛되이 하지 않도록 수를 내볼게. 미안하다. 

창틀 전체를 덮는 방충망을 달았다. 이걸로 새의 충돌을 방지할 수 있다고 한다. 그렇기를 바란다.

야생조류 유리창 충돌로 고민하시는 분들께 유익한 글을 소개합니다.

[기고] 야생조류 죽음의 블랙홀,유리창―김영준 수의사


국립생태원에서 펴낸 책자도 나와 있습니다.

<<야생조류 유리창 충돌>>

https://www.yes24.com/Product/Goods/124186202


야생조류가 유리창에 부딪치지 않게 하는 다양한 방법이 있다고 한다. 자외선 반사 필름이나 타공필름, 하다못해 커튼을 제대로만 쳐두어도 가치가 있다. 모기장이나 그물망 등을 달아두어도 좋다. 도로 옆 투명 방음벽에 붙여놓은 맹금류 스티커는 별로 효과가 없다고 한다. 아크릴 물감을 이용해 지름 5mm 이상 크기의 점을 5cm 이내의 간격으로 찍어놓으면 새가 빠져나가지 못할 곳으로 인식하고 회피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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