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에 '발행' 버튼을 눌러 인터넷 공간으로 글을 띄워 올리는 순간, 마음을 짓누르고 머리를 어지럽히던 것들도 함께 날아간다.
복잡하기만 하던 생각이나 고민도 글로 써놓고 보면 더 이상 나의 것이 아닌, 제삼자의 것처럼 '객관화'되고, 그 무게감이 훨씬 줄어드는 것!
내가 느끼는 글쓰기의 장점이다.
브런치에 첫 글을 올린 날이 5월 12일.
3~4일에 한 편씩은 꾸준히 쓰다 보니, 어제 7번째 글을 올렸다.
홀가분한 마음에 차 한 잔의 여유를 즐기면서 구독하는 브런치 작가님들의 글을 읽고 있을 때였다.
남편에게서 전화가 왔다.
7월 1일 자로 한국 복귀 발령이 났으니까, 그때 비행기 탄다 생각하고 그에 맞춰 준비하라고 한다. 7월에 한국으로의 귀임 발령은 이미 올 1월에 예고되었던 바이다. 단지, 통상적으로 7월 중순경 발령이 나고, 여기 생활을 정리해서 들어가는 것은 7월 말이나 8월 초가 될 거라고 들어 알고 있었다. 또한 전 세계가 코로나 19로 처음 겪는 팬더믹 상황이라, 코로나 사태 이전에 예고된 발령인만큼 변동이 생길 가능성도 있었다. 그러면 귀임이 더 늦춰질 수 있겠다는 생각도 했다. 그런데 7월 1일이라니! 한 달 남았다고 생각하니 갑자기 마음이 바빠졌다.
남편의 전화 한 통은 나의 고요한 아침을 흔들어 놓았다...
내가 지금 알고 있는 것을 조금만 더 일찍 알았더라면...
살다 보면 가끔 이런 생각을 할 때가 있다. 그것이 사람일 수도, 사물이나 어떤 기회를 대상으로 할 수도 있다. 누군가 이런 말을 한다면 우리는 다음과 같이 충고할 것이다.
'이미 지나간 시간을 아쉬워하지 말고, 지금이라도 '현재'에 충실하라고, 누리고 즐길 수 있을 때 그렇게 하라고.'
제삼자의 눈으로 보면 너무 뻔한 것들도 주인공 1인칭 시점, 내 이야기가 되면 '특별한 색채'가 덧입혀지는 것은 어쩔 수가 없나 보다.
#1. 브런치에 글을 쓰기 시작한 지 한 달도 안 되었는데...
지난달, 다음(Daum) 홈페이지에서 우연히 '나도 작가다' 공모 안내를 보고 , '나도 작가다'란 말에 꽂혀 브런치를 찾아 들어오게 되었다.
베트남에 올 때는 여기서 지내는 동안 글을 써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지금껏 실행에 옮기지 못하고 있다가, 4년이 넘어 베트남을 떠날 때가 다 되어서야 브런치를 만나고, 글을 쓰게 된 것이다.
'내가 브런치를 조금만 더 일찍 알았더라면...'
베트남을 떠난다고 하니 제일 먼저 떠오르는 아쉬움이었다. 핸드폰 메모에는 내가 생각날 때마다 적어둔, 앞으로 쓰고 싶은 글감 주제들이 쌓여 있다.
'한 달 정도만 더 여유가 있다면 부지런히 글을 써서 책 한 권 만들 수 있었을 텐데...'
개인 소장용 책 한 권을 만들고 싶은 게 나의 버킷리스트 중 하나이고, 브런치를 시작한 동기이기도 하다.
물론 베트남을 떠나 한국으로 돌아간다고 하여 글을 못쓰는 것이 아니다. 브런치에 글 쓰는 대부분의 작가님들은 다양한 직업을 갖고 있으며, 자신의 분야에서 열심히 일을 하면서 글도 쓴다. 당연히 '시간적 여유'가 '좋은 글쓰기'의 '필요조건'도, '충분조건'도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한국으로 돌아가면 당장 해결해야 할 당면한 문제들이 내 머릿속을 꽉 채우는 건 어쩔 수 없다. 2주간의 격리생활, 아이의 고등학교 편입, 나의 복직, 살 집과 갖추어야 할 살림살이 등등...
정리하고 준비해야 할 것들의 체크리스트를 작성하다가 다시 컴퓨터 앞에 앉았다.
더 머릿속이 복잡해지기 전에 '속에 것'을 한 번 끄집어내고 싶었나 보다.
#2. 우리가 조금 더 일찍 서로를 알았더라면....
2주 전쯤에 이런 일도 있었다. 브런치에 막 글을 쓰기 시작한 무렵이었다.
일 년 전부터 한 단체에서 같이 활동하던 언니가 카톡 프로필과 연계된 내 글을 우연히 읽었다며 연락을 해왔다. 만나 차 한 잔 하면서 개인적인 얘기를 나누다 보니, 둘 다 책을 좋아하고 글쓰기에 관심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우리는 못내 아쉬워하며 이렇게 말했다.
"진작 그런 줄 알았더라면 같이 책 읽고 많은 얘기 나눌 수 있었을 텐데..."
글쓰기 좋아하는 언니에게 '브런치'를 알려주며, 앞으로는 브런치에서 서로의 글을 통해 만남을 이어가자는 말로 아쉬움을 달랬다.
#3. 더 자주 만나고 더 많은 추억을 공유했더라면...
베트남에서 가장 가깝게 지낸 엄마들이 있다. 국제학교에 같이 입학한, 아이 친구들의 엄마다. 베트남에 온 시기가 비슷하고, 무엇보다 아이들이 같은 학년이고 친하게 지내다 보니, 하노이에 사는 동안 가장 많이 만난 사람들이 아닐까 싶다. 내가 그 모임에서 제일 나이가 많아 '왕언니'로 불리는데, 한국으로 귀임할 시기가 다가오자, 한 엄마가 매주 한 번은 만나 맛사도 받고 하노이의 숨은 맛집이나 볼거리를 함께 찾아가 보자고 제안했다. 코로나 19로 인한 봉쇄령이 해제된 이후부터였으니, 그 만남도 겨우 세 번 했을 뿐이다. 그들도 같은 말을 했다.
"진작부터 이럴 걸..."
베트남 하롱베이(Ha Long Bay). 작은 배를 타고 동굴 속에 들어가 바라본 하롱베이 섬들.
어디 그뿐일까? 지금 알게 된 거, 누리고 있는 것의 '유효기간'을 늘리고 싶은 게.
그것에 대해 계속 쓴다면 A4 용지 몇 장은 거뜬히 채울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유효기간이 있어서 소중한 것임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매번 잊고 살아서 문제지만.
유한한 삶이라서 우리의 인생이 아름다운 것처럼, 한 달 뒤에는 이 곳을 떠난다고 생각하니 베트남에서의 하루하루가 더욱 소중하게 느껴진다.
베트남에서의 생활이 2016년 3월부터였으니, 7월에 떠나면 4년 4개월, 만 52개월을 여기서 보냈다. 내겐 정말 긴 여행과도 같았다.
돌아갈 곳이 있는 여행과 그렇지 못한 여행은 그 마음가짐이 확연히 다를 터이다. 돌아갈 곳이 있기에, 나의 여행을 출발할 때에 어떤 주저함이나 두려움이 없었고, 52개월의 여정을 마음껏 즐길 수 있었던 것 같다.
긴 여행을 떠나본 사람은 알 것이다. 중간에 힘든 고비가 찾아온다는 것을. 그냥 다 포기하고 집에 돌아가고 싶을 때가 있다. 그러나 그 고비를 넘기고, 여행을 더 이어가다 보면, 막상 여행을 끝내고 집에 돌아갈 즈음에는 오히려 아쉬워진다. 그제야 여행의 묘미를 알게 된 것 같아 여행을 조금만 더 연장하고픈 욕심이 생긴다.
지금 나의 마음이 딱 그러하다!
'조금 더 일찍 알았더라면...'을 바꾸어 말하면 '이제야 그것의 소중함을 알게 되었다'이다.
아무튼 지금 깨달았고, 내겐 아직 한 달이란 시간적 여유가 남아 있다!
생각하기에 따라 한 달이란 시간은 이 곳 생활을 정리하고 새로운 출발을 준비하기에 충분히 넉넉한 시간이다. 여행을 마무리할 수 있는 이런 시간을 가질 수 있음에 감사하는 마음까지 생긴다. (역시 글쓰기를 통해 다다른 결론, 글쓰기의 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