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소 2주 독박 육아 전쟁 시작... 지원군은 없다.
나는 서초구의 끄트머리에 살고 있다. 옛날 호랑이가 살았다는 남태령이다. 행정동으로는 방배2동이다. 그런데 지난주 옆 동네인 방배3동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했다. 금요일에 어린이집에서 딸내미를 데려오면서 선생님과 근심스러운 대화를 주고받았다. "아직 휴원 이야기는 없지요?" "네, 아직 지침이 내려온 것은 없네요." 선생님은 꾸벅 인사하고 문을 나서는 딸내미에게 "주말 동안 사람 많은 데는 가면 안 된다"하고 당부하셨다. 아직도 뭘 잘 모르는 딸내미는 "네"하고 큰 소리로 약속했다.
토요일엔 오전엔 피부과 병원에 다녀오고 오후엔 공원에서 놀았다. 딸내미 발바닥에 볼펜 자국 같은 작은 점이 있었는데 점점 커져서 신경이 쓰던 참이었다. 마스크 쓰고 간 병원에선 딸내미 발바닥 점에 대해 사춘기가 올 때까지는 커질 수도 있지만 심각한 것은 아니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한다. 혹시 피부암 같은 게 아닐까 염려했던 마음이 가셨다. 오전까지는 미세먼지 예보 수치가 나쁨이었는데 오후 들어서면서 보통으로 내려와 다행이었다. 바람이 굉장히 세게 불었지만 미세먼지가 날아간다면 이 정도 바람은 고맙다.
왔다 갔다 하는 동안 사람이 붐비는 곳은 전혀 없었다. 지하철도 버스도 모두 넉넉히 거리를 떼고 앉을 수 있을 정도로 주말 대중교통은 한산했다. 체육공원에도 동네 놀이터에도 붐빌 만큼 사람이 많지 않았다. 코로나19 감염 우려는 굉장히 낮은 수준으로 짐작된다. 저녁밥을 먹으려는데 띠리링 어린이집 알림이 왔다. 올 것이 왔구나 직감적으로 휴원이 떠올랐다. 아니나 다를까 서초구 관내 어린이집이 3월 9일까지 휴원이란다. 맞벌이 부부를 위한 긴급 보육은 실시된다고 하지만 우리 집은 아직 맞벌이가 아니다. 설령 어린이집에 보낸다고 한들 한 교실에 모든 연령대가 함께 오글오글 모여서 하루를 보내는 '통합보육'이 실시된다. 아이는 말 못 하는 동생들과 있는 게 싫은 눈치다. 이미 각오는 했던 터라 순순히 받아들이기로 한다.
최소 2주간 독박 육아가 시작된 것이다. 일단 3월 9일에 다시 연다고 공지를 하긴 했지만 그때까지 코로나19 사태가 진정될지 아닐지는 아직 모른다. 그때 열면 좋지만 휴원은 2주 넘게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 지난해 9월 한국에 돌아온 뒤 유치원 입학이 불발되는 바람에 100일 가까이 독박 육아를 치러낸 경험이 있다. 전쟁 같긴 하겠지만 아이와 함께 온전히 24시간을 보내는 마지막 기회라고 좋게 생각하기로 했다. 어른이 된 딸내미가 기억하고 있을 최초의 기억이 아빠와 함께 했던 즐거운 날들이 되기를 바란다.
일요일엔 다행히 하늘이 파랬다. 원래 계획은 경기도 양평의 양떼목장에 가서 동물 먹이주기를 하려고 했다.
4호선 남태령역-이촌역 경의중앙선 환승-용문역 하차-택시로 이어지는 코스를 계획했지만 전철 탑승시간이 너무 길었다. 남태령역-서울역 KTX- 양평역 하차- 택시로 이어지는 플랜B를 알아봤지만 돌아오는 열차 편이 마땅치 않았다. 결국 양떼목장은 포기하고 만만한 서울대공원 동물원으로 향했다. 날씨도 그다지 춥지 않고 미세먼지가 별로 없어서 기분 좋은 나들이를 할 수 있었다. 동물원도 코로나 여파로 전혀 붐비지 않았다.
월요일. 어린이집 휴원이 실감 나는 하루를 보냈다. 이것저것 고민 많은 요즘이라 새벽까지 잠들지 못해 뒤척이다 3시간 정도 자고 깼다. '아침놀이' 하자는 딸내미의 성화에 침대에서 억지로 기어 나왔다. 한 시간 정도 놀아주고 아침밥을 먹은 뒤 본가로 피난할 계획이었지만 할머니의 일정을 미리 체크하지 못해 실패했다. 볼일이 있으니 오늘은 안 되겠다는 완곡한 거절이었다. 플랜B를 가동했다. '아빠와 함께 하는 한글교실'이었다.
일요일 밤에 휴원기간 동안 무엇을 하고 어디를 갈지 대충 생각해봤다. 이번엔 정말 제약이 많다. 사람이 많이 붐비는 실내공간은 감염 우려가 높으므로 일단 제외한다. 키즈카페, 실내놀이터, 백화점, 대형마트, 박물관, 도서관, 대형서점 등 수많은 놀이공간이 순삭된다. 그렇다면 야외활동으로 눈을 돌려야 한다. 대중교통 1시간 이내로 갈 수 있는 곳을 찾아본다. 아직 차를 사지 않아서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밖에 없는데 탑승 시간이 길어질수록 감염의 위험성도 커지게 마련이다. 붐비지 않고 아이가 좋아하는 야외활동을 할 수 있는 곳. 그런 곳을 찾아야 한다.
평상시엔 과천에 가서 많이 놀았다. 하지만 과천은 신천지 본부가 위치한 곳으로 지금 상황에선 굉장히 꺼림칙한 곳이 돼버렸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곳은 한강둔치, 양재천, 집 앞 놀이터, 우면산 등이다. 마침 봄이 오고 있어 개구리가 알을 낳아놓은 연못 같은 곳이 있으면 정말 좋을 것 같다. 서울 또는 근교의 생태공원도 괜찮을 것 같다. 지인 한 분은 주말에 실내 테마파크에 다녀왔는데 이용객이 너무너무 적어서 안에 있는 모든 놀이기구를 단 한 차례도 줄 서지 않고 모두 다 이용하고 왔다는 무용담을 전해준다. 하지만 실내는 좀 겁난다.
사실 이 모든 것도 하늘이 도와야 할 수 있다. 야외활동의 특성상 고농도 미세먼지가 오거나, 춥거나, 비가 오면 모든 게 의미 없어진다. 태국에 있을 때는 시원하게 퍼붓는 스콜 아래에서 '비 놀이'를 하기도 했지만 지금 한국은 춥다. 게다가 비까지 내리면 야외활동을 절대 할 수 없다. 안타깝게도 내일 비 소식이 있다. 새벽에 시작된 비가 저녁까지 내리겠다는 예보다.
하루 종일 스마트폰, 비디오 게임, TV 말고 뭔가 어른도 즐겁고 아이도 즐거운 실내 비상 계획이 절실하다. 찐빵 만들기+반죽 놀이, 물감 놀이, 한글 놀이, 숫자 놀이... 실내 놀이를 총동원할 준비를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