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20대 초반까지만 해도 60kg 근방에 머물던 몸무게로 살았었다. 키가 성인 여성 평균에 약간 못 미치니 명확한 비만이었던 것이다. 어릴 때 한약 먹고 살쪘다는 진부한 이야기로 시작된 내 퉁퉁 연대기는 중학교 시절 절정기를 맞는다. 우리 엄마는 손이 컸다. 미숫가루 한잔을 타 줘도 500ml짜리 컵에 가득 넘치도록 타 줬고, 김밥 싸는 날이면 업소용 밥솥이 등장하곤 했다. 성장기 딸 둘과 성인 두 명이 전부였던 가정집에 업소용 밥솥이 있는 것도 지금 생각해보면 기가 막힌 일이다. 비만 세포의 수가 늘어난다는 소아비만 출신 중학생이 손 큰 엄마 밑에서 성장했으니 옆으로 쑥쑥 자라는 일은 한여름 자라나는 잡초의 속도와 맞먹을 정도였다. 초등학교 시절까지는 그래도 키 크고 덩치 큰 여학생 정도였다. 영양 섭취가 과했으니 키도 또래보다 5~6cm는 컸었다. 그 시기에 이미 50kg이 넘었었지만 2차 성징이 오지 않았던 또래들 사이에서는 꽤나 키가 큰 편이었기에 저 정도 몸무게는 당연하다고 스스로를 위안했다. 하지만 중학교에 들어가자 상황이 달라졌다. 나보다 손가락 한 뼘은 작았던 친구들이 어느샌가 나보다 시선이 위에 가있고, 남학생들은 더더욱 키가 커지며 180cm에 달하는 사람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 사이에서 나는 그냥 뚱뚱한 애가 되어 버렸다. 우리 반에서 가장 팔뚝 두꺼운 애. 내 외모는 딱 그 정도로 평가되었다.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대학 가면 살 빠진다는 손 큰 엄마의 말을 철썩 같이 믿으며 라면에 밥 말아먹고 소세지 반찬까지 찾았었다. 이쯤 되면 사실 엄마가 손이 컸다는 건 단순 핑계고 그저 내가 많이 먹는 애였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당시 급식에 나왔던 왕돈까스 한 판을 다 먹고 밥까지 먹었지만, 같이 먹던 친구는 돈까스도 채 다 못 먹고 밥은 손댈 엄두조차 못 냈으니 말이다.
그렇게 나는 70kg으로 고등학교에 입학하게 된다. 사실 이보다 더 나갔을 수도 있다. 70kg이라는 숫자를 본 이후부터는 체중계에 올라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고등학교에서는 다행히 그 이상으로 몸무게가 늘지는 않았던 것 같다. 하루 종일 앉아 있던 수험생이었지만 교내에 매점이 없었고 용돈도 넉넉하지 않았기에 군것질을 하지 못했고, 새벽에 등교해서 야자까지 하고 집에 도착하면 쓰러져 잠드는 일상이었기에 엄마의 위대한 음식을 먹을 물리적 시간이 부족했기 때문이라 여겨진다. 더 이상 몸무게가 늘면 안 된다는 생각으로 딱 맞게 맞춘 교복은 다행히 추가의 수선 없이 졸업할 때까지 입을 수 있었다. 하지만 외모에 눈을 뜬 친구들 사이에서 나는 키 작고 뚱뚱하고 못생긴 애였을 뿐이다. 세상 가장 예쁘고 유행하는 옷이 총출동하는 고등학교 수학여행에서도 나는 길고 커다란 셔츠만 입고 돌아다녔었다. 여러모로 기억에 남지 않는 고등학교 시절을 보내고 드디어 대학생이 되었다. 기숙사 생활을 하며 마땅히 식당 갈 돈도 없던 나는 편의점에서 파는 컵라면으로 끼니를 해결하는 일이 부지기수였고 운동도 꾸준히 하지 못해서 늘 몸무게는 60kg을 웃돌았다. 인터넷 쇼핑몰에서 파는 프리 사이즈의 원피스는 내게 맞지 않았으니 프리사이즈가 아니었다.
본격적으로 다이어트를 시작한 것은 중국으로 교환학생을 다녀온 이후였다. '건강을 위해서', 그리고 한 살이라도 젊을 때 멋진 몸매를 만들어 보는 건 어떠냐는 흘리듯 지나간 옆지기의 말이 도화선이 되었다. 건강에 초점을 맞춘 대사에서 멋진 몸매라는 워딩에만 꽂혀버렸다. 처음 하는 연애였기에 잘 보이고 싶은 마음 컸었던 탓이리라. 하루라도 빨리 살을 빼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마음이 급해진 나는 밥을 굶고 운동에 매달렸다. 방울토마토 7알이 당시 내 하루 식사였다. 한 끼가 아니라 하루. 몸무게라는 숫자에만 집착을 했고, 나오지 않는 소변을 쥐어 짜내서라도 몸무게를 줄이려 했다. 이런 심리 상태로 하는 운동 역시 제대로 됐을 리 없다. 건강을 위해 옆지기가 등록해준 헬스장에서는 더 빠르게, 오래 걸어야 살이 더 많이 빠질 것이란 생각으로 트레이드 밀의 속도를 높였고 멈추지 않았다. 요가를 하면서도 심신 안정이나 정신 수양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저 강사님은 몸무게가 얼마나 나갈까, 나는 이렇게 하는데 왜 저런 몸이 안될까 라며 끊임없이 나를 탓하고 타인을 부러워했다. 몸무게는 정상 범주에 들어왔지만 나는 만족할 수 없었다. 더더더 날씬해지고 싶었고, 지방이 없는 몸을 탐했다. 이게 날 망치는 일이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저 내가 뚱뚱하고 못생겼다는 생각만 들었다.
그리고 이 욕망은 나를 약물의 늪에 빠지게 만들었다. 식욕억제제. 가만히 생각해보면 굉장히 단순하고 명쾌한 네이밍이 아닐 수 없다. 말 그대로 복용하면 식욕이라는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욕구가 눈 녹듯 사라진다. 그리고 따로 운동을 하지 않아도 자고 일어나면 몸무게가 줄어든다. 정체기가 오면 나는 약물을 찾았다. 양약과 한약 모두 쉽고 빠르게 처방받을 수 있었다. 헬스장 등록비보다 저렴하게 그리고 눈에 보이는 숫자를 통해 체중감소가 체감되도록 만들어 주는 식욕억제제는 중독으로 이어지는 것 역시 쉽고 빨랐다. 그렇게 나는 점점 다이어트를 위한 다이어트를 하게 되었다. 주위에서는 내 건강을 염려해 나에게 화를 내기도 하고 제발 그만 빼라고 부탁하기도 했지만, 들리지 않았다. 사실 그들을 이해하지 못했다. 세상에 마른 사람들은 넘쳐났고, 거울을 통해 본 내 몸은 울퉁불퉁 지방이 잔뜩 붙어 있어 보였다. 식욕억제제를 먹지 않으면 불안했고, 식욕억제제를 먹으면 나타나는 부작용이 나타나지 않아도 불안했다. 누워 있어도 손발이 떨리고, 양치만 해도 구역질이 났다. 샤워를 하다가도 쓰러졌고, 차에서 내리다가도 쓰러졌다. 가뜩이나 예민한 성격은 더더욱 히스테릭 해졌다. 누가 내 몸을 스치기만 해도 통증이 밀려왔다. 그렇게 나는 47kg이 되었지만 행복하지 않았다. s사이즈의 옷을 입어도 행복하지 않았고, 맛있는 음식을 먹어도 행복하지 않았다. 오히려 다시 뚱뚱해질까 봐 하루하루가 두렵고 힘들었다
나를 이 지옥에서 건져내 준 사람은 옆지기였다. 이미 망가질대로 망가진 몸과 정신을 건강하게 만들기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했다. 홍삼과 녹용부터 각종 영양제까지 사주는 걸로 끝내지 않고 매일 시간 맞춰 먹도록 물을 떠다 주고 먹기 싫어하는 나를 어르고 달랬다. 식욕억제제 복용과 초절식으로 인해 제기능을 못하고 있던 소화기관 때문에 밥을 못 먹고 있자 오만가지 죽을 사서 손에 들려줬다. 조금만 아파도 병원으로 들고뛰었고, 제일 좋다는 약을 찾기 위해 나보다도 더 열심이었다. 피폐해진 정신 건강을 위해 뜨개질을 권한 것도 그였다. 뜨개질이라고 명확하게 이야기하지는 않았지만, 좋아하는 취미를 하는 것이 어떠냐며 자신이 사줄 수 있는 것이라면 사주겠다고 기꺼이 말했다. 그렇게 뜨개를 시작했다. 그리고 행복해졌다. 더 이상 47kg이 아니게 되었지만 행복해졌고, 내 몸무게를 단순한 수치로 여기기 시작했다. 건강을 위해 트레이드 밀이 아닌 산책을 시작했고, 천천히 걸으며 새소리를 듣고 구름이 흘러가는 것을 감상했다. 먹는 것에 죄책감을 느끼지 않고 음식 본연의 맛을 즐기게 되었다. 고작 몇 문단의 글이지만 이 글을 써내기까지 나는 십여 년의 시간이 필요했다.
최근 코로나로 인해 실외 활동이 줄면서 야금야금 살이 올랐다. s사이즈 입던 몸에서 l사이즈가 되었지만 마음이 불편하거나 다이어트를 해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히진 않았다. 무의식적으로 먹던 간식을 자연식으로 대체하고 액상과당 가득한 음료 대신 탄산수를 마시는 정도의 식단 조절을 하고 짧은 시간에 몸무게가 급격히 불어서 안 좋아진 무릎과 발목관절이 불편하지 않은 선에서 운동을 하고 있다. 실내 데이트를 하기보단 교외로 나가 강물 따라 자전거를 타기도 하고 숲 속 산책로를 걷기도 한다.
그리고 뜨개질을 했다. 지금 내 사이즈보다 한 치수 정도 작은 옷을 떴다. 넉넉한 라인의 옷이라 지금도 입으려면 얼마든지 입을 수야 있지만, 조금 더 편하게 입기 위해서는 5kg 정도의 감량이 필요하다. 뜨개질은 쉬운 일은 아니다. 바늘을 수 만 번 움직여야 하고 뜨개 하는 내내 도안과 편물을 살펴야 한다. 몸과 머리의 합작 노동이다. 또한 긴 시간이 필요하다. 손안에 있는 핸드폰으로 3분 만에도 살 수 있는 스웨터지만, 이걸 떠서 입으려면 실을 고르고, 실에 맞춰 도안을 수정하기 위해 게이지를 내는 데까지도 며칠이 걸릴 수 있다. 주문한 옷이 도착하고도 남을 시간이다. 시작이 반이라지만 뜨개로 옷을 만드는 일은 시작은 정말 시작일 뿐이다. 코를 잡는데도 한 세월이 걸리고(숫자를 못 세는 나에겐 더더욱 긴 시간이다) 여러모로 신경 쓸 부분이 많은 소매 부분을 겨우 겨우 끝내면 끝없는 몸통의 굴레가 남아있다. 떠도 떠도 몸통 길이는 늘어나질 않고 마음 한편에는 요새 크롭티가 유행이니 짧은 기장으로 마무리하는 것도 멋있겠다는 생각이 떠오른다. 삼라만상의 잡념 속에서 원하는 길이까지 몸통을 떠내려가면 끝났다고 외치고 싶다. 그렇지만 여전히 완성은 아니다. 손목과 목둘레가 편하도록 고무단을 만들어줘야 한다. 이 작업이 끝나면 드디어 최종단계에 들어간다. 이어 붙인 곳에 생긴 자투리 실을 눈에 안 띄게 꿰매 넣고, 실과 실을 연결한 매듭 부분도 거슬리지 않게 처리한다. 그렇게 마지막 가위질이 끝나면 드디어 완성인 것이다. 수많은 과정과 수 십 시간을 들여 만든 옷이니 기왕이면 더 편하게 오래 입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것은 당연하지 않겠는가. 코로나가 시작된 이후 야금 야금 찐 살이니 똑같이 2년정도의 시간을 들여 차근차근히 살을 빼보려 한다. 내가 뜬 스웨터에 발이 달려 도망가는 것도 아니니 주어진 시간은 많다. 올 겨울에는 딱 맞는 듯 하게 입고, 내년 겨울에는 좀 더 넉넉한 품으로 입으면 될 것이다. 매 년 가을이 되면 나는 또 다시 내가 뜬 스웨터를 꺼내 입어보고 올 겨울에 이 옷을 어떻게 입을지 고민하게 될 것이다. 나의 다이어트는 더 이상 다이어트를 위한 것이 아니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