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품 업계의 치졸한 유산
1. 오늘 팩트체크는 <슈링크플레이션>에 대해 짚어봅니다. 일단 용어가 낯설 분들 계실 것 같은데요. 뜻부터 좀 알아보죠.
- 최근 몇 년 사이에 부쩍 많이 쓰는 말인데요. '줄어들다'를 뜻하는 영어 단어 shrink에 물가가 지속적으로 오르는 걸 의미하는 inflation을 합쳐서 만든 말입니다. 전반적인 물가상승 탓에 물건을 만드는 제조사가 제품 가격을 올리는 대신에 이전 가격에 팔면서 용량을 줄여버리는 행태를 꼬집는 말이 됐는데요. 원자재 가격이 오르면 상품가격을 올려야 적정 이윤을 거둘 수 있고 기업을 유지할 수 있잖아요. 그런데 이런저런 이유로 상품가격은 올리지 않고 제품 용량을 줄이는 걸 택한 거죠.
2. 어떤 이유가 있을까요? 눈속임 말고는 별로 떠오르는 게 없는데요.
- 사실 소비자를 기만하려는 의도가 가장 큰 건 사실로 보입니다. 제품 가격이 오르면 소비자들은 값이 싼 다른 제품을 선택하거나, 아니면 소비를 줄이는 방식으로 대응하니까, 제조사들은 가격을 유지하는 대신에 제품 용량을 줄이는 거죠.
그런데도 제조사들은 갖은 이유를 대면서 용량 줄이기를 합리화합니다. 보관 기간이 비교적 길고 1회 사용량이 적은 아로니아 분말 제품이 있었는데요. 용량을 줄이면서 25% 줄이면서 "용기 사이즈를 조정해 산패율을 낮췄어요. 더 귀여워진 새로운 용기를 만나보세요"라고 적어놨습니다. 정작 제품 용량이 줄었다는 내용은 알리지 않았고요. 초콜릿 제품의 경우는 제품 중량을 14% 줄여놓고 원재료 시세 급상승을 탓하면서 '가격 인상 대신 일부 품목 중량 조정을 선택했다'라고 밝혔습니다. 관련 고시에 따르면 상품 용량 등이 변경되는 경우 변경 전 사항과 변경 이후 사항을 소비자에게 알리도록 돼 있는데, 지키지 않은 거죠.
3. 최근에는 치킨 양이 줄었다고 해서 논란이 됐었죠?
- 우리나라는 전체 닭고기 공급량의 20% 정도를 브라질에서 수입하고 있습니다. 지난 5월 브라질 한 지역에서 고병원성 조류 인플루엔자가 발병하면서 브라질산 닭고기 전체에 대해 수입 금지 조치가 내려졌습니다. 이후 닭고기 가격이 들썩이자 정부는 한 달 뒤에 조류인플루엔자가 발병하지 않은 브라질 내 다른 지역의 닭고기 수입을 재개했습니다. 이 와중에 치킨 프랜차이즈들이 가격을 올렸는데요. 교촌치킨은 닭다리살만 쓰던 순살치킨 메뉴에 닭가슴살을 섞고 중량도 줄여서 비판을 받고 있었던 터였죠. 그러자 소비자 반발이 심해졌고요. 국정감사장에 교촌치킨 대표가 불려 나와 질타를 당하고, 대통령실에서도 치킨 꼼수 가격 인상에 대한 지적이 나왔죠. 그러자 2개월 만에 중량과 원재료, 조리방법을 원상 복구하기도 했습니다.
4. 정부가 이런 슈링크플레이션에 대한 대책을 내놨는데요. 어떤 내용인지 살펴보죠.
- 그동안 정부는 가공식품 분야와 일상생활용품을 중심으로, 중량이 5% 넘게 줄어들었는데도 이를 소비자에게 알리지 않은 행위를 규제해 왔습니다. 적발 사례 대부분은 가공식품 분야에 집중됐다고 하는데요. 지난해부터 올해 3분기까지 제품 중량을 줄였는데 소비자에게 알리지 않다가 적발된 사례는 모두 63건에 이릅니다. 이 중 58건이 가공식품 분야였고요. 그런데 치킨은 외식업으로 분류돼 있어서 현행 규제 체계 바깥에 있었습니다. 소비자들이 중량 감소사실을 알 수 있게 하려면, 중량 표시 의무가 있어야 하는데, 현재 외식분야에는 중량표시제도가 시행되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신선재료를 조리해 소비자에게 판매하는 외식업계 특성상 중량 표시가 쉽지 않은 특성이 있기 때문인데요. 정부는 우선 최근 문제가 된 치킨업종에 대해 중량표시 의무를 부여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식약처는 오는 15일부터, 식품위생법 시행규칙 유권해석을 통해 치킨 중량표시제를 도입한다고 밝혔습니다. 치킨 전문점은 치킨의 ‘조리 전 총 중량’을 그램(g) 또는 ‘호’ 단위로, 메뉴판의 가격 옆에 표시하도록 했습니다. 소비자들이 온라인으로 주문하는 웹 페이지나 배달앱에도 같은 방법으로 표시해야 되고요. 다만 해당 의무는 모든 치킨전문점이 아니라, 10대 치킨 가맹본부 소속 가맹점(약 1만 2,560곳)에게만 부과된다고 합니다.
5. 같은 돈 내는데 치킨 양이 줄었다는 이야기는 더 이상 나오지 않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이 슈링크플레이션은 사실 하루 이틀 이야기는 아니잖아요?
- 그렇습니다. 옛날 신문기사를 한 번 찾아봤는데요. 1972년 5월 31일 자 조선일보는 <애주가들은 속고 있다>는 기사를 통해 술집이 손님을 속이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데요. 기사 첫 문장이 이렇습니다. <술꾼들이 속는 것은 주전자가 생산되고 도매상에서 팔리는 과정에서부터 시작한다. 남대문시장 A상회의 경우 10홉짜리와 8홉짜리 주전자를 모두 팔고 있는데 하루 8홉 들아가 40~50개 팔리는데 비해 10홉짜리는 20여 개 밖에 안 나간다>라고 적었습니다. 1973년 6월 21일 매일경제신문은 <감량 등으로 실질가 인상>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발행했는데요. 세탁비누 용량이 100g 줄고, 노트는 46쪽이었던 게 40쪽으로 줄었다는 내용을 담았습니다. 분유, 마가린 등 유제품은 종전과 마찬가지 제품에 신제품의 명분을 붙여 값을 올렸다고 지적했네요. 50년 전에 벌어졌던 일인데 지금도 크게 다르지는 않아 보입니다. 생맥주 집에서 '500 한 잔 주세요'라고 하잖아요. 그런데 이 500잔의 용량은 500cc가 아니라 430cc 정도에 불과하다는 내용이 크게 다뤄진 게 10년이 넘었죠. 그래도 아직 500잔이라는 용어가 습관적으로 쓰이죠.
6. 최근 들어 불거진 슈링크플레이션 사례는 뭐가 있을까요?
- 우유 사서 드시는 분들은 아실 텐데요. 우유 포장이 보통 200, 500, 1000 이런 식으로 구분이 되잖아요. 그런데 1000ml 우유를 찾아보기가 힘듭니다. 보통 길쭉한 키다리 우유팩에 들어있는 우유를 1리터 또는 1000ml 들이라고 생각하는데요. 옛날부터 그래왔고요. 그렇지만 요즘은 이 제품의 용량이 1000ml인 회사가 별로 없습니다. 남양유업 맛있는 우유 GT는 900ml, 매일유업 매일우유 오리지널 1A 930ml, 빙그레 굿모닝우유 900ml, 푸르밀 플래시 오리지널 우유 900ml, 서울우유 나 100% 제품은 1000ml였지만, A2+ 제품은 900ml였습니다.
이렇게 우유 용량이 줄어든 게 사실 7~8년 정도 전부터였거든요. 제조사들은 우유를 많이 먹지 않는 소비자 트렌드 변화에 발맞췄다. 이런 이야기들을 내놓긴 했는데 설득력이 없고요. 사실 원유 가격이 인상되면서 제품 가격을 올리지 않으려는 의도가 들어있는, 전형적인 슈링크플레이션 사례로 볼 수 있겠습니다. 물론 제품 포장에 표시는 하고 있지만 용량 줄일 때 제조사들이 "우리 제품 용량 줄였어요. 값은 그대로예요."라고 떠들지 않잖아요. 그래서 사람들의 인식과 달리 제품의 용량이 줄어드는 거죠. 나는 1000ml로 알고 사는데, 유심히 뜯어보면 900ml 상황이죠. 과자도 제품 중량은 줄어드는데 질소 충전해서 빵빵하게 만들어서 팔잖아요. 과자가 부서지지 말라고 충격을 흡수하기 위해서 질소를 충전한다고 하지만, 이미 질소 충전하지 않아도 잘 안 부서진다는 실험 결과들이 많이 있거든요. 소비자들이 식품회사에 더 솔직해지라고 많이 요구해야 할 것 같습니다.
7. 이게 사실 알고 사면 크게 기분 나쁘지는 않은데, 문제는 모르고 샀다가 나중에 집에 와서 보니 내가 생각한 용량이 아니었을 때 굉장히 기분이 나쁜 거잖아요.
- 얼마 전에 한 수산물 전문 유튜브 채널에 소개된 사연인데요. 소비자가 단골 횟집에 2kg짜리 참돔을 주문했는데 가서 받아본 횟감은 258g에 불과하더라는 내용이 알려지면서 많은 사람들이 분통을 터뜨렸습니다. 참돔은 머리가 큰 생선이라 회를 뜨면 중량이 적게 나오기는 하지만 그래도 전체 중량의 35% 정도는 나온다고 하는데요. 참돔 2kg짜리를 시켰으니 횟감이 700g 정도 나오겠구나. 이렇게 알고 있는데 300g도 안 나오니까 화가 나는 거죠. 결국 횟집 사장님이 사과하고 절반 가격 돌려주기로 했다고 하는데.
큰 회사들도 마찬가집니다. 순살치킨 2만 3000원짜리를 시키면 아 이 정도 오겠구나 하는 감이 있는데 중량 줄여버리면 소비자가 화를 내는 거죠. 이번에 정부는 치킨 프랜차이즈에 대해 조리 전 닭고기 중량을 그램 단위나 호 단위로 고지하라고 했는데요. 이것도 좀 불충분하다고 봅니다. 왜냐면 닭고기를 튀기면 지방과 수분이 빠져나가서 최종 단계의 무게가 줄어들거든요. 그런데 얼마나 빠져나가는지는 조리 시간과 조건에 따라서 다르죠. 이럴 거면 애초에 소비자가 직관적으로 알 수 있도록 표시 방법을 만들면 어땠을까 합니다. 순살치킨은 조리 후 무게를 기준으로 고지하고요. 순살치킨 500g 이런 식으로. 후라이드치킨은 원재료가 한 마리 또는 반 마리 단위로 투입되기 때문에 (조리 전 중량 951~1050g 10호 닭) 이런 식이면 더 좋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좀 더 소비자 친화적으로 제도가 개편됐으면 합니다. 치킨 말고도 외식업계 전반으로 중량표시 의무가 확대됐으면 하고요. 속이다 걸리면 망한다는 인식이 소비자와 제조·판매자 사이에 널리 퍼질 정도로 위반 행위에 대한 강력한 처벌이 필요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