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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섬세영 Jul 16. 2023

정신과일지] 내가 누구인지 모르겠다.

근데 지금 참 마음에 들어

더할나위 없이 좋은 날이 계속되고 있다. 잠도 잘 자고, 꿈도 꾸지 않는다. 더이상 악몽을 꾸지 않으니 잠드는 것이 두렵지도, 무섭지도 않다.  기분도 좋다. 생전 불러본적 없는 아이돌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춰대기도 하고, 일 할 때면 나도 모르게 엉덩이를 씰룩거리고 있다. 즐거운 효과음이 입에서 나도 모르게 불쑥 불쑥 튀어나와 당황스럽기도 하다. 혼자 있는 고요한 시간이면 정신 없이 머리를 어지럽게 만들던 오만가지 생각이 더이상 떠오르지 않는다. 덕분에 혼자 있는 시간이 참으로 무료해 졌다.


폭식을 하며 살이 참 많이 쪘다. 보는 사람들마다 놀라 임신 여부를 묻는다. 혹은 내가 그 말랐던 사람과 닮은 자매라 생각하는 사람을 만나기도 했다. 뭐. 20키로 정도 쪘으니 이런 말 들을만 하다. 다만 내가 날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졌다는 것이다. 48kg 나갈 때, 나는 내 몸이 싫었다. 불룩 튀어나온 뱃살, 축 쳐진 팔뚝살, 허벅지가 코끼리 같다며 내 살을 쥐어 뜯었다. 끊임없이 몸무게를 확인하고 강박에 쌓여 나를 억압하고 통제 했다. 거울을 바라보는 것이 힘들었다. 아무리 들여다봐도 내 단점만 눈에 띄었다. 두꺼운 종아리, 매끈하지 못한 얼굴 라인, 볼록 솟은 승모근까지 나는 내 몸 구석구석이 다 못마땅했다. 예쁜 옷을 입은 내 모습에서도 나는 못난 점이 드러날까봐 전전긍긍 했다.


하지만 지금 나는 내 모습이 참 귀엽다. 20kg쪄서 빵빵해진 뱃살이 귀엽다. 찰싹 때리면 찰랑찰랑 거리는 모습을 보며 옆지기와 뱃가죽이 찢어지도록 웃기도 한다. 웃으면 두턱(?)이 되는 모습도 귀엽다. 활짝 웃는 내 모습이 참 마음에 든다. 튼실해진 팔뚝과 우람해진 덩치에도 나는 예쁜 원피스를 입는다. 그리고 나선 거울 속 내 모습에 깜짝 놀라곤 한다. 세상 너무 사랑스러워서 말이다. 여담이지만 옆지기는 이런 내 모습을 보고 여전히 인형같다고 말해준다. 세상에 인형 종류가 참 많다나 뭐라나.


나는 변한 내가 아직 적응되지 않는다. 이런 행복한 생각이 차오르는것이 문뜩 문뜩 놀랍고 신기하다. 가끔은 내가 아닌 다른사람이 된 것만 같다. 고작 손톱만한 약 다섯알이 변화시킨 내 모습이 너무 마음에 들지만 한편으로는 겁이 나기도 한다. 이 약이 없으면 지금 이 모습이 순식간에 사라질까봐 걱정된다. 하지만 걱정 속에 빠져 있지만은 않을 것이다. 나는 행복하고 신나고 나를 사랑하는 법을 알게되었다. 약이 없더라도 나는 이 감정과 기분을 잊지 않을 것이다. 잊지 않는다면 나는 언제든 다시 지금으로 돌아 올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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