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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섬세영 Aug 31. 2023

쓰는데 하루 종일, 읽는데 일분.

기억은 평생 가길.

최근 두 개의 브런치북을 만들었다. 지난 1년간 발행한 매거진의 글들을 모아 브런치북으로 재탄생 시켰다. 브런치북을 만들기 위해선 반드시 컴퓨터 앞에 앉아야 한다. 매일 컴퓨터 앞에 앉아 있지만 모니터 앞에 앉는순간 일이 몰아치기 때문에 브런치에 방문할 여력을 만들기란 쉽지 않다. 그러니 내가 브런치북을 만들기 위해서는 퇴근 후 하루 일과가 마무리 된 이후 무너져 내려가는 몸을 다시 일으켜 책상에 앉아 컴퓨터를 켜야 하는 선행 동작이 필요하다. 이 과정이 꽤나 고되고 험난하기에 나는 지난 일년간 단 한권의 브런치북도 발간하지 못했다.


내가 이렇게 오랫동안 미뤄왔던 브런치북을 갑작스럽게 발간한 동기는 바로 제 11회 브런치북 공모전이 개최되었기 때문이다. 작년, 나는 브런치 작가가 되어 첫 브런치북 공모전을 경험했다. 브런치북을 어떻게 만드는지도 몰라 끙끙 거리며 만들어낸 내 첫 책이었다.


첫 브런치북을 만들며 나는 작은 충격을 받았다. 내가 하루 종일 혹은 며칠씩 걸려 작성한 글이 고작 2분만에 읽힐 수 있다는 것이다. 2분이 뭐야, 1분짜리 글도 수두룩했다. 나는 나름의 최선을 다 해 정성껏 글을 작성했는데, 이 글이 고작 몇십초만에 읽혀질 것을 생각하니 허탈한 마음이 들었다. 한편으론 내 글짓기 실력이 보잘것 없다는 생각도 떠올랐다. 끙끙거리며 작성한 작고 뿌듯한 내 글이 순식간에 초라해졌다.


첫 브런치북의 발간 이후 나는 브런치 세계를 탐방할 때면, 글의 길이를 유심히 살펴보곤 했다. 나름 글벗들의 글을 읽고 분석해 내 글을 업그레이드 시키겠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런데 왠걸 다들 어쩜 그리 글을 재치있게 잘 풀어내는지, 분석하겠다는 마음도 금새 접어버리고 글에 푹 빠지기 일수였다. 그러기를 반복하면서 내가 깨달은 점은 결국 글의 물리적인 길이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4줄짜리 단순한 시 구절이 온 몸에 전율을 일으키기도 하고 수천, 수만 자의 긴 글이 낱말 하나하나 기억에 남기도 한다는 것이다.


이번 브런치북을 발간하면서 나는 또 다시 1분, 2분짜리 내 글을 마주 했다. 하지만 첫 브런치북을 발간할때와는 느낌이 달랐다. 비록 1분만에 읽히는 짧은 글이지만 그 울림이 오래도록 기억되길 바라는 마음이 커졌다. 작은 물방울 하나가 넓은 파동을 만들어내듯 내 글도 그러하길 소망하게 되었다. 마음가짐이 달라지자 글을 쓰는 시간은 더욱 길어졌다. 단어 하나 하나를 더 고심해서 고르고 몇 번이나 다시 읽어보며 수정을 한다. 한 편의 글을 완성하기 까지의 시간은 더 길어졌지만 글의 내용이 길어지지는 않았다. 나는 길어진 글 쓰기 시간 만큼이나 내 글이 오래 기억되기를 바란다. 물리적인 길이 보다 정신적인 길이가 오래 남는 글이 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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