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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섬세영 May 15. 2023

정신과일지] 모자를 벗고 병원에 갑니다.

처음 병원에 간 날을 기억한다. 자해를 하는 내 상태의 심각성을 느낀 옆지기는 자신이 아는 가장 좋은 병원으로 나를 데려 갔다. 대학병원이었다. 본관도 아닌 별관에 위치한 정신건강의학과였다.


약간의 대기시간 이후 만난 선생님 앞에서 나는 담담했다. 내 증상을 설명하고, 아프고 힘들고 불편한 점을 다말했다. 차트에 날렵한 볼펜으로 알아보지 못할 병명을 적어내는 드라마 속의 모습과는 약간 다르게, 선생님은 나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로 계속해서 타이핑을 이어갔다.


진료실 밖을 나와 설문지를 받고, 진료비 수납을 하던 그제서야 나는 실감이 났다. 내가 정신병자라는 사실이.


이깟거 하나 이겨내지 못해 30만원씩 돈을 내서 치료를 받아야 하는 병신이라는 사실이 차갑게 날아와 꽂혔다. 그 순간부터 눈물을 참을 수가 없었다. 주위 시선을 신경 쓰지 못할정도로 눈물이 쏟아 졌다. 옆지기는 그런 내 곁에서 어쩔줄 몰라하며 달래주었고, 나는 그렇게 무너졌다. 내가 정신병자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일주일 뒤, 설문지를 가지고 다시 찾은 병원에서 선생님은 내게 작은 알약 하나를 처방해주었다. 아... 나는 약을 먹어야 하는구나. 정말로 나는 아픈거구나. 나를 아프게 한 사람은 멀쩡한데 나만 고통받고 있네. 억울해. 괴로워. 나는 병신이구나.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물면서 나는 또 다시 눈물을 쏟아 내었다.


그리고 그 다음부터 나는 병원에 가는 날이면 모자를 챙기기 시작했다. 챙이 아주 넓은 모자를.




진료실에서는 울지 않는다. 다만 진료실을 나와 수납을 하고, 원내 약국으로 처방된 약을 찾으러 가는 그 순간부터 눈물이 쏟아져내린다. 챙이 넓은 모자를 더 푹 눌러 쓰고, 마스크를 콧잔등 위까지 올려 쓴다.


눈에서 흘러내린 눈물은 어느샌가 흐느낌으로 변하고 마스크는 이미 다 젖어 축축해져 제 기능을 잃는다. 대학병원의 차분한 소음 속에서 내 울음소리는 묻혀버린다. 다행이었다.


약을 받아들고서도 멎지 않는 울음은 집에 가는 길 내내 이어졌다. 버스 타고 10분, 걸어서 40분 걸리는 거리를 일부러 걸어 갔다. 걸어가는 길에 펑펑 울 수 있게, 시내 쪽 큰길을 피해 인적이 드문 길을 이용했다.


그렇게 나는 수 십 번을 울었다.





그러다 얼마 전 진료 후 원내 약국을 가던 길에 나는 내가 더이상 울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닳았다. 진료를 받고 나오면 여전히 내가 병자라는 사실이 와닿기는 하지만 울음은 나오지 않았다. 분노의 눈물이던, 슬픔의 눈물이던 그 어떤 감정을 담은 눈물도 흘리지 않았다.


지난 달 보다 나아졌다는 선생님의 다정한 말 한마디 덕분이었을까. 아니면 약이 제기능을 하고 있어서일까.


알 수 없지만 나는 더이상 울지 않는다. 적어도 내가 정신질환이 있다는 사실때문에 울지 않는다. 언젠간 이 병원을 나서며 활짝 웃을 그 날을 기다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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