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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섬세영 Jun 27. 2023

동생과 부산

살면서 처음으로 동생과 여행을 떠났다. 그 누구보다 좋은 사이였다 그 누구만도 못한 사이가 되기도 했던 동생. 그런 동생과 부산으로 향했다.



비 내리는 주말. 여러번 왔어도 또 좋은 부산에 도착했다. 부산은 혼자서도 친구와도 옆지기와도 와 보았지만 시티투어 버스는 이번에 처음 타 보았다. 그 악명 높은 부산항 대교를 경험하기 위한 뚜벅이의 선택이었다. 그런데 동생이 이를 너무 지나칠 정도로 좋아하는것이 아닌가! (심지어 부산 여행에서 가장 좋았던 1순위를 이 시티투어 버스를 택했다) 다행이었다. 내가 부산을 사랑하는 것 처럼 동생도 부산을 사랑하게 될 것이라는 생각이 차올랐다.


해운대에 내려 숙소에 도착하자 동생은 환호성을 질렀다. 이렇게 좋은 숙소는 처음이라며. 침대가 두개씩이나 있다고 넓지도 않은 호텔방을 마구 뛰어 다녔다. 옆지기에게 숙소는 잠깐 자는 곳이라 대충 아무데나 고르라고 했던 순간이 스쳐 지나가며, 내 이런 소리를 무시하고 좋은 숙소를 잡아준 옆지기가 고마웠다.


안개낀듯 비가 내리는 해운대를 돌아다니며 동생이 꼭 먹고 싶다 한 탕후루도 먹고 활기찬 시장 골목도 구경하고 돼지국밥도 먹었다(해운대의 돼지국밥은 약간 실망이었다. 이건 돼지국밥이 아니라고 동생에게 수없이 설명했다) 첫날의 마지막 코스는 X the SKY. 비가 와 아무것도 안보인다는 카운터의 설명에도 우리는 설마 진짜 아무것도 안보일라고 싶은 말음에 위를 향했다. 도착한 하늘 끝은 정말 아무것도 안보였다. 그저 하이얀 구름만 통유리창 너머 가득이었다. 실망할 줄 알았던 동생을 슬쩍 바라보니 오히려 두 눈을 반짝이며 내게 말해 왔다.


"언니 구름 속에 들어온 기분이야. 얼른 세계에서 제일 높은곳에 있다는 별다방 가보자. 천국에서 먹는 기분일듯"


아...나는 정말 동생을 모르고 있었구나. 머리가 띵 해왔다. 내 동생은 내 생각보다 더 밝고 긍정적인 아이였다. 나보다 다섯살이나 어려 늘 어린애라고만 생각했는데 어느덧 훌쩍 자라 언니의 마음까지 헤아려주는구나. 눈물이 차오르는 것을 들킬새라 나도 더 활기차게,


"그래! 가보자! 천국의 맛을 느껴보자!"


외쳤다.


구름속에서 먹는 커피 맛은 천국의 맛까진 아닌 평범한, 어디서나 먹을 수 있는 그런 맛이지만 동생과 함께 있는 시간이라 더욱 고소했다.

천국의 맛을 경험한 뒤, 나와 동생은 해운대 백사장길을 걸어 숙소로 돌아왔다. 아쉬운 마음에 회 한접시 시켜 매운탕까지 후후 불어 먹으며 부산에서의 첫 날이 이렇게 저물었다.


늦은 시간까지 돌아다녔던 데다가 매운탕에 술까지 마시고 잔 터라 이튿날 아침은 조금 더디게 시작했다. 둘다 퉁퉁 부은 얼굴로 느적느적 일어나 유명하다는 장어 덮밥집으로 향했다. 오픈하기 1시간 전이지만 벌써 웨이팅이 60번이나 되는 집이었다. 웨이팅 번호를 듣고 놀라서 우리도 서둘러 웨이팅을 걸어두고 근처 카페에 와 여유롭게 시간을 보냈다. 동생과 이렇게 느긋하게 카페에 앉아 있어본 것도 처음이라 내심 들떴지만 내색 않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한시간 정도를 기다려 장어 덮밥집에 들어왔다. 장어덮밥... 정말 요즘말로 존맛탱이었다.


바닥이 보일 때 쯤 백종원의 명대사가 떠올랐다.


"아... 더 큰거 시킬껄"

"아... 두 그릇 시킬껄"


아쉽지만 다음을 기약하며 부른 배를 두드리며 우리는 식당을 나섰다.


다음 일정은 센텀시티 신세계 백화점이었다. 백화점 구경 좋아하는 동생을 위해 일부러 넣은 일정이었다. 지하부터 꼭데기까지 몇바퀴를 돌고 나서야 우리는 백화점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어쩜 동생은 백화점 조명 먹고 사는 애 처럼 에너지가 풀충전 되었는데 나는 많은 사람과 소란스러움에 조금은 지쳤는지도 모른다. 그래도 동생이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오길 잘 했다는 생각이 더 우세했다.


오전 시간을 화려한 부산 도심에서 보냈으니 이제 오후 시간은 내가 좋아하는 부산을 경험할 시간이었다. 우리는 감천문화마을로 향했다.이번에도 동생은 버스 타는 시간을 좋아했다. 경사가 심하고 좁은 골목을 곡예에 가까운 운전 실력으로 굽이굽이쳐 올라올라가 우리는 감천문화마을에 도착했다. 이미 저녁시간이라 어둑어둑 해져가고 비까지 오던 참이라 동네는 더욱 한적했다.



큰 길을 따라 걷기보단 좁은 골목 골목을 누비기를 택한 우리는 한명이 서면 꽉 차는 좁은 길을 나란히 올랐갔다 내려갔다 여러번 반복해서야 꼭데기에 다다를 수 있었다. 동생은 처음 느껴본 부산의 정취에 신선함과 색다름을 느껴 상기된 표정이었다. 카페에 들러 기념품을 산 우리는 큰길을 따라 다시 버스 정류장으로 돌아왔다. 내가 좋아하는 부산에 동생과 함께 있다는 것이 가장 실감 난 순간이기도 했다. 조용한 길거리, 차분히 내려 앉은 안개, 노란 조명등 그리고 오랜만에 발걸음 맞추는 나와 동생. 나는 이 순간을 아마 오래도록 기억 할 것이다.


이렇게 우리의 짧은 부산 여행이 끝났다. 뭐든 처음이 어렵다 했다. 첫 여행을 무사히 마친 우리는 조금 더 덜 어색한 사이가 되었고 조금 더 가까운 사이가 되었다. 앞으로 우리 앞에 펼쳐진 인생이란 여행도 이번 부산 여행처럼 늘 함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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