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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삼열 Nov 17. 2023

니가 왜 거기서 나와~♬

교장 선생님의 택시


  상상을 해 보자. 당신이 아무 택시나 잡아탔는데, 당신의 지인이 그 택시를 운전하고 있을 확률이 얼마나 될까? 영화나 드라마가 아닌 현실에서, 그것도 소도시가 아닌 서울에서, 이런 경험을 평생 한 번이라도 할 수 있을까?

  서울 시내에서 택시를 운행하는 기사님은 약 6만 명 정도라고 한다. 이 통계가 사실이라면, 서울 시민의 약 0.6퍼센트 가량이 택시 기사님인 셈이다.

  그렇다면, 당신의 지인이 택시 기사님이 될 확률은 0.6퍼센트이고, 그 지인을 택시에서 마주칠 확률은 다시 1/6만 정도가 될 것이다. 나는 수학에 매우 약하므로, 정확한 계산은 어렵지만, 대충 생각해도 매우 낮은 가능성이 도출될 것은 명확해 보인다.


  몇 해 전, 나는 주민센터에 가기 위해 택시를 호출했다. 학교에서 퇴근하는 길이었다. 전날 내린 눈이 길가에 쌓여 있던, 추운 12월 경이었다. 눈이 내린데다, 초행길이었으므로, 자주 타지 않던 택시를 부른 것이었다.  

  이윽고 택시가 도착했다. 나는 무심히 차에 올라탔다.

  “어!”

  그런데 기사님이 단발마를 내뱉으셨다. 나는 의아했다.

  “제 선생!”

  ‘기사님이 나를 어떻게 알고 부르시지?’

  “허허, 나 모르겠어요?”

  “누구... 세요? 저를 아세요?”

  목소리가 걸걸한 할아버지 기사님이 껄껄 웃으셨다. 그리고 입을 여셨다. 

  “나 김** 교장이에요. 예전에 **학교에서 같이 근무했잖아요.” 

  정신이 번뜩 들었다. 김** 교장 선생님! 잊을 수 없는 분이었다. 나는 등받이에서 몸을 떼고 앉아 인사드렸다.      


  김 교장 선생님은 내가 초임 교사일 때 만난 첫 교장 선생님이다. 화통하시고, 이해심이 많으시며, 늘 대장님처럼 앞장서서 업무를 처리하시기로 유명했다.

  “학생들이 제 선생님한테 배울 게 많을 거예요. 장애 교사라고 눈치 보지 말고, 소신껏 지도해 주세요.”

  초임 교사로서 교장 선생님께 인사드리러 간 자리에서, 김 교장 선생님이 내게 처음 꺼내신 말이었다. 

  ‘소신껏 지도해 주세요.’, 당시 내게 있어 이 말은 등대나 다름없었다. 

  ‘대체 어떻게 학생들을 지도해야 하지? 장애 교사라고 수군덕거리면 어쩌지? 옆 반 국어 선생님하고 비교하면 어떡해?’, 이런 고민들로 머리가 복잡하던 초임 교사 때, 교장 선생님은 마치 다 안다는 듯이, 내게 꼭 필요한 조언을 해주신 셈이었다.

  그때에는 알지 못했지만, 이제는 안다. 학교의 최고 관리자인 교장 선생님의 마인드에 따라 학교 분위기가 얼마나 많이 달라지는가를. 그리고 교장 선생님마다 장애 교사를 대하는 태도가 천차만별인 것을. 이제는 안다. 그런 의미에서 김 교장 선생님은 평생 잊지 못할 분이시다.              


  “버릇이 참 무서워요. 학교에서 콜이 들어오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어요. 아무리 멀어도 학교 콜은 내가 꼭 잡는다니까요!”

  교장 선생님이 운전하며 말씀하셨다.

  “소일 삼아 운전한 지 3년 됐는데, 제 선생을 만나기 위해 내가 운전대를 잡았나?”

  은퇴 후에 삶이 얼마나 무료한지, 소일 삼아 시작한 운전 일이 어떻게 삶의 활력소가 되고 있는지 등을 교장 선생님이 말씀해 주셨다. 나는 예전으로 돌아간 듯, 말씀을 경청했다.

  “그나저나 기억나요? 예전에도 내가 제 선생 기사 노릇한 적 있었는데...”

  교장 선생님이 흐뭇하게 웃으며 말씀하셨다. 불현듯 십여 년 전의 일이 환하게 떠올랐다. 

  “그럼요. 그걸 어떻게 잊겠어요...”              


  초임 교사 시절, 3월 경에 첫 회식을 했다. 신규답게 얼어붙은 채 가만히 앉아 있던 내게 교장 선생님이 맥주를 연거푸 따라주셨다.

  “사양하지 말고 마시세요. 편하게 쭉!”

  거절할 수 없었던 나는, 결코 편하지는 않은 마음으로 연거푸 술을 들이켰다. 마실수록 몸과 마음이 편안해지긴 했다.

  “한잔 올리겠습니다.”

  내가 말했다. 

  “아뇨, 저는 술 안마십니다. 이따 운전도 해야 하고. 아, 한잔 더 해요. 쭉!”    

  교장 선생님은 술자리에서도 화통하셨고, 끊임없이 사람들을 챙기셨다. 


  이윽고 회식이 파했다. 그리고 나는... 

  교장 선생님과 단둘이 차에 올라탔다. 택시를 부르려고 했지만, 교장선생님이 자청해서 나를 집까지 데려다 주신다고 하셨다. 그 강권에 가까운 호의를 차마 물리칠 수 없었다. 

  “부럽다. 제 선생님, 되게 편안하게 집에 가겠다!”

  “두 분이서 2차 가시는 거 아니에요?” 

  동료 선생님들이 웃으며 한마디씩 했다. 나는 가시방석에 앉은 듯, 차 뒷자리에 앉아 집까지 갔다. 그러는 동안 술기운이 온데간데없이 확 깨 버렸다.  

  ‘아, 택시 타고 가고 싶다.’     




  몇 년 후. 택시를 몰며 교장선생님이 말씀하셨다. 

  “그때는 초임 때라 표정이 참 딱딱했고... 그리고 지금보다 좀 말랐던 것 같은데... 많이 변했네요, 제 선생님. 나도 많이 늙었죠?”

  “아뇨, 교장 선생님은 그대로세요.”

  내가 얼른 말했다.

  “그대로인지 아닌지 어떻게 알아요, 내가 보여요? 이 주름살이 안 보여요? 안 보이겠지!”  

  교장 선생님이 화통하게 웃으셨고, 내가 겸연쩍게 웃었다.      

  “정말 교장 선생님은 하나도 안 변하신 것 같아요. 그대로세요.”        

  웃음 끝에서 내가 말했다. 

  교장 선생님 말씀대로, 예전보다 나는 살이 쩠고 교장 선생님 앞에서 덜 굳어 있었다. 그리고 교장 선생님은... 확실히 나이 들어 계셨다. 예전보다 목소리에 힘이 떨어져 있었다. 나는 그게 안타깝고 아쉬웠다.     


  “동사무소에는 왜 가요?‘

  침묵을 깨고 교장 선생님이 물으셨다.

  “장애인 복지카드를 재발급 받으려고요.”

  “혼자 서류 쓰고 할 수 있어요?”

  “아뇨, 일단 가서 도와달라고 하려고요.”

  아직까지 주민센터에 장애인이 혼자 방문하면, 직원은 으레 ‘보호자는 안 오셨어요? 서류 작성해야 되는데요.’ 하기 일쑤이다. 보호자라니... 용어 선택이 참 부적절하다. 장애인을 미성숙한 성인으로 보는 것이다. ‘공무원님은 어디 갈 때 보호자랑 같이 가나요?’라고 묻고 싶지만, 일단 도움을 요청해야 하는 입장에서 그렇게 쏘아붙일 수는 없는 노릇이라 참곤 했다. 


  “그러지 말고, 나랑 가요. 그까짓 거 내가 써 주지 뭐. 그리고 집까지 데려다 줄게요. 예전처럼. 아직 그 동네에 살아요?”

  “저야 감사하지만, 이렇게 시간을 허비하셔도 괜찮으세요?”

  “허허, 나 연금 많이 받아요. 돈 벌려고 택시 하는 거 아니에요. 그리고 지금도 제 선생을 만나고 있다고 생각하지, 영업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더 사양할 틈도 없이 택시가 주민센터에 도착했다. 교장 선생님이 먼저 차에서 내려 나를 기다리셨다. 나는 하는 수 없이, 그리고 감사한 마음으로 교장 선생님과 동행했다.


  시인 백석 식으로 말하면, 교장 선생님과 동행하는 동안, 예전 학교도, 젊은 교장 선생님도, 마르고 건강했던 나도, 초임 교사 시절의 풋풋하던 마음도, 그 시절 설레었던 봄도... 모두 되살아났다. 거짓말처럼 전부 그곳에 있었다. 분명히 교장 선생님도 그걸 느끼셨을 거라고 믿는다.

  언제까지나 교장 선생님이 건강하시길 바란다. 지금 모습 그대로, 쭉! 그리고 언젠가 다른 자리에서, 우연처럼, 다시 만나 뵙길 바란다. 

  교장 선생님을 택시 안에서 만날 확률. 인생이 뜻밖의 모습으로 흘러갈 때, 우리는 삶의 묘미를 느끼지 않을까. 인생이 내게 준 뜻밖의 선물에 감사한다. 


     

고향

                                           - 백석     


나는 북관(北關)에 혼자 앓아 누워서

어느 아침 의원(醫員)을 뵈이었다.     


의원은 여래(如來) 같은 상을 하고 관공(關公)의 수염을 드리워서

먼 옛적 어느 나라 신선 같은데

새끼손톱 길게 돋은 손을 내어

묵묵하니 한참 맥을 짚더니

문득 물어 고향이 어데냐 한다.     


평안도 정주라는 곳이라 한즉

그러면 아무개 씨 고향이란다.

그러면 아무개 씨 아느나 한즉

의원은 빙긋이 웃음을 띠고

막역지간이라며 수염을 쓸는다.    

 

나는 아버지로 섬기는 이라 한즉

의원은 또다시 넌지시 웃고

말없이 팔을 잡아 맥을 보는데

손길은 따스하고 부드러워

고향도 아버지도 아버지의 친구도 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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