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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어 배우면 뇌 건강?

다언어 사용과 노화지연언어 사용과 노화지연

by 선정수

1. 오늘 팩트체크는 <다언어 사용과 노화 지연>에 대해 짚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이번 주에 많은 언론들이 다국어 사용이 노화를 늦춘다는 기사를 보도했는데요. 업무에 필요해서, 또는 취미로, 치매를 예방하기 위해서 외국어를 배운다는 분들이 많은데, 이분들에게 희소식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관련 내용을 좀 알아보죠.

- 지난 10일 노화부문의 세계적인 과학잡지 '네이처 에이징'에 논문이 하나 게재됐습니다. 제목은 <다언어 사용이 가속노화를 예방- 유럽 27개국 횡단 및 종단 분석>인데요. 아일랜드 트리니티 칼리지 더블린 국제뇌건강연구소 아구스틴 이바녜즈 교수가 이끄는 국제 연구팀이 작성했고요. 유럽 27개국 8만 6천여 명의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다언어 사용과 가속 노화(accelerated ageing)의 위험 감소 간 연관성을 확인했다고 밝혔습니다.

2. 과학 논문은 언제나 어렵게 느껴진단 말이죠. 어떤 내용을 담고 있나요?

- 연구팀은 한 가지 언어만 사용하는 사람은 다언어 사용자보다 가속노화를 겪을 확률이 약 두 배 높았다고 밝혔습니다. 분석 결과 한 시점(횡단면분석)에서 다언어 사용자에게 가속노화가 일어날 위험은 단일 언어 사용자보다 약 54% 낮았으며, 시간이 흐르면서(종단분석) 가속노화가 생길 위험 역시 다언어 사용자가 30% 낮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반대로 이는 단일언어 사용자의 특정 시점 가속노화 위험이 다언어 사용자보다 약 2배, 일정 기간으로 볼 때도 43% 더 높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연구팀은 이는 여러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이 한 언어만 쓰는 사람보다 가속 노화를 겪을 위험이 약 절반 수준이라는 뜻이며 이 차이는 연령, 언어적·신체적·정치사회적 요인 등을 고려한 후에도 통계적으로 유의미하게 유지됐다고 설명했습니다.


3. 일부 언론에선 다언어 사용이 뇌 노화를 늦춘다는 식으로 보도했는데요. 제대로 짚은 건가요?

- 연구진은 유럽 27개국 8만 6천여 명의 설문 데이터를 분석해 실제 나이와 건강·생활 습관 기반으로 예측한 생체행동적 연령 사이의 차이를 뜻하는 생체행동적 연령 격차(biobehavioral age gap)라는 개념을 개발했습니다. 그리고 단일언어 또는 다언어 사용이 노화의 가속이나 지연에 미치는 영향을 측정한 건데요. 생체행동적 연령이 실제 나이보다 많으면 생물학적 노화가 빠른 가속노화, 적으면 천천히 늙는 지연노화로 간주했습니다. 설문 항목에는 긍정적 요인으로 기능적 능력과 교육, 인지 기능, 신체 활동, 행복감 등이 포함됐고, 부정적 요인으로는 심혈관 질환, 시각 청각 이상, 고혈압, 당뇨, 비만, 수면 장애 등이 포함됐습니다. 실제 나이는 65세인데 신체 움직임이 좋고 인지 기능이 뛰어나고 별다른 이상이 없다면 생체행동적 연령이 낮게 측정되는 방식이죠. 반대로 잘 안 움직이고 여러 가지 만성질환을 앓고 있다면 생체행동적 나이가 실제 나이보다 많게 측정되는 것이고요.

그런데 다양한 변수를 통제해서 산출해 보니 다언어를 사용할수록 실제 나이보다 생체행동적 연령이 낮게 측정되는 경향이 있다는 걸 밝혀낸 겁니다.


4. 그렇다면 '복수의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천천히 늙는다.' 이렇게 받아들이면 되겠네요. 여러 언론은 외국어 학습이 노화를 늦추는 방법이라고 보도하는데 맞는 걸까요?

- 이 연구에선 외국어 학습과 가속 노화의 상관관계를 직접적으로 밝히지는 않았습니다. 다른 통계를 이용해 유럽 27개 나라의 다언어 사용 비율을 추출하고, 이걸 국가 단위의 집합적 지표로 사용했다고 밝힙니다. 그러니까 실험 대상 개인이 몇 개의 언어를 구사하느냐를 따지지 않고, 그 사람이 살고 있는 나라는 몇 개 언어를 사용하는가를 적용한 것이죠. 따라서 외국어를 언제부터 배웠는지, 또는 얼마나 유창하게 구사하는지는 이 연구에서 측정되지 않았습니다. 논문 내용만 곧이곧대로 풀어본다면 "다양한 언어를 구사하는 나라에 사는 사람들의 노화 속도가 상대적으로 느린 것으로 나타났다" 정도가 됩니다.

연구진은 논문에서 "이번 연구 설계는 시간적 선후관계를 보여주지만, 인과관계를 확정하지는 않는다"라고 밝혔습니다. 다언어 사용이 노화를 지연시키는 직접적 원인인지, 또는 사회적·인지적 활동성과 같은 다른 요인과 결합한 결과인지는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는 겁니다.


5. 그렇지만 외국어 학습과 인지 능력의 연관성을 밝힌 연구 결과도 많이 있지 않나요?

- 논문은 마지막 부분에서 “이 결과가 세계 공중보건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라고 하면서 다언어 환경과 언어 학습을 건강한 노화를 촉진하는 사회적 개입으로 볼 수 있음을 시사합니다.

다른 여러 연구에서도 “외국어 학습은 인간의 뇌 구조를 변화시키는 신경가소적 경험”이라는 결과가 도출됐는데요. 다언어 사용이 건강한 노화와 인지 보존에 기여할 수 있다는 연구가 많습니다. 일각에선 인지 예비력이라는 개념도 사용하고 있는데요. 뇌에 손상이 일어나더라도 손상의 정도에 비해 인지기능 저하가 덜 나타나거나 더 늦게 나타나도록 돕는 능력을 말합니다. 높은 교육 수준, 복잡한 직업 활동, 사회적 활동, 인지적 취미 활동 등을 통해 축적된다고 하는데요. 인지 예비력이 높은 사람들은 손상된 부분을 우회하거나 대체하는 능력이 뛰어나기 때문에 치매와 같은 임상 증상이 훨씬 늦게 나타나는 걸로 알려졌습니다. 외국어 학습은 뇌를 지속적으로 자극하기 때문에 이런 인지 예비력을 높이는 효과가 있고요.


6. 일상생활 속에서 인지 능력을 유지하는 방법은 뭐가 있을까요?

- 뇌 건강은 뇌의 연령에 따른 변화, 뇌졸중이나 외상성 뇌 손상과 같은 손상, 우울증, 약물 사용 장애 또는 중독과 같은 기분 장애, 그리고 알츠하이머병 및 관련 치매와 같은 질병에 의해 영향을 받을 수 있습니다. 미국 국립노화연구소는 인지 건강을 유지하는 8가지 수칙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신체 건강 관리 ▲고혈압 관리 ▲건강한 음식 섭취 ▲신체 활동 ▲마음 집중 ▲사회 활동 연결 유지 ▲신체 정신 건강 문제 해결 ▲약물의 영향 이해입니다.

금연, 절주, 균형 잡힌 식단 등을 통해서 신체 건강을 유지하는 게 인지 기능에도 매우 중요합니다. 특히 고혈압을 관리하는 게 중요한데요. 40대에서 60대 초반까지 고혈압을 앓으면 노년기에 인지기능 저하 위험이 높아진다고 합니다. 운동은 기억과 학습에 중요한 뇌 구조의 크기를 증가시켜 공간 기억력을 향상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웃방문 및 자원봉사에 참여하는 등 사회참여가 높은 노인층이 대조군에 비해 더 나은 인지 건강을 나타냈다고 합니다.


7. 우리나라 보건 당국이 권장하는 인지 건강 유지 방법은 없나요?

- 국립중앙의료원 중앙치매센터는 치매예방수칙으로 '3권, 3금, 3행'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각각 즐길 것, 참을 것, 챙길 것 이런 뜻을 담았다고 하는데요. 먼저 3권, 세 가지 즐길 것은 운동, 식사, 독서입니다. 일주일에 세 번 이상 한 번에 20~30분 정도 심장이 평소보다 조금 빨리 뛰고 숨이 다소 차지만 대화를 할 수 있을 정도의 강도로 걷는 것을 권하고요. 식사는 채소와 생선, 과일, 우유를 골고루 드시는 걸 권합니다. 육류 등 고지방 섭취는 치매 위험을 높일 수 있다고 하네요. 독서, 도서관 이용, 연극 관람 등의 지적활동을 많이 하면 알츠하이머 발병 위험을 낮출 수 있다고 하고요. 낱말 맞히기, 편지나 일기 쓰기 등도 권장됩니다.

3금은 술, 담배, 뇌손상인데요. 과음과 습관성 음주는 인지기능 손상으로 인한 알콜성 치매의 원인이 될 수 있다고 합니다. 흡연자는 치매에 걸리지 않는다는 속설이 있는데요. 사실이 아니고요. 흡연자의 치매발병률은 비흡연자보다 1.59배 높다고 합니다. 그런데 과거에 흡연을 했다 하더라도 금연 이후 6년이 지나면 인지장애 확률이 41% 줄어든다고 하니, 흡연자분들은 꼭 끊으시길 바랍니다.

의식을 잃을 정도의 뇌손상을 경험하면 치매 위험이 1.18배 높아진다고 하니까, 운동할 때는 보호 장구를 반드시 착용하고 낙상에 주의해야 합니다. 머리를 부딪쳤다면 바로 검사를 받는 게 좋고요.

마지막 3행은 건강검진, 소통, 치매조기발견입니다. 혈압, 혈당, 콜레스테롤 세 가지를 정기적으로 점검하시고요. 가족과 친구에게 자주 연락하고 만나는 사회적 연결을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고 합니다. 돈 계산과 같은 추상적 사고 능력에 문제가 생기거나 자발성이 떨어지거나 직업이나 일상생활에 영향을 줄 정도의 최근 기억력 상실 등과 같은 치매 의심 증상을 잘 알아두시고, 미심쩍을 땐 보건소에서 무료로 진행하는 치매선별검사를 이용하면 조기에 치매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치매를 조기에 발견해 적극적으로 관리하고 치료하면 환자는 건강한 상태를 보다 오래 유지해 삶의 질을 높이고, 가족들의 돌봄 부담을 줄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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