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지구] 이제와 돌이켜보니, 플로깅.

by 섬세영
스웨덴어의 '플로카 업(plocka upp; 줍다)'과 '조가(jogga; 조깅하다)'를 합성하여 만든 '플로가(plogga)'라는 용어의 명사형으로, '쓰레기를 주으며 조깅하기'라는 의미이다. 한국에서는 '줍다'와 '조깅'을 결합한 '줍깅'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기도 한다. (두산백과 두피디아)


수 십년 전 내가 미취학 이동일 시절 나는 담배꽁초를 줍곤 했다. 비단 담배꽁초 뿐 아니라 아파트 단지에 있는 이런 저런 쓰레기를 주웠다. 이유는 단지 쓰레기를 길에다 버리면 안된다고 배웠기 때문이다. 내가 버린 것이 아니더라도, 군가 버려둔 쓰레기를 발견하면 쓰레기통에 넣으라고 까지 웠기에 나는 길거리를 다니며 쓰레기를 주웠다.


엄마는 당황스러웠을 것이다. 학교도 안들어간 어린애가 집 밖에만 나가면 담배냄새를 뭍히고 들어오는데다가 가방에는 쓰레기가 잔뜩이었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마는 내가 쓰레기 줍는 것을 말리지 않았다. 칭찬의 말과 함께 내가 이것 저것 주워온 온갖 쓰레기를 잘 분리해서 버려 주기 까지 했다. 이런 조기 교육 덕분에 내가 환경 문제에 조금 더 관심을 가지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근 몇 년 사이에 플로깅, 줍깅이라는 용어가 부상했다. 건강을 챙기며 환경보호도 하자는 취지로 발생한 용어이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니 내 어린 시절의 그 추억이 줍깅의 시작이었던 것이다. 뛰어 놀며 쓰레기가 보이면 주워드는 행동이 줍깅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최근 이 추억이 새삼 떠오른 이유는 플로깅이라는 용어가 급부상해서가 아니다. 비대면수업이 대면수업으로 전환되면서 학교에 자주 가게 되었다. 매일 같은 버스를 타고 같은 길을 걸어 정문을 통과하고 외국어대학관으로 걸어가는 그 길을 걸으면서 나의 오래된 추억이 떠오른 것이다.

버스에서 내려 학교까지 가려면 지하도를 하나 건너야 한다. 이 지하도는 학교 학생들이나 관계자 말고는 거의 사용하지 않는 곳이다. 다시말하자면 이 곳에 버려진 모든 쓰레기는 학교 학생들이 버렸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솔직히 충격이었다. 좋은 대학을 말하면 늘 상위권에 랭크되는 학교이고, 근방에서 가장 멋진 학교라는 이미지에 걸맞지 않은 쓰레기들이었다. 벽면에 붙여두었던 각종 포스터, 마스크, 종이컵 등 각종 쓰레기가 지하도를 가득 채우고 있다.


버리는 사람만 있고, 치우는 사람은 하나도 없는 이 곳을 걷노라면 어린시절 담배꽁초를 줍던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모락모락 피어났다. 하지만 실천에 옮기지 못하고 있다. 고작 7살난 어린애도 했던 일을 다 큰 내가 해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추억과 함께 자괴감이 들었다.


나는 오늘 이 지하도의 쓰레기를 주을 것이다. 줍깅, 플로깅이라는 거창한 명칭을 붙일만큼 대단한 일도 아니다. 사실 내가 치운다 해도 곧 다시 더러워 질 수도 있는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지하도의 쓰레기를 치울 것이다. 내가 치워둔 지하도를 보고 무언가를 깨닫는 단 한사람이 존재하기를 바라면서 치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