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 조장 클릭 유도하는 매체들
1. 오늘 팩트체크 주제는 <시금치 농약 범벅?>입니다. 최근 각종 매체들이 시금치에 잔류농약이 많다는 취지로 보도를 많이 쏟아내고 있는데요. 어떻게 된 일인지 짚어보죠.
- 보도 제목을 좀 살펴보겠습니다. <"한국인이 매일 먹는 채소인데.." 아무리 씻어도 75% 농약 범벅이라는 더러운 야채 1위>(마시씀, 모바일 포털 다음 채널)
- <"상추도 깻잎도 아니었습니다" 농약이 대량 검출된 위험한 채소 1위>(홀로서기 헬스랩, 다음 채널)
- <봄철 즐겨 먹는 ‘이 식품’ 농약 오염 상위권 싹쓸이…“안전한 건 따로 있다”>(서울신문)
서울신문 보도를 잠깐 살펴보면 "6일(현지시간) 데일리메일 등 외신에 따르면 미국의 소비자 감시단체 환경워킹그룹(EWG)이 과일·채소·콩류 50여 종의 농약 잔류량을 분석한 보고서를 새로 내놨다. 농약은 세포 DNA 손상, 호르몬 교란, 염증 유발과 꾸준히 연관돼 왔으며 이 모두가 암 발생 위험을 높이는 요인이다."라고 보도했습니다.
외신이 미국의 소비자단체가 내놓은 보고서를 토대로 농산물의 농약 잔류량을 다룬 기사를 재인용해서 보도한 내용인데요. 이게 문제가 많습니다.
2. 외신이 미국의 소비자단체가 내놓은 보고서를 갖고 쓴 기사를 인용해서 보도했다면 이중 삼중으로 검증이 돼서 정제된 기사가 나와야 하는 것 아닐까요?
- 그러면 좋겠는데요. 현실은 그렇지가 않아서 안타깝습니다. 우선 이 내용은 미국의 소비자단체가 미국 농무부가 미국 내 유통 농산물을 점검한 데이터를 가지고 만든 거라서 우리나라 상황과는 많이 다르고요. 기사를 보면 농약 잔류량을 분석한 것으로 나오는데 사실 농약 검출 여부를 중요하게 따진 겁니다. 검출률, 종류수, 농도, 독성 이런 것들로 평가하거든요. 게다가 기사는 최근에 단체가 보고서를 발표한 것처럼 언급하고 있는데 이 Dirty Dozen은 매년 6월에 발표됩니다. 기사가 언급하고 있는 2025년 보고서는 작년 6월에 나온 겁니다. 보도에선 농약은 암발생을 높이는 요인이라고 지적했지만, 인체에 미치는 영향을 줄이기 위해 농약은 엄격하게 관리되고 있고, 잔류량 기준치를 두고 관리하고 있습니다. 농약은 제조사, 판매자, 사용자가 엄격하게 관리하고 용법과 용량, 사용시기 등을 준수해서 사용하면 안전하게 쓸 수 있습니다. 소비자에게 도달하는 농산물은 출하 전 검사 등을 통해 농약 잔류량을 점검하고 있고, 기준에 부적합한 제품은 출하되지 않도록 조치합니다. 시판 중인 농산물에 대한 검사도 실시하고 있습니다.
3. 그런데 왜 이런 매체들은 조금만 먹어도 위험한 것처럼 기사를 쓸까요?
- 자극적으로 내용을 보도해 조회수를 높이는 일종의 공포 마케팅 전략인데요. 우리나라 농약 관리 정책이 굉장히 높은 수준이라서 일상적으로 마트나 시장에서 사 먹는 농산물은 안전하게 관리되고 있다고 보셔도 좋습니다. 이런 기사 댓글을 보면 '도대체 뭘 먹고살란 말이냐' 이런 내용을 많이 볼 수 있는데요. 과도하게 걱정할 필요는 없고요. 잘 씻어서 드시면 더욱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최근까지 건강매체에서 일했던 지인을 통해 일부 건강 매체 사정을 좀 들어봤는데요. 있는 것 없는 것 끌어대서 위험을 과장하고 공포를 조장하는 기사를 쓰잖아요. 이런 기사 쓰는 기자들의 건강 상태가 굉장히 좋지 않다고 합니다.
4. 좀 더 자세히 알아보죠. 미국 EWG의 Dirty Dozen 이란 무엇인가요. 더러운 12가지?
- EWG는 환경워킹그룹이라는 미국의 소비자단체입니다. 이 단체는 2004년부터 농산물 살충제에 관한 소비자 가이드를 매년 발간하고 있습니다. 미국 정부의 농약 규제 정책이 충분하지 않다는 인식에서 출발해, 농약 사용을 금지하거나 줄이자는 캠페인을 펼치고 있습니다. 그중 하나로 매년 농산물 40여 종류의 잔류농약 검출 여부를 발표하고 있는 것이죠. 그중에 농약 잔류가 심각하다고 판단되는 12종을 묶어서 Dirty dozen으로 발표하는 겁니다.
그런데 세계적으로 모든 나라가 마찬가지인데요. 농약 등 유해화학물질에 대해선 위해성 평가를 거치게 됩니다. 모든 물질은 고유의 독성이 있는데요. 다이옥신처럼 독성이 강한 물질은 극미량만 먹어도 사람이 죽죠. 반면 독성이 낮은 물질은 엄청나게 많이 먹어야 인체에 피해를 입히고요. 이처럼 물질의 위해성을 평가할 때 독성과 노출량을 고려하게 됩니다. 어떤 농약이 있다면 이 농약은 인체 내로 얼마나 들어왔을 때 건강피해를 일으키기 시작하는지를 계산하는데요. 사람한테 실험을 할 수는 없으니까 동물 실험을 많이 합니다. 그래서 안전 계수를 곱하는 방식으로 구하게 됩니다. 그러고 나서 사람들이 이 농약을 먹게 되는 경로를 추적하는데요. 특정 작물에 사용하는 농약이라면 그 작물은 평균적으로 얼마나 먹는지, 농약 사용법을 준수하면 시판되는 작물에 잔류하는 농약의 양은 얼마나 되는지 등을 구해서 기준치를 설정합니다. 보통 평생 동안 노출돼도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선을 설정해서 기준치를 설정하죠. 그렇기 때문에 기준치를 웃도는 농산물을 먹었다고 해서 당장 문제가 일어나는 것은 아닙니다.
이 EWG도 홈페이지를 통해서 이렇게 밝히고 있습니다. "(미국) 농무부와 식품의약국이 신선 농산물에서 검출하는 대부분의 농약 잔류물은 정부 기준치 이하로, 법적으로 문제가 없는 수준입니다."라고 말이죠.
5. 기준치 이하이고, 법적으로 문제가 없는 수준이라면 왜 이런 보고서를 만드는 건가요?
- EU가 여러 가지 이유로 사용을 금지하는 농약 중 72종이 미국에서는 사용 중입니다. EU는 물질 자체가 얼마나 위험한가를 중심으로, 사전예방 원칙을 강력하게 적용합니다. 안전하다고 확실히 밝혀질 때까지는 위험을 감수하지 않는다. 이런 원칙이고요. 반면 미국은 독성이 있다고 해도 노출량이 작아서 위해성이 적다고 판단되면 사용을 허가합니다. 미국은 사전예방보다는 위험평가에 기반한 규제정책을 펴고 있기 때문에 유럽과는 정책방향이 다르다고 볼 수 있죠.
EWG는 미국 정부가 농약에 대한 기준치를 적용할 때 어린이에 대한 고려가 충분하지 않았다고 봅니다. 그래서 기준치를 초과하지 않더라도 농약이 검출된 농산물은 주의해야 한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는 것이고요. 이 단체는 잔류 농약 여러 종 검출된 농산물은 멀리하고, 잔류 농약 검출 종류가 적은 농산물을 섭취하라고 권고합니다. 유기농을 포함해서 말이죠.
6. 미국 정부가 정해놓은 기준치 이내로 나타나지만 혹시 모를 위험을 고려해서, 그리고 어린이의 안전을 위해 잔류농약 종류가 덜 검출되는 농산물을 섭취하라는 취지군요.
- 네 우리나라 언론에서 보도하는 것처럼 EWG의 Dirty dozen에 포함돼 있다고 농약 범벅이라는, 즉 농산물에 잔류하는 농약의 양이 많다는 뜻은 아닙니다. EWG는 농약 사용 자체를 줄이거나 사용하지 말라는 취지를 담고 있는 것이고요. 미국 농무부는 기준치 이내로 관리하겠다는 정책을 펴고 있는 것이죠. 그리고 앞서 말씀드렸듯이 대부분 기준치 이내로 나타납니다.
이런 기사가 무서워서 과일과 채소를 먹지 않겠다고 하실 분들 있을지 모르겠는데요. EWG는 "이러한 우려에도 불구하고, 이 지침이 사람들이 농산물을 구매하는 것을 막아서는 안 됩니다. 일반 농산물이든 유기농 농산물이든 과일과 채소를 많이 섭취하는 식단은 건강에 중요합니다."라고 밝힙니다. 미국 농무부는 "농약 잔류는 엄격한 규제 아래 있으며 대부분 안전하다.
과일과 채소는 계속 섭취하는 것이 건강에 중요하다"라는 입장을 밝히고 있습니다. 채소 과일 많이 드시기 바랍니다.
7. 그렇다면 우리나라 농산물의 잔류농약 실태는 어떤가요?
- 우리나라 농산물 잔류농약 검사는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과 지자체, 식품의약품안전처 등에서 하고 있는데요. 국립농산물풀질관리원에선 연간 6만 건 정도 검사를 해서 1% 안팎의 부적합률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식약처, 지자체에서도 별도로 조사를 하고 있고요.
부적합 판정을 받은 농산물은 잔류농약 검출량이 기준치 이내로 나타날 때까지 출하가 금지되거나, 폐기됩니다.
우리나라는 2019년부터 농약에 대해 PLS(Positive List System)을 도입해 운영 중인데요. 이건 특정 작목에 사용이 허가된 몇몇 농약을 제외하고는 다른 종류의 농약을 사용할 수 없도록 한 제도입니다. 이게 굉장히 강력한 제도이기 때문에 도입 당시 굉장히 기대가 컸는데요. 농업 현장에서 농약 사용 기준을 충실히 따라주면 이론적으로는 잔류농약 기준치를 초과하는 농산물은 나올 수 없는 시스템입니다.
국내 생산분 기준 농산물 잔류농약 기준치 초과율은 미국이 2% 정도 되고요, EU는 1~3% 정도, 일본은 0.5~1% 정도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잘하고 있기는 한데 좀 더 잘했으면 하는 욕심이 드네요.
8. 이런 보도를 보면 잔류 농약을 줄이기 위해 이런 방식으로 농산물을 세척해야 한다고 알려주는 내용이 많아요. 어떤가요?
- 앞서 말씀드린 기사 중 하나엔 이런 문장이 들어있습니다. <인생의 후반전에서 가장 큰 자산은 비싼 옷이나 가방이 아니라 내 몸을 병들게 하는 독소로부터 자유로운 맑은 신체이며 이를 지키는 유일한 길은 오늘 당신의 식탁 위 채소를 빡빡 문질러 씻는 작은 정성에서 시작됩니다.>
무시하시고요. 광주시 보건환경연구원이 2022년 국제학술지 food에 게재한 연구결과가 있습니다. 잎채소에서 높은 검출률을 나타내는 농약 10종을 흐르는 수돗물, 고여있는 수돗물, 알칼리수, 식초물, 탄산수소나트륨 희석액, 채소 세척제, 초음파 세척, 데치기, 끓이기 등 9가지 방법으로 씻어본 결과인데요. 상추, 깻잎, 시금치, 쑥갓, 쌈추 등 5가지 잎채소를 대상으로 했습니다.
그 결과 시금치는 흐르는 물에 씻었을 때 잔류농약 감소율이 87.8%로 모든 방법 중에 제거 효율이 가장 높았습니다. 다른 잎채소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흐르는 물에 씻는 게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었습니다. 이 실험에선 유량을 초당 170ml, 분당으로 환산하면 10L 정도로 설정하고 흐르는 수돗물에 5분간 헹궜다고 합니다. 일반 가정에서 수도꼭지에서 약간 강하게 물이 나오는 정도입니다. 참고하시면 좋을 것 같네요. 제철 맞은 시금치 잘 씻어서 맛나게 드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