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지구] 비와 우산과 비닐

하늘색이 언제까지나 하늘색일 수 있으려면.

by 섬세영



나는 내 나이보다도 더 오래된 초등학교에 다녔었다. 오래된 학교가 그렇듯 복도와 교실 바닥은 모두 나무로 되어 있어서, 혹시라도 실내화를 가지고 오지 않은 날이면 발바닥에 가시가 박히지 않도록 주의 해야했다. 비가 오는 날이면 우산을 접기도 전부터 더 진해진 나무 향기가 코끝까지 마중 나왔다. 축축함을 머금은 나무 바닥은 평소보다 조금 더 조용했고, 조금 더 강렬했다. 신발장을 가득 채운 알록달록한 장화들이 뿜어내는 빛은 흐린 하늘의 끝까지 닿을 듯 했다. 우산에서 떨어진 빗물은 나무 복도를 걸어와 신발장에 잠시 앉았다가 교실 뒷편의 우산꽂이로 들어간다. 이제 막 유치원을 벗어난 초등학교 1학년은 자신이 지나온 길목마다 흔적을 남기고 우산꽂이 속에서 동창회를 열던 빗물의 행방을 궁금해 하지 않았다. 학년이 올라가면서 그 빗물은 누군가의 노동력이 더해져야 사라진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 노동력이 내가 될 것이란 생각조차 해보지 않았다. 이는 나만의 생각이 아닐 것이다. 한국에서 자라며 학창시절을 보내고, 아르바이트를 해본 경험이 있나면 누구나 비가 오는 날에는 일하기 싫은 마음과 실제 일해야 하는 양이 정확히 반비례 한다는 말에 공감 할 것이다. 비가 와서 묘하게 축축 늘어지는 옷을 입고 끈적임을 버티며 앉아 있기도 힘든데 교실과 복도에 묘하게 떨어진 빗물을 잘못 밟아 양말이 젖는 경험이라던가, 대걸래로 빗물을 닦아내기 무섭게 빗물과 함께 들이닥치는 손님을 상대하고 뒤돌아서면 또 다시 빗물과 함께 손님이 들어오는 무한 굴레의 경험 말이다. 누구나 이런 상황을 한번쯤 마주 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언젠가 방문한 건물 입구에 있던 '우산 비닐 포장기'를 봤을 때 굉장히 기뻤다. 내가 흘린 빗물을 누군가가 치우지 않아도 되고, 누군가가 흘린 빗물을 내가 치우지 않아도 되니까 말이다. 비가 오는 날이면 늘 '우산 비닐 포장기'를 애용했고, 시간이 흐를 수록 이 단순하지만 혁신적인 기계 장치를 세상 곳곳에서 볼 수 있음에 감사했다. 어느덧 '우산 비닐 포장기'는 없으면 안되는 물건이 아닌 비가 오면 당연히 있어야 하는 물건이라는 인식이 생겼다. 대형 쇼핑몰 입구나 멀티플렉스 건물에만 있던 '우산 비닐 포장기'는 이제 관공서, 병원, 학교 등 우리 삶 어디서나 찾아 볼 수 있게 되었다.




비가 많이 오던 지난 여름 어느 날, 그 날도 언제나처럼 우산을 감싸고 잇던 비닐을 벗겨 쓰레기통에 넣던 때였다.


지금 몇 시지? 몇 시인데 벌써 쓰레기통이 꽉 찬거지?


불현듯 시계를 보았고 시간은 고작 점심 시간임을 알리고 있었다. 아직 오늘 하루가 절반 정도 지났을 뿐인데, 이 쓰레기통을 가득 채운 비닐이 눈에 담겼다. 내가 지금 버리려는 비닐은 전혀 더럽지 않았다. 사실 비닐이 크게 더러워지거나 헤질 이유도 없다. 우산 위로 쏟아지는 것들은 빗물 뿐이었으니 비닐 속에 담긴 것도 빗물과 약간의 먼지가 전부일테고, 비닐에 쌓인 우산으로 특별히 무언가를 하는 것이 아니니 비닐 외부가 손상될 이유도 없다. 더욱이 나는 그 비닐을 사용한 시간이 고작 30분 정도 였다. 아마 쓰레기통에 담긴 수 많은 비닐이 대부분 내가 사용한 방법과 시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범위에서 사용 되었을 것이다. 단지 우산을 담았다는 그 이유 하나만으로 100L 짜리 쓰레기통 가득 비닐이 버려지고 있었다. 쓰레기통이 오전동안 몇 번이나 비워 졌을지도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나는 손에 쥔 비닐을 차마 쓰레기통에 넣을 수 없었다.




일회용 비닐의 평균 사용시간은 한 시간이 채 되지 않는다. 하지만 썩어서 분해되는데 까지는 수 십, 수 백년의 시간이 필요하다. 비가 오는 날이면 하늘에서 내리는 빗방울의 수 만큼 비닐이 버려진다. 우리의 대지가 빗방울을 머금은 환희에 가득 차기 전에 비닐의 무덤이 되어 버린다. 이런 날들이 계속 된다면 우리의 하늘은 비가 멎고 구름이 개어도 여전히 잿빛으로 가득찰 것이다.

개인이 실천 할 수 있는 행위는 생각보다 간단하다. 이런 상황을 인지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적어도 우산을 쌌던 비닐을 무심코 버리는 것이 아니라 손잡이에 감아 두었다 구멍이 날 때까지 계속 사용 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애초에 사용을 안하면 더 좋다. 비닐 없이 우산의 물기를 털어 낼 수 있는 제품이 최근 눈에 많이 띤다. 최대한 이런 제품을 이용 할 수 있다록 하고, 아직 '우산 비닐 포장기'를 사용하는 업체나 기업에게 대안책이 있음을 건의한다. 소비자의 작은 날개짓이 큰 태풍이 되는 것이다.

한O도시락의 직원 유니폼은 페트병을 재활용 해 만든 것이다 . 이 뿐만 아니라 많은 의류 패션 브랜드에서 업사이클링 소재로 재품을 만들거나 폐비닐과 플라스틱을 재가공한 원료로 제품을 만든다. 우산 비닐도 수거해 이처럼 활용 하는 방법은 없을까 하는 생각으로 오늘의 글을 맺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