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떼면 돈, 붙어있으면 쓰레기??

폐지 대란에 대처하는 나의 자세

by 선정수

*또 대란이래?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 대란에 이은 또 하나의 대란이 찾아올 거란다. 바로 폐지 대란. 폐자원을 엄청나게 수입하던 중국이 2018년부터 수입을 중단했다. 이후 대한민국의 폐지는 수급상황에 따라 이따금 가격이 폭락하고 수거 업체들이 수지를 맞추기가 쉽지 않게 된다. 폐지 수거 업체들은 상태가 불량하면 가져가지 않겠다며 어깃장을 놓는다. 잊을 만하면 한 번씩 튀어나오는 폐지 대란. 왜 정부 당국은 원인을 해결하지 않고 때마다 언발에 오줌만 누고 마는지 궁금하다.


*왜 안 가져가나?

폐지 배출량이 많은 대단지 아파트는 입주자 대표회의 또는 관리사무소가 수거업체와 계약을 맺고 폐지를 처리한다. 아파트 단지마다 개별 조건은 다르겠지만 대부분 폐지 수거 업자가 아파트 측에 돈을 지불하고 폐지를 가져간다. 아파트 측에선 이 수입을 주로 개별 가정의 관리비를 깎아주는 데 쓰고 있다. 폐지 수거 업체들은 아파트 측에 돈을 지불하고 폐지를 가져다가 압축해 제지업체에 넘긴다. 그런데 시중에 폐지가 넘쳐나 가격이 하락하면서 수거업체들이 수지를 맞추기가 어려운 상황에 놓인 것이다. 폐지에 이물질이 섞여 들어갈수록 가격이 떨어지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좋은 가격을 받으려면 폐지 수거업체가 이물질을 골라내는 일도 떠맡아야 하는 것이다. 이는 곧 업체의 비용 상승으로 이어진다.


*우리 집은 어떻게 버리나?

20200212_120352.jpg <단독 주택의 분리수거함. 종이 칸에는 비에 젖지 않도록 뚜껑이 달려있다. 하지만 큰 상자는 들어가지 않는다.>

폐지 수거 업체는 가정에서 배출하는 폐지 대부분에 이물질이 섞여 있다고 주장한다. 많이 거론되는 것이 노끈, 테이프, 닭뼈, 라면 등이다. 노끈과 테이프는 상자를 버릴 때 섞여 들어간 것일 테고, 닭뼈는 치킨을 먹고 나서 종이 상자에 뼈를 넣은 채로 재활용 통에 버렸기 때문에 섞여 들어간 것일 게다. 라면은 사발면 컵에 묻어 들어간 것일 테고. 버리는 사람은 귀찮으니까 막 버리는 것이겠지. 종이는 재활용 통에 넣으라고 하니까 넣긴 넣는데 결국 분리수거를 안 하니만 못하게 된다.


*어떻게 버리라고?

정부는 종이 쓰레기를 버릴 때 이렇게 하라고 지침을 세워놨다. 집에서 따라 해 봤는데 조금 귀찮다. 하지만 무지막지하게 귀찮은 정도는 아니다.

종이분리수거.jpg <재활용 가능자원의 분리수거 등에 관한 지침, 환경부>

택배 상자에 개인정보가 담긴 배송장 스티커 떼어버리고 플라스틱 재질의 테이프 떼어버린 뒤 버리면 끝이다. 예전엔 과일 상자에 스테이플러 철핀이 박혀있는 것이 가끔 있었는데 요즘엔 거의 본 적이 없다. 종이컵은 가끔 테이크아웃 커피를 마실 때 생기는데 커피를 끝까지 다 마신 뒤에 종이 칸에 넣는다. 플라스틱 코팅이 돼 반짝거리는 종이와 마트 영수증은 재활용이 되지 않으니 종량제 봉투에 버린다.


*그런데 왜 돈을 가져가래도 싫다는 거지?

나에게 재활용은 환경 파괴에 대한 죄책감을 더는 지구 사랑의 작은 표현이라는 의미가 있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잘 모아주면 가져다가 재활용해서 쓰겠지 하는 생각이다. 그런데 오늘은 다른 생각이 들었다. 모으면 돈이 된다는데 왜 나한테는 돈이 돌아오지 않느냐는... 우리 집은 단독주택 지역이다. 그래서 재활용 쓰레기(폐자원)를 구청에서 수거한다. 정확히는 구청에서 업무를 위탁한 쓰레기 수거 업체 'ㅇㅇ환경'이 치워간다. 아파트는 직접 수거업체와 거래하면서 배출원인 개별 가정의 관리비를 줄여준다. 하지만 단독주택 주민들은 별다른 인센티브가 없다. 물론 치워가는 돈을 받지 않느냐고 업체와 구청에선 이야기할지도 모른다. 치명적인 문제는 여기에서 발생하는 거다.


*돈으로 인식하게 만들어주는 정책이 필요.

내 부모님이 살고 계신 동네에는 폐지 줍는 노인들이 정말 많다. 한 때는 노인들끼리 종이 상자를 놓고 티격태격 다투는 모습도 흔하게 볼 수 있었다. 구청에서 재활용 쓰레기를 수거해가는 날에 맞춰 재활용품을 내놓으면 폐지 줍는 노인들이 묶어 놓은 쓰레기를 헤집어 필요한 것만 가져가고 나머지는 널브러뜨려 놔서 부모님이 분통을 터뜨리는 일도 목격했다. 폐지 줍는 노인. 그분들에겐 폐지는 돈이다.

만일 모든 가정이 폐지를 돈으로 인식하고 있다면 이런 저급한 폐지 대란 사태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가져가는 사람의 입맛에 맞게 가공(세척, 분류, 묶음)해 놓으면 가져가는 사람이 나에게 돈을 준다. 또는 어딘가로 폐자원을 가져가면 돈으로 교환해준다. 이런 인식이 확실하게 모든 사람에게 심어질 수 있는 정책이 필요하다.

환경부는 대형마트 몇 군데에 빈용기 재활용 기계를 설치해놨다. 빈병을 잘 씻어 기계에 넣으면 보증금을 즉시 돌려받을 수 있는 시스템이다. 폐지라고 안 될게 뭐 있겠나. 우리는 모두 돈이 필요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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