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하'의 詩
낮은 곳으로 / 이정하
낮은 곳에 있고 싶었다.
낮은 곳이라면 지상의
그 어디라도 좋다.
찰랑찰랑 고여들 네 사랑을
온몸으로 받아들일 수만 있다면.
한 방울도 헛되이
새어 나가지 않게 할 수 있다면.
그래, 내가
낮은 곳에 있겠다는 건
너를 위해 나를
온전히 비우겠다는 뜻이다.
나의 존재마저 너에게
흠뻑 주고 싶다는 뜻이다.
잠겨 죽어도 좋으니
너는
물처럼 내게 밀려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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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흔들린다는 것은 내가 살아 있기 때문이야.
살아있기 때문에 아프고, 살아있기 때문에 외로운 거야.
그 말대로라면 흔들리고 아프고 외로운 것은 살아 있음의 특권이라고 할 수 있어. 지금 내가 괴로워하는 이 시간은 어제 세상을 떠난 사람에겐 무지하게 갈망했던 시간인 걸. 지금 당신이 흔들리고 아프고 외롭다면 살아 있구나. 느끼라.
그 느낌에 감사하라. - 이정하 시집, <너는 물처럼 내게 밀려오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