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은동 어느 미용실에서
A. 안녕하세요. 머리 좀 밀러 왔어요.
B. 아드님 군대 가시나요?
A. 아니요 제가 밀려고요.
B. 몇 미리로 해드릴까요?
A. 바짝 좀 밀어주세요. 치료받고 있어 가지고...
B. 두상이 굉장히 예쁘세요.
2018년 1월 8일, 서울 홍은동에 위치한 한 병원 앞 미용실에서 있었던 일이다. 아직도 미용실 그 청년에게 감사한 마음이 가득하다. 그에게는 엄마처럼 원치 않게 머리를 정리하러 온 사람들을 대하는 일종의 센스와 배려가 있었다. 병원 앞에 있는 미용실이다 보니 이전에 이러한 상황을 여러 번 경험해본 것 같았다.
머리를 정리하는 과정 속에서 항상 미소를 잃지 않았고, 행동은 매우 침착했으며 조심스러웠다. 그리고 그 순간 ‘침묵’이라는 불청객이 끼어들지 못하도록 엄마에게 계속해서 이것저것 질문을 했다.
"어디에서 오셨어요?"
"어머님 두상이 너무 예쁘세요."
"나중에 괜찮아지셔서 머리가 기르면 저희 미용실로 꼭 파마하러 오셔야 해요."
미용실 청년이 속사포로 이러한 말들을 내뱉었지만, 엄마의 긴 머리카락이 바닥으로 추락하는 과정에서 엄마의 눈물이 함께 흘러내리는 것은 막지 못했다. 나는 울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냈지만,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그저 하염없이... 눈물이 흘렀다. 의자에 앉아있는 엄마에게 우는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 창가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이내 다시, 머리를 정리하는 엄마를 바라보았다.
일종의 책임감이 들었다. 나는 앞으로 항암치료라는 긴 터널을 함께 걸어야 하는 가족이자, 보호자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순간을 애써 외면하고 싶지 않았다. 마음 아픈 그 순간, 그 순간 엄마의 심정과 슬픔을 직접 헤아려 보고 싶었다.
항암제는 그 특성에 따라 환자의 외형적인 변화가 있고, 없고 가 결정된다. 아쉽게도, 유방암을 치료하는 항암제는 환자의 외형적인 변화를 크게 가져온다. 그중에서도 환자와 보호자 모두가 우려하는 것은 바로 ‘머리카락’이다. 맨 처음 엄마의 유방암 판정 소식을 듣고 소리 내 울던 순간, 머릿속 한편에는 머리카락 없는 암환자의 모습이 희미하게 그려졌다.
타인과 세상에 자신을 표출하는 개성이 될 수도 있다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 머리카락은 사람에게 있어서 단순한 머리카락 그 이상의 의미를 갖는데... 언젠가는 우리 가족도 그 순간을 맞이해야 할 텐데, 다만 그 순간이 고되지 않기만을 바랐다.
결국 모두 사람이 하는 일이다.
유난히도 추웠던 겨울, 엄마와 내가 방문한 미용실에 대한 기억은 따뜻하게 남아있다. 바로 그 배려심 깊은 미용실 청년으로 인해. 그 사람의 따뜻한 말 한마디와 행동이 누군가에게는 자칫 트라우마로 남을 수 있는 상황을 이제는 대수롭지 않게 웃어넘길 수 있는, 고되지 않은 순간으로 만들어줬다.
그동안 엄마께서는 8번의 항암치료와 수술, 20번의 방사선 치료를 거쳤다. 그리고 요즘, 엄마의 머리카락은 다시 자라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