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지구] 베지테리언 말고 플렉시테리언
할 수 있는 만큼, 그러나 자각하라.
나는 채식주의자이다. 그렇지만 고기도 먹고 우유도 먹는다. 이런 사람이 무슨 채식주의자라는 것일까. 나는 플렉시테리언이다. 플렉시테리언이라는 단어를 처음 접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플렉시테리언은 이름 그대로 flexible vegetarian 즉, 유연한 채식주의자를 뜻한다. 평소에는 채식 위주의 식단을 유지하지만 상황에 따라 육식을 하는 사람이다. 물론 이 육식도 가능하면 동물복지농장에서 길러지고 가공된 제품을 소비하는 것을 지향한다.
처음 내가 채식주의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는 멜라니 조이가 쓴 '우리는 왜 개는 사랑하고 돼지는 먹고 소는 신을까'를 읽고 나서 이다. 제목부터 자극적인 이 책은 내용 역시 굉장히 충격적이다. 우리가 단지 개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채식을 하는 것이 아닌 채식을 함으로서 인권을 보호하고 환경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먹는 육류 가공에 대해 생각해 본적 있는가? 그 곳에서도 사람이 일을 한다. 눈물 흘리는 소의 머리에 충격총을 겨누고, 수 만 마리의 닭을 순식간에 갈아 넣는 기계를 작동시키는 일은 모두 다 사람의 손에서 이루어진다. 책에서 이 내용을 읽는 순간 누가 내 머리의 작동을 멈춘 기분이 들었다. 내가 마트에서 '고기'로서 육류를 접할 수 있는 것은 어딘가의 누군가의 손에서 도축이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신이 인간임을 잊지 않기위해 부던히 노력지만 생과 사 앞에서 매 순간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우리은 육류를 소비하면서 그들의 인권까지 소비하고 있던 것이다.
소를 키우는데 들어가는 기회 비용에 대해서도 생각해보자. 소는 물과 햇빛만으로 자라지 않는다. 소를 키우기 위해선 그들의 먹이인 사료가 필요하다. 실제로 소를 비롯한 축산업에 필요한 사료를 공급하기 위해 지구 전체 농토의 1/3이 사용되고 있다. 이것을 사람이 직접 먹는다고 생각하면 35억명이 풍족히 먹을 수 있는 양이다. 또한 더 많은 축산업과 축산업에 필요한 농토를 위해 산림이 파괴 되고 있다. 육류를 소비하면 할 수록 이산화탄소와 메탄이 배출되고 이를 정화 시킬 산림은 줄어든다. 이것이 바로 육류 소비의 진실이고 우리가 육류 소비를 지양해야 하는 이유이다.
지금 당장 채식주의자가 되는 일은 쉽지 않다. 인간은 잡식성이고 탄수화물, 단백질, 지방의 고른 섭취가 필요하다. 하지만 육류만이 균형잡힌 식단의 정답이라 할 수는 없다. 영양 과잉으로 질병에 걸리는 시대에 육류만을 고집하는 것 역시 어리석은 일이다. 육류를 소비하는 것이 어떤 과정을 거쳐 식탁에 오른 것인지, 어떤 결과를 초래 할지에 대한 자각하고 식단을 구성하는 노력 정도는 해야 한다.
나는 하루 식사 중 한 끼 정도는 꼭 채식으로 구성된 식단을 하려고 노력중이다. 그 중 가장 좋아하는 식단은 단연코 '들기름 막국수'이다. 메밀면과 들기름 그리고 참치액 정도만 있으면 누구나 10분 안에 만들 수 있을 만큼 레시피도 간단해 고된 일과 끝 식사를 만들 기력조차 없는 저녁으로 자주 해먹고 있다. 더군다나 든든하지만 속이 편해 저녁 식사로 제격이다. 여기에 시부모님이 직접 키운 닭이 낳은 계란 한 알 삶아서 같이 먹으면 단백질까지 완벽한 구성이다. 더 간단히 먹고 싶은 날에는 두부를 구워 올리브유와 통후추만 갈아 뿌려 먹기도 한다. 이 역시 손만 있으면 누구나 만들 수 있을만큼 간단하고 배부르고 따뜻하다. 찬바람이 뺨을 때리기 시작하는 요즘은 고구마도 자주 쪄먹고 있다. 밤고구마 호박고구마 할 것 없이 고루 먹고 있는 중이다. 이런 식단이 어렵고 채식을 시작하기 두렵다면 사찰음식점을 방문해 보는 것도 방법이다. 요즘 곳곳에 생겨나는 사찰음식점에 가서 정갈하고 맛난 채식 요리를 먹어 보는 것으로 채식에 한 걸음 다가 설 수 있다.
생각보다 채식 식단은 어렵지 않고 멀리 있지 않다. 내가 지금 선택한 한 끼 식사가 어떻게 돌아올지 생각하는 플렉시테리언의 삶을 살아보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