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기록1] 이열치열

한여름의 뜨개 생활

by 섬세영


덥다. 더워도 너무 덥다. 추운 것은 옷을 더 입으면 해결된다지만 더위는 속옷 한장 걸치고 있어도 여전히 덥다. 팬티 한 장 입고 긴 머리를 하나로 올려 묶어도 더위는 쉽게 가시질 않는다. 옷을 입지 않고선 외출이 불가하니 여름에는 외출도 자제한다. 이럴 때는 내가 집에만 있어도 답답함을 느끼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이 참 다행스럽다. 최소한의 경제사회 활동을 위해 집 밖을 나서려면 준비할 것이 한가득이다. 통풍이 잘되고 땀 흘려도 쉽게 말는 재질의 옷을 골라 입고 화살처럼 쏘아 내려오는 햇살을 피하기 위한 모자와 양산을 챙긴다. 예보되지 않은 소나기가 잦으니 우산과 양산을 겸할 수 있는 제품을 고르는 것이 좋다. 얼음을 가득 채운 텀블러까지 가방에 챙겨 넣고 마스크를 챙겨 쓰면 드디어 현관 문 밖을 나설 수 있다. 한반도의 여름 기온은 해가 갈 수록 최고점을 기록하고 , 코로나로 인해 마스크를 쓰고 있으니 숨쉬는 것 조차 힘이든다. 이 정도의 온습도는 피부호흡이 가능한 양서류에게 적합한 환경이지 포유류인 인간이 살기 좋은 환경이라는 엉뚱한 말이 입 밖으로 절로 나오고, 이 정도의 온습도라면 인간도 아가미가 생기거나 피부호흡이 가능한 방향으로 진화 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드는 것을 보면 여름 더위가 사람 정신 빠지게 할 정도인 것이 분명하다.

더욱이 나는 땀이 많다. 덥다는 느낌이 들지 않더라도 두피, 얼굴, 목, 등, 겨드랑이, 허벅지까지 전신에서 땀이 쏟아져내리는 사람이다. 여름 티셔츠를 한 장 마련하는 것에도 땀에 젖어도 티가 잘 나지 않는 색상인지, 잘 마르는지, 젖으면 축 늘어져 몸에 들러 붙는 재질인지 고민 해야 한다. 격식 차려 만나야 하는 사람이 생기면 최소 약속시간 한시간 전에는 약속 장소에 도착해 땀을 식히고 몸을 말려야 한다. 짧은 치마나 바지를 입으면 허벅지에 흐르는 땀 때문에 의자에 앉는 것 조차 불편해 차라리 얇고 하늘하늘한 긴 치마를 입는다. 이런 체질이니 여름에는 화장이 외출 시 고려 대상에 들어가지도 않는다. 선크림만 잘 바르면 화장은 끝이다.




다행인건 전신에서 땀이 쏟아지듯 나지만 손바닥과 발바닥에는 땀이 비교적 잘 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손과 발, 특히 손에 땀이 많지 않은 것은 내게는 천만 다행인 일이다(이 발언 혹여라도 손과 발의 다한증으로 고생하는 사람들에게 상처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 요리 빼고 손으로 하는 일은 다 잘하고 좋아하는 사람이라 손을 써서 하는 일이 많이 때문이다. 오전 가게일도 다 손을 써서 하는 일이고 오후에 공부 할 때도 연필 쥐고 필기하는 시간이 길다. 손에 땀이 많지 않다고 해도 같은 물건을 쥐고 힘을 주고 있다보면 손의 고랑고랑을 따라 습기가 차는 것이 느껴진다. 그 중 제일은 뜨개질이다. 한 번 뜨개질을 시작하면 꽤나 오랜 시간 동안 바늘을 손에 쥐고 있어야 한다. 나무로 된 바늘을 사용하면 좀 덜 미끄럽지만 쇠로 된 코바늘의 경우에는 땀이 나면 쉽게 미끄러워져 손에 힘을 더 바짝 주어야 한다.

이처럼 한여름의 뜨개질 역시 한여름의 외출처럼 준비하고 고려할 것이 다른 계절보다 많아진다. 한여름의 뜨개질을 조금 더 오래 즐기기 위해서는 무엇을 뜨는지도 중요하다. 블랭킷이나 큰 사이즈의 가디건 같은 것을 뜬다는 것은 스스로 고행길을 걷겠다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뜨개를 시작하고 편물의 크기가 손수건 정도의 크기가 될때 까지는 그래도 괜찮다. 하지만 편물의 크기가 손수건 보다 커져서 내 허벅지에 닿는 순간 내가 무엇을 입고, 얼만큼 시원한 공간에 있는지와 상관 없이 그냥 한여름에 털옷 입은 사람이 되어버린다. 상반신과 허벅지를 덮어버린 편물은 완성되는 순간까지 나에게 니트가 지닌 탁월한 보온성을 알려준다. 그러니 되도록 여름에 하는 뜨개질은 인형이나 모자처럼 작은 사이즈를 뜨는 것을 추천한다.


오전 근무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 남은 공부를 한다. 앉아서 손과 머리만 쓰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온 몸은 땀으로 젖어들어간다. 공부는 고통의 길이기 때문에 이 고통을 더 즐기고자 에어컨조차 틀어두지 않는다. 이러다 허벅지 아래에 찬 땀이 의자를 벗어나 바닥에 흐르겠다는 생각이 들 즈음에 엉덩이를 일으켜 미지근한 온도의 물로 샤워를 한다. 땀이 나 끈적 끈적해 진 몸으로는 뜨개 바늘을 잡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 않는다. 샤워하는 동안 에어컨을 틀어두어 실내 공기가 서늘해지도록 만든다. 선풍기 바람으로 머리를 말리고나면 에어컨을 끄고 시원한 매실차를 한 잔 준비한다. 시엄마가 직접 담궈 수 년간 숙성시킨 매실액으로 탄 매실차는 길고 지치는 여름날을 기다리게 하게 만드는 몇 안되는 요소 중 하나이다. 긴 유리컵에 담으면 더 시원해 보이겠지만, 표면에 맺힌 물방울로 인해 손이 젖는것을 막고 오랫동안 얼음이 녹지 않게 하기 위해 텀블러에 담는다. 이제 쇼파의 가장 편한 자리를 찾는다. 에어컨을 껐지만 다행히 이때까지는 피부에 닿는 공기가 쾌적하게 느껴진다. 선풍기를 제일 약한 강도로 틀어두고 바늘을 잡는다. 이제 시작이다. 몸은 뽀송하고 숨쉬기 편한 온도가 만들어 졌고 덕분에 선풍기 바람도 기분 좋게 느껴진다. 가끔은 유튜브를 틀어두기도 하지만 적막이 주는 안정감과 그 속에서 움직이는 바늘 소리에 집중하기 위해 대부분 노래조차 틀어두지 않고 뜨개질을 한다. 바늘을 움직인 시간 만큼 한 단, 두 단 늘어난 편물처럼 점점 늘어나 어느새 거실 깊숙히 들어왔던 햇살도 자취를 감추었다. 텀블러에 넣어뒀던 매실차도 얼음이 녹아 많이 연해졌다. 에어컨이 만들어준 차가운 공기도 다시 여름 밤의 축축한 공기가 되어 폐 속 깊은 곳까지 들어온다. 온 집안의 창문을 열어 축축한 공기를 더더욱 만끽하며 여름의 하루는 이렇게 지나간다. 하루 종일 한여름의 강렬함을 온 몸으로 버텨내고 겨우 얻어낸 찰나의 행복으로 내일도 여전할 여름을 견디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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