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물욕 없는 사람이라 여기었다.아니더라구. 나도 물욕이 있는 사람이었다. 다만 내가 그 만큼 물건에 관심을 두지 않고 살았던 것 뿐이었다. 물건이 한 번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니까 가지고 싶은 마음이 끊임 없이 샘솟는다. 최근 멀쩡히 잘 쓰던 필통을 바꾸었다. 동생과 함께 간 팬시점에서 눈이 돌아버렸다. 필통이 못 쓸만큼 고장 난 것도 아니고 닳아 없어진 것도 아님에도 그저 세일 한다는 이유 하나로 필통을 바꾸었다. 바꾼 필통은 예쁜 노란색에 스테고사우르스가 그려진 귀여운 필통이다. 필통을 바꾸니 이제 옆에 있던 태블릿 파우치가 가지고 싶어졌다. 그래서 또 샀다. 이 역시도 매우 귀여운 강아지가 그려진 것으로.
그리고 어제, 나는 결국 가방까지 바꾸려고 했다. 책을 한 권 사볼까 싶어서 들린 알라딘에서 책은 안보고 가방이 눈에 들어왔다. 지금 쓰는 에코백이 2개나 있고, 노트북이 들어가는 튼튼한 백팩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가방을 또 사려고 했다. 그저 모양과 재질이 마음에 든다는 단순한 이유였다. 거기에 50% 세일 중이라는 사실까지 더해지니 카드가 절로 지갑에서 나올 뻔 했다. 다행히 가방을 사는 것 까지 이어지지는 않았다. 여기에 가장 큰 도움을 준 말이 바로 見物生心이었다. 나는 그저 물건이 눈에 보여 사려고 했던 것이다. 필요에 의해 구매하는 것이 아닌 욕구에 의해 구매 하려 했다.
한동안 '예쁜 쓰레기' 라는 말이 유행 한 적 있다. 그저 예뻐서 가지고 싶은 욕구에 의해 샀지만 아무런 쓸모가 없는 물건들을 지칭하는 말이다. 말이 유행한 이유는 역시 이런 패턴의 소비가 유행했기 때문이다. 그냥 스트레스 해소용으로, 예쁘니까라는 이유로 소비한 많은 물건들은 그렇게 시간의 흐름과 함께 쓰레기가 되어 버렸다. 썩지도 타지도 않는 그런 쓰레기.
나는 예쁜 쓰레기를 샀다. 그래서 쓰레기를 만들어냄과 동시에 이전에 쓰던 물건들 까지 쓰레기가 되게 만들었다. 이전에 쓰던 필통은 이미 쓰레기통에 처박혔고, 태블릿 파우치를 사기 전에 구매했던 케이스도 서랍 구석에 들어가버렸다. 이렇게 나는 물건 하나를 구매함으로서 두개의 쓰레기를 만들어냈다. 내가 쓰레기가 된 기분이다. 어린 시절 보았던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 나온 오물신이 떠올랐다. 인간이 버린 쓰레기로 인해 강의 신이 오물신이 되어버린 그 현장을 내가 만들었다.
이런 내가 과연 친환경을 논할 자격이 있을까. 그 전에 현대 사회를 살며 친환경적인 삶을 산다는 것이 과연 가능한 일일까? 지금 생산되는 대부분의 물건이 플라스틱을 베이스로 삼은 물건들인데, 이 물건들을 전혀 소비하지 않고 사는 것은 불가능하다. 나 역시도 생산자의 입장에서 수 많은 플라스틱을 제공하고 있다. 떡집에서 일하면서 스티로폼 트레이와 비닐 랩으로 떡을 포장하고 있다. 나는 식품과 함께 쓰레기를 판매하는 것이다. 나부터가 플라스틱을 소비자에게 제공하고 있는데, 이런 내가 플라스틱 제로, 친환경을 논하는 것이 우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