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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정수 Sep 06. 2024

전화할 수 있으면 경증환자?

[팩트체크] 응급의료 잘 돌아가고 있나?

1. 오늘 팩트체크는 주제는 <전화할 수 있으면 경증환자?>입니다어떻게 나온 말인지부터 좀 알아봐야 할 것 같은데요.

- 박민수 보건복지부 2 차관이 지난 4일 라디오 인터뷰에 나와서 한 발언입니다. 경증환자가 대형병원 응급실을 이용할 경우 본인 부담금을 60%에서 90%로 인상하는 방안에 대한 질문이 있었는데요. 진행자가 "당장 아픈 상황에서 내가 경증인지 중증인지 환자나 보호자가 어떻게 판단할 수 있냐"는 취지로 질문을 했습니다. 그러자 박 차관은 "본인이 전화를 해서 알아볼 수 있는 상황이라고 하는 것 자체가 사실은 경증이라고 이해를 하시면 된다"라고 답했습니다. 그리고 중증이라는 거는 거의 의식이 불명이거나 본인이 스스로 뭘 할 수 없는 마비 상태에 있거나 이런 경우들이 대다수이고, 그렇지 않은 경우 보통 열이 많이 나거나 배가 갑자기 아프거나 이런 것들이 경증에 해당되는 거고 어디가 찢어져서 피가 많이 난다 이런 것도 사실은 경증에 해당되는 거다. 이렇게 말하기도 했고요.


2. 팩트체크 해보죠스스로 전화해서 알아볼 수 있는 상황이면 경증환자다사실입니까?

- 사실과 다릅니다. 박 차관의 발언과 관련해서 의료계의 굉장한 반발이 있었는데요. 대한의사협회는 당일 오후 보도자료를 통해 "응급실을 찾은 환자들이 처음에는 경증으로 진단받았다가 추가 검사가 진행되면서 중증으로 밝혀지는 경우가 적지 않고, 그 반대도 마찬가지"라며 "의사들도 (경중증) 구분이 어려워 수많은 임상경험과 공부를 통해 판별하는데 전화를 할 수 있다는 것이 경증이면 의사들은 레드 플래그 사인(위험신호)은 왜 공부한 것인가"라고 지적했습니다. 이어 "이런 말을 공식적으로 하는 사람이 우리나라 보건의료정책과 제도를 수립하고 운영하는 정책실무 책임자라는 것이 믿을 수 없다"라며 "이런 인식 수준의 차관이 대통령에게 잘못된 보고를 하니, 대통령이 현 상황을 '원활하다'며 태평하게 보는 게 이상하지 않은 것"이라고 비판했습니다. 

반발이 커지자 박 차관은 브리핑 질의응답을 통해 "기저질환이 있거나 고위험 상태인 상태에서 증상이 악화되면 중증일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의식이 있다. 그래서 다 경증이다, 이런 것은 아니고요. 일반화해서 말씀드렸던 것이고, 개인이 판단하기 어렵습니다."라고 정정했습니다.

일단 박 차관 스스로 문제의 발언을 철회했다는 걸 분명히 밝혀두고요. 아무리 의사 출신이 아니라지만 기본적인 걸 모르는 것도 문제고요. 모르면 모른다고 이야기하고 양해를 구해야 할 것을 알지도 못하는 상태로 이야기를 해서 혼선을 빚은 건 더 큰 문제입니다.     


3. 그럼 응급실에서 경증과 중증을 나누는 기준은 무엇인가요?

- 밤에 아파보신 분들은 아마 아실 겁니다. 나는 참다가 참다가 더는 못 참겠어서 밤에 병원 응급실에 갔단 말이죠. 그런데 의사가 판단하기에 <이 환자는 응급환자에 해당되지 않는다> 면 진료 순위가 밀리는 겁니다. 응급실에선 KTAS라고 부르는 한국형 응급환자 분류도구를 이용해 환자의 위급도를 판별합니다. 가장 위중한 1단계부터 비응급에 해당하는 5단계까지로 나누는데요. 1단계는 심장마비, 무호흡, 음주와 관련되지 않은 무의식, 2단계는 심근경색, 뇌졸중, 뇌경색, 3단계는 호흡곤란, 출혈을 동반하는 설사, 4단계는 38도 이상의 발열을 동반한 장염, 복통을 동반한 요로감염, 5단계는 감기, 장염, 설사, 열상 등의 상처가 대표적인 증상으로 꼽을 수 있습니다.

응급실에선 이 KTAS를 기준으로 위급도를 판단해 위급한 환자 먼저 진료를 합니다. 스스로 전화를 해서 찾아왔느냐는 위급도 분류의 기준에 들어있지 않습니다. 가뜩이나 응급실에 의사가 부족한 상황이라서 경증 환자가 응급실로 찾아가면 응급의료 역량이 더 많이 소진될 우려가 큰 건 사실입니다. 정부는 이 KTAS 기준 4등급과 5등급에 해당하는 환자가 응급실을 이용할 경우 본인 부담금을 60%에서 90%로 높이는 방안을 시행할 방침입니다.     


4. 법으로 정해져 있는 응급환자 정의도 있다면서요

- 응급의료법이 정하는 응급환자의 정의입니다. <“응급환자”란 질병, 분만, 각종 사고 및 재해로 인한 부상이나 그 밖의 위급한 상태로 인해 즉시 필요한 응급처치를 받지 않으면 생명을 보존할 수 없거나 심신에 중대한 위해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는 환자, 또는 이에 준하는 사람으로서 보건복지부령으로 정하는 사람을 말한다.> 이렇게 돼 있습니다. 보건복지부령에는 여러 가지 응급 증상을 나열하고 있는데요.  

응급증상은 가. 신경학적 응급증상 : 급성의식장애, 급성신경학적 이상, 구토·의식장애 등의 증상이 있는 두부 손상

 나. 심혈관계 응급증상 : 심폐소생술이 필요한 증상, 급성호흡곤란, 심장질환으로 인한 급성 흉통, 심계항진, 박동이상 및 쇼크

 다. 중독 및 대사장애 : 심한 탈수, 약물·알코올 또는 기타 물질의 과다복용이나 중독, 급성대사장애(간부전·신부전·당뇨병 등)

 라. 외과적 응급증상 : 개복술을 요하는 급성복증(급성복막염·장폐색증·급성췌장염 등 중한 경우에 한함), 광범위한 화상(외부신체 표면적의 18% 이상), 관통상, 개방성·다발성 골절 또는 대퇴부 척추의 골절, 사지를 절단할 우려가 있는 혈관 손상, 전신마취하에 응급수술을 요하는 중상, 다발성 외상이 있고요.

이밖에 지혈이 안 되는 출혈, 화학물질에 의한 눈 손상 등 안과적 응급증상, 알레르기, 소아경련성 장애, 자신 또는 다른 사람을 해할 우려가 있는 정신장애 등이 포함됩니다. 역시나 본인이 전화를 할 정도인지 하고는 전혀 상관이 없습니다. 


5. 응급의료가 붕괴 수준이라는 비판도 많이 나오고 있고요받아주는 응급실이 없어서 환자가 목숨을 잃었다이런 보도들이 이어지고 있거든요왜 응급실에서 환자를 안 받아주죠?

- 의사가 없는 게 가장 큰 이유입니다. 아시다시피 의대 정원 확대 정책에 반발한 전공의들이 집단 사직을 한지가 6개월이 됐고요. 응급실에서도 많은 의료 인력이 빠져나가면서 환자를 돌볼 여건이 안 되는 것이죠. 원래 응급실 근무조 의사는 전문의 1~2명을 포함해 5~6명으로 짜였는데요. 전공의 집단사직 이후 이 숫자가 2명 정도로 줄었습니다. 응급의학 전문의 한 사람이 12시간 동안 혼자서 밀려드는 환자를 도맡아야 하는 겁니다.

응급실을 담당하는 의사도 줄었지만 배후 진료 인력이 없는 것도 문제입니다. 수술이 필요한 응급환자가 응급실에 들어오면 응급실에서 응급처치와 진단을 내리고 추가 처치가 필요한 담당과로 연결을 하게 되는데요. 지난 2일 부산 공사현장에서 70대 노동자가 A 씨가 2층에서 떨어지는 사고가 있었습니다. 119 구조대가 출동해 10분 동안 인근 병원 응급실에 문의를 했지만 이송이 거절됐고요. 한 병원과 연결이 돼 신고 접수 1시간 12분 만에 응급실에 도착을 했습니다. 척추 골절 진단을 받았는데요. 그 병원에서 수술을 집도할 의료진이 없어서 수술이 가능한 다른 병원을 알아보는 도중 A 씨가 숨을 거뒀다고 합니다.     


6. 조금 있으면 추석이 다가오는데요일반 병원들이 휴무에 들어가는 연휴기간 동안 혹시 아프면 어떻게 해야 하나 걱정하시는 분들이 많아요.

- 일단 아프지 않게 잘 관리하시는 게 좋을 것 같고요. 만성질환이 있으신 분이라든지, 연휴 들어가기 전에 아프기 시작하는 분들은 동네 의원이 휴진에 들어가기 전에 진료를 받고 처방을 받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연휴 기간 중에 몸이 아파서 병원에 가야 할 일이 있다면 검색창에 <명절 연휴 병원>이라고 검색을 하시면 제일 위쪽에 응급의료포털의 <명절 연휴 병의원 약국 비상진료 검색>이 나오는데요. 이걸 클릭해서 들어간 다음에 사는 곳 주변의 의료기관을 검색해 보면 연휴기간에 문을 여는 의료기관을 찾을 수 있습니다.

당번 의료기관이 문을 닫는 야간에는 129 또는 119로 전화하셔서 상담을 요청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워낙 응급실 인력 부족이 오래되고 심각해져서 중증환자가 아니면 응급실에서 받아주지 않거나 응급실에 간다고 해도 굉장히 오래 기다리기 쉽습니다.

 

7. 정부 대책은 어떻습니까

정부는 오는 11일부터 25일까지 2주를 '추석명절 비상응급 대응주간'으로 지정했습니다. 또 각 지자체장을 반장으로 한 '비상의료 관리상황반'을 설치·운영하고 전국 응급의료기관 409곳에 일대일 전담 책임관을 지정해 특이 사항에 즉각 대응한다는 계획을 발표했습니다.

그런데 응급의료 현장은 "문만 열어두면 더 위험하다. 복지부가 집중적으로 관리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라고 말합니다. 응급실을 열어두는 것만으로는 무의미하다는 주장인데요. 환자에게 최종 진료까지 이뤄져야 할 필수의료 분야의 '배후 진료'가 원활하지 않고서는 응급실 운영이 의미가 없다는 뜻입니다. 응급실에 환자를 아무리 받아봐야 수술을 할 의료진이 없으면 생명을 구할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하죠.

정부는 오는 9일까지 군의관과 공중보건의사 250명을 응급의료 현장에 투입할 계획입니다. 이들을 보내서 응급의료 공백을 줄이겠다는 취지인데요. 현장에선 부정적인 반응이 나오고 있습니다. 250명 가운데 응급의학과 전문의는 8명밖에 되지 않아 실제로 응급실을 운영하는데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이대목동병원 등 일부 병원들은 파견된 군의관이 응급실 근무에 적합하지 않다고 판단해 돌려보내는 사례도 발생하고 있습니다.

구급차를 타고 받아주는 응급실을 찾지 못해 헤매다가 응급환자가 목숨을 잃는 사례들이 계속 보도가 되고, 현장 의료진들도 한계 상황을 이미 넘었다는 이야기가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얼마 전 대통령도 응급실 현장 방문을 했지만 현재 대한민국의 응급의료가 잘 돌아가는 게 아니라는 것, 시급한 대책이 필요하다는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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