갠 줄 알았잖아... 한국의 여우

소백산엔 붉은여우가 살고 있다.

by 선정수


여우가 살고 있다고?

우리나라에 여우가 살고 있다고 하면 많은 이들이 쉽게 믿지 못한다. 일제강점기와 6.25, 개발연대를 지나면서 한반도 남쪽에서 굵직한 육식동물들이 멸종하거나 멸종에 가까운 상태에 놓였기 때문이다. 정부의 멸종위기종복원사업이 진행되면서 많이 주목받은 반달가슴곰을 빼면 호랑이, 표범, 늑대, 스라소니 등 이 땅의 자연을 주름잡았던 동물들은 발견 소식이 끊어진 지 오래다. 자연스레 사람들은 이런 맹수들은 이야기 속에만 살고 있는 거라고 생각하게 됐다.


우리나라에 살고 있는 여우는 'Vulpes vulpes peculiosa'라는 학명을 갖고 있다. '붉은여우'라고 불리기도 하는데 털색이 전체적으로 붉은빛을 띠기 때문이다. 민가 주변이나 저지대 산기슭에서 흔하게 볼 수 있던 여우는 1960년대 쥐 잡기 운동의 2차 중독에 의한 피해, 무분별한 포획에 의해 개체수가 급격히 감소했다. 쥐약을 먹고 죽은 쥐의 사체를 여우가 먹으면서 쥐약의 강한 독성으로 인해 여우까지 죽게 만든 것이다. 풍성하고 보드라운 털가죽을 노린 인간의 탐욕도 여우 멸종을 부추겼다. 이런 이유로 한반도 남쪽의 여우는 1980년대 이후 자연에서 멸종된 것으로 판단된다.

여우_환경부_블로그.jpg 소백산에 풀린 여우 ©환경부 블로그

복원 노력

정부는 2009년 야생여우 복원사업에 착수했다. 중국 동북부 지역에서 한반도에 살았던 것과 같은 종인 '붉은여우'를 도입해 개체수를 늘린 뒤 자연에 풀어주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그 결과 현재 소백산을 중심으로 전국에 서식하고 있는 여우는 야생에서 태어난 2세대 21마리를 포함해 총 120여 마리로 추산된다.

환경부 국립공원공단은 "소백산 일원에서 방사된 개체가 자연에서 새끼를 낳고 영역을 점점 확대하는 것을 보면 머지않아 소백산에도 안정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개체군이 형성될 것이라고 낙관하고 있다. 여우가 안정적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지역사회와 함께하고, 여우 복원사업이 지역사회의 경제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라고 밝혔다.


힘든 여우의 삶

야생의 삶은 힘겹다. 원래 야생의 삶이란 자연에 대한 투쟁이라 힘겹지만, 야생동물은 인간, 그리고 인간에 의한 서식지 파괴와도 싸워야 하는 '핸디캡 매치'를 치르고 있다. 야생으로 돌아간 여우의 삶도 그다지 순탄치만은 않다.

국립공원공단은 자연에 여우를 풀어놓을 때 무선전파발신기를 채워놓는다. 자연에 잘 적응하는지, 얼마나 멀리까지 이동하는지 등을 파악하기 위해서다. 여태껏 추적한 결과로는 풀려난 여우들은 남쪽으로는 부산까지 북쪽으로는 휴전선 근처까지 이동하는 걸로 파악됐다.

그러나 해마다 덫(창애)이나 올무에 걸려 다치는 여우가 생긴다. 도로를 건너다가 차에 치여 죽는 경우도 있다. 개선충에 걸려 폐사하는 녀석들도 있다. 2014년부터 2023년까지 수거된 올무는 2204개, 덫(창애) 등은 98개에 이른다. 아직까지 야생동물을 밀렵하는 사람들이 여우의 생존을 크게 위협하고 있다.

여우_환경부_한겨레.png 굴 속에 모여있는 새끼 여우. ©환경부

희망은 있다

현재까지 산으로 돌아간 여우는 180마리, 그중 120마리 정도가 야생에서 살고 있다. 일부 개체는 야생에서 번식에 성공했다. 2023년 모니터링 결과 야생에서 새끼 20마리가 태어난 것으로 확인됐다.

혹시 모를 여우로 인한 주변 민가 피해를 사전에 방지하기 위해 울타리 설치 지원 등의 정책도 펼치고 있다. 여우 서식지 내 인근 지역주민 대상으로 '여우명예보호원'을 위촉해 여우와 인간 사이의 갈등을 예방하기도 한다. <여우가 숨겨놓고 몰래 먹는 복숭아> 등 여우를 이용한 지역특산물 브랜드 마케팅도 펼치고 있다.

이런 노력들이 결실을 맺어 야생에서 여우들이 제 자리를 찾아갔으면 한다.


keyword
이전 05화[야생동물 팩트체크] 개구리알 채집하면 처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